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 Jun 10. 2024

버티는 것도 재능이다

존버

  버티는 건 별로 멋이 없습니다. 비교 대상이 앞으로 나아가거나 성취하는 것이라서 그럴까요. 왜인지 모르게 해내지 못하고 있는 힘들어하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런데 요즘 제가 딱 그렇습니다. 딱히 멋지지 않고, 성취하는 것 하나도 없이, 그저 힘들어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가 좀 많이 밉고 답답합니다. 더 잘하고 싶은데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걸까 싶어서요.


  그러다 친구가 영상을 하나 보내줬습니다. 일본 야구의 전설인 이치로가 다치지 않는 것도 재능이라고 합니다. 운동선수들에게는 ‘저 녀석은 다치지만, 아프지만 않았다면 좋은 선수였는데…’와 같은 이야기가 종종 언급되곤 하니까요. 그래서 다쳐버려 선수 생활을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건 재능이 없는 거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왜 빠르게 가는 성취만 재능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해내는 버팀은 재능이라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버티는 게 기본입니다. 성과는 버팀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해 줄 뿐, 버팀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더불어 살다 보면 원치 않아도 버텨야 하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삶에는 오르내림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나아가면서 성취하고 올라가는 때가 있다면, 쓰러지지 않도록 버텨야 하는 때도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삶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고 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해서 괴로워할 필요가 없는 거였어요. 돌이켜보니 그토록 힘들었던 대학원도 최선을 다해서 버텼을 뿐이었습니다.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다면 그토록 달콤한 과실과 지금의 감사함을 결코 맛볼 수 없었을 거예요.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스스로가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 시기라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행입니다. 매번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도록 세상이 쉽게 흘러가지는 않으니까요. 지금은 버텨야 할 때인 것뿐이에요. 그동안 외면했던 버티는 능력도 빛나는 재능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잘 버텨내는 멋진 모습을 배워나가는 중인 것뿐입니다. 그러니 잘 버텨야겠습니다. 버티다 보면 또다시 앞으로 나아갈 시기를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