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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비

by 진하린


근 한달간 글을 쓰지 않았다.


최근 1년 반 가까이 해오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로인해서 오랫동안 미뤄왔던 것들을 정리해야했기 때문이다. 심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재정비해야할 것들이 많았다.

마치 오랫동안 아물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상처가 곪다 못해 염증과 열병을 일으키고, 어쩔 수 없이 요양을 해야만 하는 상황 같았다.


이 한달 사이에 나는 다시 소속이 없어졌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동업을 하던 파트너와 갈라서게 되었고, 나는 나대로 홀로서기를 해야할 필요가 생겼다. 방향이 달랐고, 가치관이 달랐다. 그래서 지금까지 쭉 달려오던 것들을 뒤로하고 재정비가 필요해졌다. 꽤나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데, 이걸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시간과 노력과 열정이 아깝긴 해도 끝끝내 이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서 이제서야 정말 내가 뭘 원하는지는 뒤늦게서야 깨닫게 된 것 같다. 내 나이가 30대 중반만 아니었다면 조금 더 상쾌한 기분이었을텐데, 배우는게 늦는게 내 죄라면 죄겠지.





1. 나 왜 이렇게 됐지?


동업이 끝나고 대략 한 달 동안 나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캠핑을 다녀왔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동안 너무 등한시해왔던 요소들이었다.

IMG_4045.JPG 우습게도 1년 반이나 시들어가던 나는 한달의 자유덕에 많이 회복되었다. 영화, 드라마, 책, 캠핑 이게 뭐라고...


최근 1년 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과 가장 멀어져있는 동안 나는 병든 닭처럼 기운 없이 앓기 시작했고, 낭만 없는 퍽퍽하고 메마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은 '내가 대체 이 세상에 살아서 뭐하나'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어느 날 운전대를 잡고있는 내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정신이 멍해졌다. 마치 유체이탈한듯이 손 끝의 감각이 사라짐을 느꼈다. 거의 15년쯤 전에 우울증이 극도로 심했을 때 느꼈던 무력감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으면 아마 '내가 나약해서 그래'라며 스스로를 더 밀어붙이고 질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고, 이 상태에서 나를 바꿀 수 있는건 환경을 조절하는 것 뿐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찾다가, 오로지 효율과 생산성에만 집착하는 업무 및 라이프스타일이 나랑 전혀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분명 대다수의 업에는 생산성과 효율성이 중요한 부분이지만, 창작 컨텐츠를 만드는데에는 계산이 100%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500원짜리 클리어파일에 특정 애니메이션의 캐릭터가 그려져있음으로 인해서 5000원에 팔리는 것을 몇 번이나 봐왔던 터였다. 아니, 본 것을 넘어 실제로 내가 그 굿즈를 만들어서 팔아봤었다. 물건이 가진 가치와 효율성을 계산기로 두드리면 도저히 현실적이지 않은 수치이지만, 팬들은 전혀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생산성과 효율만 따지고 드는 삶을 살다보니, 점점 내가 원래 속해있던 세계가 무가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들은 그 돈을 쓰면서 보잘것 없는 클리어파일을 구매하는 걸까? 왜 아무 가치도 없는 피규어, 스케츄, 아크릴 스탠드를 책상 위에 전시하는걸까?"

이런 것들을 따지고 드는 순간, 내 마음 속에 있던 인생 계산기가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동안 쌓아온 커리어와 라이프스타일이 전부 무가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속에서 크게 망가져버린 것이었다.



맞다. 나 원래 그런 인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됐지?


침착하게 돌아보니 내 삶에는 여유가 전혀 없었고, 그 동안 내가 좋아하던 영화감상과 독서, 캠핑등을 거의 하고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문화생활과 여유가 빠진 내 삶은 그저 편의점 도시락만으로 생존해나가는 삶과 다르지 않았다. 굶어죽지만 않을 뿐, 몸에 생기가 하나도 없이 필수 영양소의 불균형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삶인 것이다.






2. 내가 내가 아니게 된 이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오히려 정신줄 놓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게 훨씬 큰 도움이 된 적이 많았다.

게임 개발할 때가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활동을 하는 대신에 게임개발에 몰두했는데, 심지어 그 게임은 당시에 유행하던 장르도 주제도 아니었다. 너무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바람에 참견쟁이들은 '왜 모바일이 아니라 패키지 게임이냐, 왜 3D가 아니라 2D로 제작하냐, 도대체 SCP가 뭐냐'라는 태클을 걸기 일쑤였다.

그린라이트 복사.jpg 이 게임을 만들려고 취업도 포기하고 모든 시간을 갈아넣었었다. 이게 정말 내 직업이 되어줄줄은 몰랐다.

그러나 누가봐도 상업성 따위는 없어보이는 그 마이너한 게임이 내 커리어가 되어줬다. 그 게임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나와 동료들은 월급이 없을 때도, 초과근무수당이 없을 때도,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그저 더 나은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 하에 밥먹듯이 야근을 했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게임을 완성할 때까지 팀에서는 그 누구도 이탈하지 않았고, 덕분에 한국 인디씬에서 나름 인지도 높은 게임을 출시할 수 있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지고, 상업성을 따지는 마인드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기쁨이 그 일에 깃들어있었다. 창작하는 과정 자체가 내게 있어서 즐거움이었고, 모두가 다 함께 철없이 유치한 창작욕을 뽐낸 덕분에 가장 오타쿠스럽고 가장 매니악하고, 그래서 오히려 충성팬들이 많은 게임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내가 왜 잘 되었는지를 퇴사하고나서 3년간 점점 잊어버렸다.

이제 어느정도 돈도 벌었고, 능력도 생겼으니 다시 사회가 정해놓은 레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열심히 게임을 만들던 동료들에게는 현실감각이 없다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하나같이 열정적이고 유능한 동료였는데, 어른의 시선이라는 맹독성 색안경을 끼고 보니 갑자기 못나보였다.


아직도 게임개발에 인생을 바치고 있는 동료들, 퇴사하고 창작을 공부하던 나와는 달리, 내 오랜 친구들은 이미 하나 둘 결혼하고 있었고, 집을 샀으며, 누군가는 아이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있자니, 내가 얼마나 애처럼 사는지를 적나라하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가계부도 안 쓰고, 딱히 적금을 들지도 않았고, 차도 없었으며, 부동산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다. 내 스스로가 어른이 될 준비를 아직 못 마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그런 압박에 시달리자, '나만의 창작물을 만들고싶다'는 일념하에 퇴사했던 다짐은 어디론가 도망가고, 점점 '나이에 맞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그리고 남들은 다 유치하다고해도 나만큼은 유치하다고 생각지 않던 문화컨텐츠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것들인데, 철이 들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딱딱해지니 관점이 바뀌었다.

오히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것 때문에 시간이 뺏기고 나약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왠지모르게 책임감 없이 사는듯한 느낌이 들고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아니게 되었고, 점점 아파졌다.





3. 그래서 나는 다시 유치해지기로 했다.


동업을 마무리한 후,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시간을 겪고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게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퇴사직후부터 계속 나를 괴롭혀왔던 '30대가 되면 결혼해야지', '집을 사야지', '차를 사야지' 하는 것들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기로 했다.


더불어 한 달 동안 홀로서기를 위해 나를 리브랜딩하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낱낱이 훑어봤다. 첫 회사인 게임회사부터 사촌의반찬가게, 그리고 친구와 했던 팀까지. 완전 0부터 시작하는 브랜딩을 3개나 진행해봤음에도 나 자신을 브랜딩하는게 가장 어려웠다.

20대 때 나름 글을 쓴다는 이유로 친구들 취업시즌에 자소서를 봐주면서 '이 부분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절대 빼놓으면 안되는 네 강점이야. 왜 이걸 이렇게 축소해서 썼어?'라면서 질책하던 내가,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 알아보려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며 반성하게 되었다. 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걸까?


아무튼 계속 스스로를 파고들다보니 나는 생각보다 유치한 사람이고, 생각보다 오타쿠였고, 생각보다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주제에 항상 남들과 섞이기 위해,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 내가 아닌척 연기를 하다보니, 나 자신이 깎여나갈 수밖에 없던 거였다. 내 유치한 부분, 독특한 부분을 감춰야만 그들이 나를 제대로 대우해줄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고, 여전히 유치하고, 여전히 창작물을 덕질하며 살고있다.

물론 30대가 훌쩍 지났으니 호들갑 떨지도 않고, 딱히 밖으로 티내지도 않고, 조용히 덕질을 하며 꿈을 꿀 뿐이지만, 결국 파고들면 나는 그저 어릴적부터 게임과 판타지소설과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좋아했던 한 소년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글을 브런치에 올릴 거고, 내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디자인과 앱 개발 활동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한 동안 정체되어있었던 내 모든 활동에도 불구하고 종종 올라가는 라이킷 수와 구독자 수를 보면서, 비록 잘 쓰는 글은 아니지만서도 누군가는 어디선가 나의 글이 업데이트 되길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오랫동안 미뤄왔던 창작자를 위한 AI도 올해 중으로 완결할 수 있도록 마무리 파트를 준비하고있다. 그 동안 AI툴의 흐름이 많이 바뀌었고 창작업계 사람들의 거부감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아서 조금 더 본격적으로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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