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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Jan 01. 2023

마지막 날

 그는 한마디로 남을 무시하기 위해서 살아왔다. 부모님의 재력부터 학벌이나 능력을 두고 언제나 비교를 일삼았다.

 “꼭 그렇게 생각해야만 해요?”

 물으면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편협하고 생각이 짧으며 게으르다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전부와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고 말했다. 오직 자신을 가르쳐주며 대단하다는 사람만 예외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단하다고, 충분히 유능한 사람이라고 맞장구쳤다.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대단하기도 했다. 콜옵션이니 상장이니 스타트업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뉴스 언저리에서 주워들은 단어들이었다. 나는 고민이 있다고 찾아온 그에게서 한 시간이 넘도록 그런 이야기만 들었다.

 그는 혼자서 소주를 두 병 넘게 마신 뒤 바닷가에 가서 기타를 치자고 했다. 낭만, 낭만. 사실 떼를 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술 없이 들어주기 힘들고 막상 들으면 술맛 뚝 떨어지는 이야기만 한 시간. 그것도 모자라 부끄러움까지 내 몫으로 돌리려 하다니! 만취한 상태로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온다 했을 때부터 말렸어야만 했다. 실제로 그는 음주단속에 걸리지 않고 한참을 운전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사고가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가 운전한다고 하면 절대 타지 않을 거라 되뇌었다.


 우리는 오래돼 보이는 기타 가방을 들고 모래사장이 내려다보이는 계단에 앉았다. 피크를 찾는 동안, 반투명한 젤리 모양 감기약과 아주 오래된 맥주캔 하나가 그의 가방에서 나왔다. 너덜너덜한 악보는 꺼내지도 않고 가방을 거꾸로 탈탈 털을 지경이 되어서야 그는 어딘가 굴러다니던 피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핏 들어도 엉터리인 반주가 시작되었다. 담배 탓에 뒤틀려버린 목소리는 중간중간 한 옥타브를 넘나들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한 발치 떨어진 곳에 앉아서 부끄러움과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작게나마 펼쳐진 모래사장에서는 연인과 가족들이 폭죽을 쏘고 있었다. 검고 탁한 바닷물과 희뿌연 파도 사이로 비치는 그 빛을 바라봤다. 작은 불꽃을 흘리며 하늘에서 펑 소리를 내면 한숨을 다 뱉기도 전에 다른 하나가 뒤따라 올라갔다. 다 끝났나 싶으면 마지막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다 위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옅은 바람과 땡땡 얼어있던 돌계단에 손과 엉덩이가 시려질 즈음까지 나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규칙적으로. 그가 꽥꽥 원 없이 노래를 부를 때까지, 폭죽은 어딘가에서 계속 빛났다가 사라졌고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잠깐 그 규칙이 멈췄을 즈음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기타를 챙겼다. 그리고 바로 뒤편에 보이는 술집으로 향했다. 늦은 저녁과 밤 사이라 그런지 꽤 북적였다. 그는 술과 안주를 척척 시키고는 몇 시간만 있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큼 부푼 뱃살과 위태로워 보이는 셔츠에 담배로 조금 거무스름해진 입술이라던가 초점이 살짝 풀린 눈. 꼭 나이만 걱정할 게 아니라 말하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제때 맞춰 나온 술을 따르며 나는 모두 한 살을 공평하게 먹는데 무슨 문제냐며 웃었다. 그는 한참 취했는지 소주를 그대로 털어 넘기고 갑자기 물었다.

 “넌 지금이 좋냐?”

 그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시골 깡촌에서 변변찮은 직장에 모아놓은 돈도 많지 않으면서 만족하느냐고, 자기가 친한 형으로서 불안하다고. 큰 물에 있어야 돈도 벌고 성공할 수 있다고. 너는 지금 충분하지 않다고. 토하듯 말을 뱉어낸 그는 혼자 술잔을 채웠다. 주위를 울리는 노래와 이야기들, 시끌시끌한 불빛 아래에서 의미심장하게 웃다가 또 한 번에 마시고 다시 채우고.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가까이 살며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고, 좋아하는 일 하며 살고 있다고. 딱히 어떤 표정을 지었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덤덤하게 말했다. 창가에서 부는 바람 때문일 수도 있겠다.

 “행복은 지금 느끼는 감각인데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요? 지금 만족하고 걱정 없으면 충분하죠. 굳이 미래에 있는 걱정까지 당겨와서 힘들 필요가 있나요.”

 그는 바로 비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에 더 심한 것들을 덧붙이며,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래요, 그럴 수 있어요.

 넘길 때마다 그는 더 강하게, 한심하다는 듯 긁는 말을 뱉었다. 때마다 술도 한 잔씩 마시고 안주도 허겁지겁 먹었다.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몇 년 전과 비교해도 바뀌지 않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얄팍한 지각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용암처럼 뜨거운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돈도 많이 벌고 능력도 있으면서 불행하냐고, 돈을 믿는 당신이면 더 행복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해서 그러는 거냐고. 질투인지 화인지 모를 무엇을 게워내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조차 취해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취한 사람과 싸워 득 될 것이 없었기에 나는 먼저 일어나겠다고 하였다. 술을 따르는 그가 거슬리는 말을 몇 마디 더 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아주 작지만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밤바다가 적잖이 추워서 해변은 조용해졌다. 모래사장에는 미미한 화약 냄새와 폭죽 잔해들이 곳곳에 꽂혀 있었다. 모래는 살짝 미끄러울 정도로 고왔고, 철썩이기보다 찰박거릴 정도로 조용한 파도만 일었다. 근처 술집에서는 노래와 왁자지껄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10시였으니 곧 있으면 새해가 될 것이었다. 이런 날에 저런 사람과, 괜히. 어쩌면 마지막이라 다행이라고, 그런 생각을 쥐고 걸었다. 하루를 두고 무엇이든 끝맺거나 새로이 시작하는 것은 흔치 않으니까. 오늘은 그러기에 좋은 날이었다.

 사박거리는 굵은 모래에는 작은 조개나 떠밀려온 해초가 무늬를 그리듯 뿌려져 있었다. 먼발치에서 작은 불꽃이 구불구불 올라가다가 사라지며 펑, 터지는 소리를 냈다. 아이가 웃으며 아장거리며 모래톱을 걸었고 다시 하나가 하늘로 올라갔다. 딱 세 걸음 반이었다. 아빠가 넘어질 듯 달려 나가는 아이를 안아 올렸고 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나, 둘, 셋. 반짝이는 불꽃들이 연기와 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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