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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Apr 08. 2022

취향이 없는 사람

한동안 글을 못 쓴 핑계

요즘 글을 쓰지 못했다. 않았다? 모르겠다. 에라이.


브런치에서 글을 쓰라며 알람이 온 것이 두 번, 감사한 독자님이 댓글을 남겨주셔서 소환된 것이 한 번. 이제 더 이상 미루다 가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것 같아 이렇게 돌아왔다. 아무 의지도 의욕도 없는 허망한 상태로.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몸이 많이 힘드니? 아니. 체력적으로 지칠 일은 딱히 없다. 운동도 근근이 해나가고 있고, 체중이 좀 늘었지만 그것도 적응이 되었고, 잠도 잘 자고, 먹기도 잘 먹고 있다. 출퇴근이 그리 힘에 부치지도 않고, 근무시간 중 커피 없이 버티는 날도 종종 있다. 정리하자면 최상의 상태는 아니라도 최악은 지나쳐왔으니 안심인 상황이라는 것.


다시 묻는다. 너는 지금 뭐가 그렇게 힘드니? 나는 요즘 머리가 너무 무거워.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좀만 균형을 잘 못 잡았다가는 꼭 하고 떨어져 버릴 것 같아. 나름의 균형과 평화를 유지하며 그 무게 또한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던 내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한 건 그 질문으로부터였다.


“좋아하는 노래가 뭔가요?”


취미로 배우고 있는 피아노 수업 중 선생님이 던진 간단한 질문이었다. 나는 고민했다. 한 2분 정도 유튜브 뮤직의 플레이리스트를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고민을 하고 있었더니 선생님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묻는다.


“아니, 음악이 좋아서 퇴근 후에 시간을 내서 피아노를 배우러 오시는 분이 좋아하는 노래 말하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려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말씀해보세요.”


그 물음에 마음이 더 급해져 화면을 넘기는 손가락은 더욱 빨라졌지만 그다음 2분이 지나갈 때까지 나는 결국 답하지 못했다.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운동할 때도, 일을 할 때도 늘 귀에 이어폰을 꼽고 사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는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을 못하다니. 뭔가 이상했다. 목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난 딱히 좋아하는 게 없구나, 라는 생각이 한번 크게 머릿속에 새겨지고 나니 내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딱히 좋은 게 없는 대신  딱히 싫은 것도 없는 무난한 사람인 건 아니냐고 그것 또한 축복이라고 하는 친구의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난 무난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글이 손에 잡히지 않던 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의 인터넷 공간에서 보냈다. 돈이 많은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좋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내 손 끝을 지나갔지만 그중 역시나 내 시선이 머물렀던 건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에게였다. 책이 너무 좋아서, 그림이 너무 좋아서, 글이 너무 좋아서, 음악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든 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보면서 계속해서 머리가 무거워졌다.


지금 나는 의문과 의심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나같이 어정쩡한 사람이    있을까?  해도 되는 걸까? 이런 의문이 나를 중심으로 뱅뱅 돌며 나를 놀리는  같다. 이런 상황에서 솔직히 두세 번 글을 쓰려해 보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남은커녕 나조차도 다시 보기 싫은 글을   같았다. 어정쩡한 .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미지근한 .


하지만 두 번의 브런치 알림과 한 번의 소중한 댓글로 다시 소환된 이상 그 인과관계를 뒤집어보기 위해 애를 써보려 한다. 취향이 없어서 글을 못쓰는 창피한 시간을 보낼 바에는 창피한 글이라도 써서 취향을 발굴해보려는 작전이다. 너무 창피하고, 싫고, 억지스러운 글이 될지라도 말이다.


*이 글 또한 너무 창피하지만 용기를 내어!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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