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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Dec 29. 2022

고양이 같은

 그는 나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섬유 유연제와 옅은 향수에 땀 냄새가 섞여 있었고, 짙은 고양이 냄새가 훅 치고 들어왔다. 목을 따라 얇은 잠옷 언저리에는 흰 털이 비죽비죽 나와 있었는데 원래 그런 옷처럼 보였다.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불은 얇았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스산한 바람이 머리맡에서 불어 들었다. 전기장판이 점차 뜨거워졌고 그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잠드는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깨우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이른 밤이었고 그가 키우는 고양이들은 침대 옆에서 스크래쳐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회갈색 바탕에 검은 고등어 무늬가 인상적인 첫째와 그보다 밝은 회색에 둘째. 지난주 주말이었고 술을 마시며 그는 일하던 곳에서 주워온 한 마리를 시작으로 어떻게 키우기 시작했는지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장난스럽게, 조금은 거칠게 첫째를 끌어안고서 배를 만져주는 모습이 잘 어울렸다.


 처음에는 고양이 털과 특유의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눈치채지 못할 새에 이미 털을 먹고 있을 거라며 그는 웃었다. 그 표정이 정말 좋았다. 냉동고에 있는 것을 데우고 챙겨 오기 전이었으니 소리였을지도. 따뜻한 바닥에 술기운이 독처럼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살짝 떨리는 마음은 병이 든 것처럼 휘청였는데 정신을 놓을 새면 첫째 꼬리가 팔뚝과 등허리에 닿았다. 사람을 좋아하는지 털과 냄새를 묻히려 안달인 녀석이었다. 작은 머리를 따라 몇 번 쓸어주고 엉덩이를 토닥여주자 어느새 그르렁거리고 배를 발랑 까며 누웠다.

 “완전 개냥이죠?”

 그래, 그제야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표정도 정말 좋았다. 나는 맥주 한 모금에 물만두를 집어 먹었다. 작은 식탁 건너편에 그는 술을 연신 들이켰다. 잘 마시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게 먼저였다. 그 이후는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없었다. 그의 옷을 입고서 아침에 일어났기에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희고 검은 털이 외투에 잔뜩 붙어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세를 고치자 그가 움찔하며 팔을 풀어주었다. 내 표정을 읽고 있으려나 모를 일이었다. 좋아하지만 그것이 술과 이불과 고양이들처럼, 내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술김에 만나서 술로만 이어지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쓴 시간과 돈과 건강은 또 어떻고. 적지 않은 나이에 그런 식으로 찰나의 연을 이어가는 게 옳은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런 고민을 할 때면 세상 엄중한 표정으로 먼 곳만 바라봤고, 그 습관이 읽히지 않았으면 했다. 그의 팔을 여전히 베고서 등진 자세로 누웠다. 도톰하고 포근한 팔과 손목을 지나 거친 손이 보였다. 잠깐씩 멈추거나 아주 큰 고양이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뒤통수와 등에 울렸다.

 썩 나쁘지 않은 순간일 것인데도 이런 고민을 하여 그에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는 일주일 전이나 오늘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필 오늘은 내게 술이 부족하여 펑펑 울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결심한 것은 눈이 조금 내린 다음 날이었다. 2주가 넘도록 그와 서원한 연락만 주고받는데 저릿한 것이 느껴졌고 망설이다가 오히려 병이 될 모양이었다. 열병처럼 번지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겠느냐만 혼자 앓는 처량함까지 더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에게 연락하니 몸이 좋지 않다 하였고, 나는 이때다 싶어 저녁에 찾아가겠노라 말했다.

 아주 피곤한 표정으로 그는 문을 열어주었다. 잠을 못 잔 것인지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다. 훅 끼쳐 들어오는 고양이 냄새와 그의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났다. 둘째가 무슨 일인지 마중을 나왔길래 손을 건네 인사를 했다. 매번 숨어있던 녀석은 앙칼진 소리를 내며 내 주위를 맴돌았으나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최대한 정갈히 저녁을 차렸으나 그는 입맛이 없는지 가득 들고 온 저녁은 두어 숟갈만 뜨고 말았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은 없었으나 피곤함이 눈에 선해서 침대에 일단 눕혔다.

 나는 “좋아한다”라고 말하려 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먼저 죽으면 화장해서 뿌려달라고, 장난 같지도 않은 말을 웃으며 하는 모습에 수목장으로 해서 내가 보살필 거라 했다. 똑똑하고 눈치가 제법 있으니 알아먹었을 거라,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침대 아래에 앉아 그를 올려다봤다.

 “혹시 죽으면 내가 로미오처럼 따라 죽을게.”

 피식, 웃다가 길게 하품하며 그는 말했다.

 “세상은 모두가 로미오와 줄리엣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지난번처럼 옆에 누웠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옅은 체취를 맡으며 등진 그를 살짝 안았다. 이번에도 그는 어느새인가 잠들어서 새근거리다가 잠깐 멈추고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반곱슬인 머리 사이사이에 고양이 털이 끼어있었다. 늦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는 바짝 붙었다. 가슴과 볼이 그의 등에 닿았고 미지근한 온기가 전해졌다. 분명 그와 함께 누웠을 때마다 곯아떨어졌는데 이번에는 잠들 수 없었다. 잠깐 뒤척일 때면 침대 밑에 있는 첫째와 눈이 마주쳤고, 한 번은 캣타워에 올라가 있던 둘째와 눈이 마주쳤다. 빤히 바라보는 눈빛에 나는 다시금 죄스러움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편히 잤으면, 금방 일어났으면. 너무 늦지 않았으면.

 내가 뒤척여 끌려 내려간 이불을 그의 어깨까지 끌어올려주다가 볼에 입을 맞추고 다시 누웠다. 충분히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는 그를 껴안으며 움츠러들었다. 병은 내가 걸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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