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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린 Jun 03. 2024

혹시 내가 성인 ADHD인 걸까?

몇 년 전부터 유튜브에 ‘성인 ADHD’ 관련 컨텐츠가 늘어났다. 그리고 해당 영상의 댓글들에는 영상에 나온 증상들에 깊이 호응하며, 자신도 성인 ADHD가 아닐까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 나도 저 증상이랑 딱 맞는데! 요즘 아무래도 집중도 안 되고, 충동적으로 자꾸 뭐 먹어서 살도 쪘거든요…. 제가 나태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게 성인 ADHD증상이랑 딱 맞는 것 같아요!’

‘우와, 저 어릴 때 맨날 산만하다고 욕먹고, 사회생활 하겠냐며 핀잔 들었었는데, 진짜 직장에서도 집중 안 돼서 상사한테 엄청 까였거든요.. ㅠㅠ 진짜 저 AHDH인가 봐요….’

같은 식의 댓글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들의 호응에는 많은 것들이 섞여있다. 그동안 본인의 집중력 문제 때문에 곤란했던 일들도 생겼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타인들의 비난을 감수하기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성인 ADHD 판정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증상이 호전되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을 거고.




나는 2021년쯤에 성인 ADHD를 의심해서 병원에 다녔던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내 집중력은 정말 처참한 수준이었는데, 쪽대본식으로 진행되는 회사 업무 때문에 무엇 하나를 진득하게 집중해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주 업무는 게임의 UI/UX 디자인업무였지만, 주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다가 중간중간 10분짜리부터 2시간짜리까지 다양한 ‘쪽대본’들이 들어오면서 집중력이 박살 날 수밖에 없었다. 조그마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고, 회사 전체에서 디자인 포지션인 사람이 나 혼자였기 때문에 그런 거였지만, 게임 굿즈를 디자인하는 것도, 그리고 프로그래머들에게 UI를 전달하는 것도, 게임 홍보를 위한 포스터나 영상을 만드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주 업무 사이사이에도 우선순위가 급하다면서 잡다한 일들이 계속 비집고 들어왔던 것이다.

결국은 쪽대본식 업무의 여파는 집에서 다른 걸 할 때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자면, 세탁기를 돌려야겠다 생각을 한 뒤에 빨래를 넣고 세제까지 넣은 뒤 갑자기 내일 먹을 반찬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컴퓨터 책상으로 가서 앉는다. 그러면 쿠팡에서 반찬만 주문하고 다시 세탁기로 돌아가야 하는데, 유튜브 추천 영상에 신작 게임 리뷰가 떠 있는 게 보여서 그 영상을 틀어버리는 거다. 하지만 그 영상에도 2분 이상 집중하지 못한 채로 세탁기를 돌리러 가기 전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던 IOT 관련 블로그 글을 본다(난 당시에 스마트 가구에 관심이 막 생긴 참이었다). 당연하게도 난 반찬만 간신히 주문하고, 원래 돌리려던 세탁기를 방치해 둔 채 그날 저녁을 마무리한다.

이런 식으로 뒤죽박죽 어지러운 생활이 몇 달째 반복이 되니까 난 스스로를 성인 ADHD환자로 의심하게 되었다. 분명 난 어릴 때는 그림 한 장을 3주 동안 매일 14시간씩 그리면서도 딱히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던 인간이었는데, 앉은자리에서 수 백 페이지의 책을 다 읽던 사람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망가졌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결국은 난 동네에 있는 정신과로 가서 별별 테스트를 다 받아봤다. 병원에서 주는 노트북에 깔려있는 ADHD 테스트를 풀기도 했고, 머리에 전극이 달린 스티커를 붙여서 뇌파를 측정하기도 했다. 수 백 문항의 설문지도 받아봤고 정말 별의별 테스트를 받아봤다.

하지만 기쁘게도? 아니면 슬프게도? 결과는 ‘정상’이었다.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이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차라리 내가 환자라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약을 먹고 호전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존재했겠지만, 난 ‘정상’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었고, 그저 별 다른 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이 개박살 난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 후로도 한동안 집중력 문제에 시달렸다. 도저히 생활이 바로잡아지지 않아서 자괴감도 많이 느꼈지만,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그 증상들은 신기하게도 상당 부분 사라졌다.

이제 와서 그때를 돌아보면, 난 그때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몰려있는 상태였다. 키우던 고양이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지 일주일도 안 돼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몰려왔지만, 회사 업무는 이전보다 배는 바빠졌으니, 내가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었다. 아무래도 9시에 출근하면 11시에 퇴근할 정도로 매일같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데, 딱히 체계도 없어서 받는 일은 죄다 쪽대본식이다. 이 정도면 아무리 두뇌 기능이 정상이라도 정신 못 차리는 게 당연한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안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고, 마침 내 증상과 비슷한 ‘성인 ADHD’라는 병에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쓰는 컴퓨터나 핸드폰도 계속 켜 놓은 채 이것저것 많은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리면 버벅거리고 느려진다. 이런 기계를 다루는데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씨 얘가 고장 났나? 대체 왜 이러지’라고 고민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증상은 재부팅만 해주면 손쉽게 해결되곤 한다. 그저 복잡한 머리를 싹 정리해 주면 해결되는 문제들인 거다.

혹시라도 본인이 요즘 집중력이 정말 처참해져 있는 상태인데, ADHD증상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된다면, 한 번 현재 상황이 얼마나 바쁜지 확인 해보길 바란다. 딱히 바쁜 일도 없는데 집중력이 처참하다면 정말 병에 걸린 상태일 수도 있지만,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그저 과도한 업무로 인해서 버벅거리는 것일 수도 있다. 병원 가서 이 증상만 해결하면 될 텐데 라는 희망을 품고 갔다가 나처럼 실망하는 불상사는 겪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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