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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Nov 20. 2023

할아버지랑 소주를 마십니다

단순한 효도

  2주에 한 번씩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뵙습니다. 원래부터 사이가 가깝지는 않았어요. 대부분의 손자들이 그렇듯 약간 서먹한 사이였고, 20대를 전부 본가에서 멀리 떨어져 지냈으니 자주 찾아뵙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취업 이후에 변화가 시작됐어요. 당분간은 직장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꽤 많은 고민들을 잦아들게 해 주었습니다. 그 안정감 덕분에 가족들을 생각할 여유가 생겼고요. 더불어 회사가 있는 지역이 본가에서 그리 멀지 않다 보니 물리적인 부담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가끔씩 찾아뵙기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루틴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다른 지역으로 매번 이동한다는 건 분명 피곤한 일이고 심지어는 다툴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족과 함께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편안함이 있습니다. 저의 뿌리가 가족이기 때문일 거예요. 제 입장에서는 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을 인식할 수 없을 테니, 제가 존재하기에 세상이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세상은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었겠죠. 존재를 넘어서도 그분들의 양육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 모습이 아니었을 거예요. 이토록 큰 사랑을 받으며 성인으로서 온전히 꽃 피웠으니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가족은 제가 완벽하진 않아도 한 사람으로서 완전할 수 있는 크나큰 이유입니다. 아무리 일상이 지치고 힘들었어도 이곳에 돌아오면 '나 꽤나 소중한 사람이구나' 자존감을 채우고 힘을 낼 수 있어요.


  그분들의 조건 없는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제가 저로서 온전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사소한 감사라도 말과 행동으로써 자주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동등한 수준으로 보상하겠다는 생각은 오만입니다. 제 평생의 시간 동안 복리가 붙었을 테니까요. 그저 최대한 많은 순간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의 보답일 거예요. 어떻게 보면 참 이기적인 교환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저 가끔 찾아뵙고 시답잖은 이야기와 함께 술 한잔 기울이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다지 어렵지 않은 행동임에도 당신들이 느끼시고 표현해 주시는 행복의 크기는 너무나도 큽니다. 이토록 작은 행동을 통해 큰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만큼 효용감 있는 행위를 찾기는 어려울 거예요.


  할아버지의 안색이 갈수록 눈에 띄게 밝아지고 있습니다. 이전에 하지 않으셨던 농담도 많이 하시고, 앞으로도 이렇게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참 신기하고 감사하고 감히 뿌듯하기도 합니다. 이미 일생의 대부분을 경험하셨고 많은 걸 이루어내신 분께 또 다른 활력을 드릴 수 있다는 건 정말 뜻깊은 일입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찾아뵈어야겠습니다. 그러고 싶어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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