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유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입니다.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주신 입학사정관님의 생신이에요.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점도 없는 일반고 출신의 학생에게 대학교 서류 합격의 기회를 주신 분이십니다. 학창 시절 내내 그토록 바라던 꿈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셈이죠. 그래서 매년 연락을 드립니다. 아무리 표현해도 부족한 감사함을 최대한 담아내면서 말이죠.
감격스러운 합격 소식을 듣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입학사정관님을 만나 뵀었어요. 다짜고짜 징징댔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도대체 왜 뽑힌 건지 모르겠었거든요. 아무래도 잠재력을 봐주신 것 같았지만 명확하게 대답해주시진 않으셨어요. 앞으로 연구자로서 살 거 같지는 않다는 걱정에는 우리 학교가 연구자만을 선발하는 곳은 아니니 괜찮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어요. 합격이 전산 오류는 아니었을까도 진지하게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신입생 시절 내내 합격의 이유를 찾았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이유를 찾는 것은 무의미했어요. 무자비한 재능이 넘쳐나는 곳에서 생활하며 확실해졌던 것은, 꿈에 그리던 곳에 입학했고 그것에 엄청나게 큰 행운이 따랐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결심했습니다. 입학사정관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학교 생활 내내, 아니 앞으로 평생을 증명하며 살아야겠다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감사함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거밖에 없다고 느꼈으니까요.
물론 그 이후의 과정들이 즐겁거나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행운을 맞이했기에 때로는 버겁고 힘들고 부담스러울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것 조차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행운의 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순간마저도 그 행운이 가져다준 선물이며, 누군가는 간절히 갈망하는 기회이자 배부른 불평임이 분명합니다.
한 박사님께서 이런 글을 써주셨었어요.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 운은 내 혼자의 힘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운값을 해야 한다.’ 저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냐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운값을 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지금의 제 삶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운을 만들어주신 수많은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분들의 크고 작은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평생 동안 증명해 나갈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사함과 책임감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