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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Jan 08. 2024

치열했던 10년의 시간

20대의 마지막

  내일이면 30살이 됩니다. 나이 새는 규칙이 바뀌었지만 아직까지는 예전 규칙이 더 익숙하네요. 나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 30대가 되는 것 자체에 큰 감흥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20대라는 10년의 시간이 마무리된다는 건 참 묘하네요. 돌이켜보면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거든요.


   제 20대의 대부분은 대학생활이었습니다. 참 운 좋게 입학한 대학이 꿈의 대학이었기에 황홀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만 간다면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경쟁하지 않고 저만의 길을 가겠다 결심했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죠 황홀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에 욕심 많던 스스로의 기준이 어느 순간 턱없이 높아져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입학한 이후부터 잊지 않았던 단 하나의 생각은 저는 다른 친구들처럼 학업적으로 뛰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타고난 재능이 저에게는 없었으니까요. 대신 저는 사람과 경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학업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다른 길을 찾겠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교내에서 안 해본 학생활동이 없을 거예요. 덕분에 참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했었습니다 물론 여러 경험들 속에서도 정말 많은 시행착오와 고민들이 있었고, 학업과 같이 어떤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친구들을 보며 불안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에는 스스로에게 잘 맞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4학년 1학기를 마친 이후에는 휴학을 했습니다. 쉬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경험하고 싶어서요. 이대로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학교 밖의 세상이 궁금했거든요. 지금 보면 그토록 바쁘게 살았는데도 열의가 남아 있었던 게 참 신기합니다. 총 4번의 회사 인턴, 과학을 주제로 한 강연과 공연활동, 생애 첫 자취 등 휴학 이후의 시간들은 학교에서 만큼이나 짙고 강렬한 경험들이었습니다. 또다시 수많은 성취와 한계에 부딪힐 수 있어 즐거웠지만 동시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경험하고 싶은 게 없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도파민을 강렬히 자극할 만한 것들이 삶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5년이 지나서야 다양한 경험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든 거죠. 본래 2년을 계획했던 휴학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마무리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더 도전하고 싶은 게 없는데 그냥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무언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휴학을 하며 보통의 진로에서는 벗어났으니, 6개월 정도만 더 쉬어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남은 건 창업 혹은 대학원이었지만 둘 다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쉬고 싶지 않았는데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들은 부러워했겠지만 저에게는 너무나도 괴로운 시간이었어요. 5년간 쉴 새 없이 터졌던 경험의 도파민은 지독한 후유증을 안겨주었습니다. 무미건조하고 단순한 일상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운동도 하고 여러 취미들을 시도했지만 그럼에도 넘쳐나는 시간들은 여유가 아니라 공허함이었습니다.


  또 하나 힘들었던 측면은 경험으로 인해 명확해진 스스로의 한계였습니다. 저만의 길을 찾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경험들이었지만 뚜렷하게 잘하는 것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해도 어느 정도 잘했지만, 욕심 많은 기준치에 도달할 만큼의 재능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혼란스러웠어요. 그저 즐거운 경험들이었던 것으로 충분했다 생각하고자 애썼지만, 그걸 가슴 깊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몇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음에도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진로를 찾지 못했다는 게 참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6개월의 쉬는 기간은 물론 학교에 복학해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고 싶지는 않아도 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을 시도했습니다. 결국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분야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사람을 사랑하니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을 연구하면 즐겁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순전한 호기심으로 다른 대학으로의 인턴쉽과 유학을 시도했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실패 이후에는 전공을 살릴 수 있고 관련 분야도 배워볼 수 있을 것 같은 햅틱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다행히 교내에서 인턴쉽을 받아주셨고 처음으로 연구라는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물론 평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저의 조급함으로 인해 많은 실수를 저질렀었고, 딱히 재능도 열정도 없다 느꼈던 공학을 다시 하려니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경험의 디톡스는 끝나지 않았고, 캠퍼스 안에서도 다소 무기력해하는 스스로가 낯설었던 시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아, 그리고 인턴을 했던 연구실로에 대학원 진학도 실패했습니다. 컴퓨터공학과 연구실이었는데 해당 학과의 전공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나도 부족했었거든요.


  그렇게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고 끝내 대학원 생활을 하게 된 연구실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요. 많은 기록들이 말해주듯 정말 많은 것들을 겪고 고민했으며, 여전했던 혼란들이 사그라들지 않은 채 참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졸업 후에 시작했던 회사생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여전히 저만의 길이 아닌 것 같았고, 무언가 더 나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한편에 품은 채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자신감 없던 학업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였을까요? 보다 잘 맞을 거라 생각했던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자신감과 열의가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훨씬 더 차분하고 잔잔하달까요. 뚜렷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살아왔던 삶, 그리고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사는 삶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제가 살아가고 있고요.


  항상 멋있고 괜찮아 보이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20대는 그것을 찾고자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러나 결국 제가 그토록 되고 싶었고 찾고자 했던 건 오롯이 저였습니다. 꽤 길었던 시간이 지나 저는 저를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도달하고 싶고 도달할 수 있는 저의 모습이 많은 부분에서 또렷해졌습니다. 더 여유로워졌고 더 엄격해졌어요. 밉기만 했던 제 자신과 화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돌이켜 보니 꽤나 괴로웠던 시간들은 소중했던 경험들과 감정들을 소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 같네요. 그래서 30대는 흔들림과 고민마저도 저의 일부로써 즐겁게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 열심히도 살았습니다. 참 고생 많았던 저의 20대가 고맙고 감사합니다. 30대가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아요. 늘 그래왔듯 저는 저만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조금 더 성숙하고 현명하게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의 시간들은 여전히 부족하고 아프겠지만, 그렇기에 여전히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익숙한 저의 색깔이 조금 더 짙어질 수 있는, 새로운 저의 색깔이 조금 더 선명해질 수 있는 앞으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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