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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Apr 08. 2022

극강의 맛

스리랑카의 맛

그때 그거 진짜 맛있었는데…로 시작하는 우리의 대화중 제일 자주 주인공으로 모셔지는 대상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저 웃기기만 하다. 애초에 이름이 없었던 걸까? 그래도 그때 그거, 하면 그게 제일 먼저 생각나니 우리 다시 얘기해볼까?


아직 지지 않은 별을 보고 싶어 하는 너와 떠오르는 해를 보기 좋아하는 내가 그 이른 새벽 툭툭을 타고 근 한 시간을 달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마치 우주 한가운데 도착한 기분이었지. 발 밑은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는 소리도 없고, 눈 돌리는 곳마다 별밖에 없었으니 말이야.


그 조용한 곳에 우리 발소리만 들리는가 싶더니 멀리서 서너 마리의 개 무리가 우리를 데리러 왔었지. 마치 잘 훈련된 가이드처럼 우리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안내해줬던 게 기억이 나. 그렇게 개들을 따라 도착한 곳에서 우리는 차분히 해가 떠오르는 것도 바라보았지.


지지 않은 별도 봤겠다 떠오르는 해도 봤겠다. 이제 우리가 넓고 넓은 차밭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도 점점 눈에 들어오고, 추위가 느껴지고, 몽롱했던 정신도 점점 돌아왔었지. 이제 새벽부터 굶긴 배를 채워야 할 시간이었어.


어차피 그곳에는 많은 선택지가 없었어. 딱 하나, 좀 전부터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있는 그 집으로 향했지. 집처럼 보이는 곳은 통째로 주방으로 쓰이는 모양이었고, 우리는 너무 추웠지만 테라스 자리에 앉아야 했지. 어떤 아저씨가 오더니 투? 하고 묻고는 그냥 가버렸어. 아마 우리가 골라서 주문할 수는 없었던 걸로 기억해. 그리고 얼마 안 가 우리 앞에 커다란 쟁반이 툭 하고 놓였지.


쟁반에는 찌글찌글한 모양의 빵과 알 수 없는 빨간 양념이 담긴 그릇, 그리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옅은 갈색 빛의 밀크티가 있었어. 일단 너무너무 배가 고팠으니 먼저 빵으로 손이 갔어. 부분 부분 갈색과 검은색으로 탄 그 빵을 두 손으로 잡아 주욱하고 찢으니 그 속에서 연기가 푸욱 하고 나왔고, 뜨거워서 이리저리 손을 바꿔가며 입에 넣을 정도로 작게 자르는 동안 그 연기는 점점 사그라들었지. 먹기 좋게 식은 그 빵에 정체불명의 빨간 소스를 발라서 입에 넣었는데, 적당히 따뜻한 빵과 매콤한 양념이 입을 후끈후끈 데워주면서 금세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지. 바깥은 너무너무 추운데 몸은 후끈후끈하니 반신욕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땀이 나면서 나른해지고 여유를 되찾았지.


이제 밀크티를 먹을 차례였어.  한두 모금이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잔에 담겨있던 밀크티는 이제 김이 좀 가시고 위에 엷은 우유 막이 생긴 채였는데, 조금 기울여서 입을 가져다 대니 그 막이 후루룩 입에 말려들어왔고 그 뒤로는 아주 묵진한 단맛과 진한 향이 한숨에 훅! 하고 들어왔어. 여기저기 남아있던 입속의 매운맛을 한 번에 씻어내려 가고 이번에는 차향이 입속을 가득 채우는데, 왜 그렇게 작은 잔에 줬던 건지 너무 알겠더라. 이건 끊어마실 수 있는 그런 음료가 아니니까, 한 번에 훅하고 입안 가득 털어 넣고 잔뜩 만끽해야 하는 거였어서 그랬던걸 꺼야. 아마 두세 번은 더 시켜먹었었지?


그때 그 테라스 자리 나중에 알고 보니 명당 중 명당이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빵이랑 소스, 밀크티에 취해서 그다지 풍경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게 웃기긴 하는데, 전혀 아쉽지는 않아. 어쨌든 정말 맛있었으니까


*의도적 각색과 비의도적 각색으로 이루어진 글임을 밝히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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