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솜씨에 알 배겼어.
친구와의 동업을 마무리하고 한 달가량 글을 거의 쓰지 않으면서 글쓰기 근육이 퇴행됨을 뼈저리게 느꼈다.
매주마다 글을 쓰던 연초에 비해 텀블벅 프로젝트다 뭐다 점점 바빠지면서 간격이 뜸해지다가, 아예 한 달 반 가량을 그만뒀었다. 그 상태에서 글을 다시 쓰니 정말 한 자, 한 자 쓰는 것이 마치 녹슨 기계의 톱니바퀴를 억지로 돌리는 것처럼 뻑뻑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이것은 마치, 근력운동을 오랜만에 했을 때 느끼는 근육통처럼 묵직하고 뻐근한 종류의 고통이다. 아파서 짜증 나면서도, 다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음을 증명하는 훈장 같아서 미운 정이 드는, 그런 고통.
나는 10대 후반인 고등학생 때부터 근력운동을 했다.
학창 시절에 팔씨름도 했고, 태권도장도 다녔지만, 살이 잘 붙고 덩치가 큰 내 유전자 특성상 근력운동과의 궁합이 제법 괜찮았다. 그래서일까 20대 초반부터 열정적으로 헬스장을 다니면서 근육을 불려 왔다. 100kg이 넘는 내 체구는 근육이 자라날 여유공간을 충분히 갖고 있었기에 운동 전공이 아닌 것 치고는 굉장히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나는 성실한 성격이 아니고, 근력운동도 재미를 붙이기 힘든 운동이었다. 클라이밍이나 격투기처럼 심장이 두근거리는 짜릿함도 없고, 그저 무거운 쇠덩어리를 들었다 놓았다 반복할 뿐이다. 지루하다. 단조롭다. 그래서 나는 점점 근력운동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 후로는 가끔가다 허리가 너무 아플 때, 혹은 다른 스포츠를 하다가 다쳐서 재활이 필요할 때, 그럴 때만 근력운동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처럼 근력운동을 띄엄띄엄하다 보면 알게 되는 잔인한 진리가 하나 있다. 사실 직장인들이라면 바쁜 일정 때문에 2주가량 운동을 쉬어본 적이 있을 테니, 거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일 거다.
“2주 이상 쉬고 나서 다시 근력운동을 시작하면 알이 배긴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그전에 아무리 꾸준히 운동을 해왔어도 상관이 없다. 2주 룰은 생각보다 엄격하다. 지난날 100kg의 데드리프트를 12회씩 해도 별 무리가 없었다고 해보자. 바쁜 일정을 마치고 2주 만에 헬스장으로 돌아와 같은 중량, 같은 횟수의 운동을 소화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복귀 당일에는 어떻게든 운동이 가능할 테지만, 바로 다음날부터 근육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댈 것이다. 단지 신발을 신기 위해 허리만 숙여도 기립근이 뒤틀리고, 엉덩이가 뻐근해지는 고통과 함께.
그럴 때면 알이 배겨 엄살을 부리는 몸에게 섭섭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너 2주 전에는 매일매일 아프지도 않고 괜찮았잖아. 대체 왜 그래?'라고 따지고 싶은 섭섭함 말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알고 있다. 2주가 넘게 쉬었으니, 몸은 원래대로 게으르고 나약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을 뿐이라는 걸. 근육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행한다. 이것은 인체의 효율성 추구다.
쓰지 않는 것을 유지하는 건 비용이 드니까. 몸은 정직하고 냉정하다.
내 글쓰기 실력도 마찬가지다. 꾸준히 매주 써 오던 습관을 멀리한 채로, 한 달씩이나 쉬었으니 응당 퇴행하는 거다. 글쓰기도 어찌 보면 근력운동이랑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저 꾸준히 글을 쓰면 글쓰기 근력이 조금씩 강해지는 것이고, 독서와 영화 같은 문화생활로 영양을 보충하면 글쓰기 근육이 커지기 마련이다.
글만 쓰고 문화생활을 등한시하면?
단백질 없이 운동만 하는 격이다. 글감이 고갈되고, 감성은 메마르며, 표현력은 떨어진다. 글쓰기 근육은 자라지 않고, 어느샌가 타성에 젖은 무의미한 글을 쓰게 될 수도 있다.
문화생활만 하고 글쓰기를 등한시하면?
영양소만 과다 섭취한 것처럼 머릿속이 망상으로 가득 찬 정신적 비만 상태가 된다. 구체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아이디어들이 기름기로 끈적끈적하게 머릿속을 채운다.
둘 다 충분하면?
영양과 단련이 둘 다 충분하다면, 살집이 있어서 근육 붙이기 쉬웠던 내 몸처럼, 글쓰기 근육도 빠르게 자랄 것이다. 쓰고 싶은 소재도 충분하고, 그걸 표현할 기술도 단련되어 있는 상태일 테니까.
이렇게 분류해 보면 정말이지 근력운동과 참 비슷하다. 정신활동이라는 것은 조금 더 우아하고 숭고할 줄 알았는데, 사실상 쇠질과 많은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결국 글쓰기도 육체노동 같은 거다. 근육 대신 머리에 쥐가 나는 육체노동.
꾸준함과 루틴은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루틴을 한 번 제대로 잡은 사람은 자신의 삶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아등바등 애를 쓴다. 쾌락을 줄이고, 피곤함을 참아가며, 그 루틴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루틴이 무너지는 순간은 너무나도 쉽게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야근, 예상치 못한 약속, 혹은 그저 '오늘 하루쯤은...'이라는 작은 방심. 그렇게 시작된 균열은 눈덩이처럼 커져서, 어느새 한 달이라는 공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공백 속에서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다. 근육은 빠지고, 글은 막히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의 고통이 기다린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통이 얼마나 지속될지, 얼마나 힘들지, 그리고 언젠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다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처음 시작할 때는 몰랐던 두려움이 이제는 내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시작한다. 왜냐하면 루틴이 무너진 삶은 마치 정박하지 않은 배처럼 표류할 테니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그 공허함이 싫어서, 나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는다. 다시 헬스장에 간다.
글쓰기는 근력운동과 정말 많은 부분이 닮았다. 꾸준히 하면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장하고, 쉬면 빠르게 퇴화한다. 영양소를 섭취하고, 꾸준히 자극을 주고,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너무 오랫동안 그만두지 않는 것이다.
나는 지금 재활 중이다. 솔직히 연초에 비해서 글을 쓰는 것이 너무너무 힘들다. 쓰고 싶은 글은 곱절로 많아졌는데, 매번 쓸 때마다 근육통이 느껴져서 아파하며 쓰고 있다. 내가 쓴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못났고, 전개방식도 허접해서 이대로 써도 될까 싶다. 원래도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었을지라도, 매일 이전의 나보다는 나아가고 싶은 욕심에 더욱 괴롭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비록 한 자, 한 자가 녹슨 톱니바퀴처럼 뻑뻑하지만, 이 고통이 내일의 유려함을 만든다는 걸 알기에. 근육통이 근육을 만들듯, 글의 고통이 글쓴이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