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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Nov 18. 2024

우리는 무엇을 뛰어나다 말하는가?

탁월함의 본질

뛰어나다는 것, 탁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렸을 적부터 가장 많이 접했던 기준은 높은 점수였습니다. 시험을 잘 치르면 됐어요. 주어진 문제를 정확히 해결하여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더 이상의 시험은 없습니다. 수능과 같이 대다수의 사람이 동등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시험이 존재하지 않아요. 설령 평가받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점수화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는 무슨 문제를 풀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런 상황에는 새로운 기준의 탁월함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한 차원보다 높은 탁월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시로 문제를 정의하고 임시로 답안을 내놓는 건데요. 세상의 많은 부분은 미지의 영역입니다. 지금 알거나 맞다 생각한 사실이 조금만 지나도 아닌 경우가 생겨요.  소크라테스도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고요. 저는 세상을 가장 잘 기술하는 언어가 과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과학마저도 언제든지 반증 가능하여 무너질 수 있는 것을 보면 이 세상에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완벽한 문제를 찾고 완벽한 답안을 내놓으려 하기보다는, 순간마다 최선의 문제와 답을 찾아 나가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고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차피 일시적일 것 무엇하러 문제와 답을 찾느냐고 허탈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좁혀나가서 답을 내는 행위와, 내놓은 답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건 탁월함 그 자체입니다. 절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끊임없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 매번 부족함과 무지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답을 한다는 뜻이니까요.


이런 과정을 가장 잘 수행할 것 같은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 보니 박사님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박사 학위는 Ph.D.로 표현되고, Doctor of Philosophy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철학자라는 뜻이에요. 철학이라는 것은 무지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박사 과정에서 수행하는 연구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며, 이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동반하죠. 이러한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깊은 성찰과 철학적 사고입니다. 그래서 박사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넘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는 삶의 복잡성과 무지에 직면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자세와도 연결된다고 봐요. 그렇기에 사회가 박사 학위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탁월함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탁월해지기 위해 모두가 박사 과정을 겪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불확실함과 무지 속에서 매 순간 답을 내리고자 애쓰는 하나의 끝없는 탐구 과정이니까요. 지식의 한계와 무지를 인정해야만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에게 갖는 기대나, 아이가 어른에게 갖는 기대나, 회사가 경력자에게 갖는 기대 등, 세상이 한 개인에게 기대하는 탁월함의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공통점은 어쩌면 끝없는 탐구 과정에 얼마나 익숙하고 잘 견뎌왔느냐에 대한 기대치인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탁월하다는 것은 끊임없는 무지의 인식 속에서 질문하고 탐구하며, 임시적인 답안을 내고 그것을 수정해 나가는 지속적인 성장의 과정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탁월함을 갖고 싶은 걸까요? 어떤 것을 탐구하고 싶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에 박사 학위 과정이 이전보다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여전히 학교 안에서 지식을 탐구하기보다는 세상을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제품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나라는 인간은 어떤 모습인지 등이 더욱 궁금해요. 끝없는 질문의 굴레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어차피 끝나지 않을 고민과 과정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정답이 없는 세상이라면 반복해서 질문하고 답을 구하려 애써나가면서, 그리고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얻은 순간들의 답을 통해 저만의 탁월함을 가꿔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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