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는 무엇이든 하기가 싫고 실컷 늘어지고 싶은 분위기가 있다.
그런 기분이 들면 침대나 소파에 드러누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제격이다.
연말 계획의 일환으로 넷플릭스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솔로지옥2를 발견했다.
일전에 솔로지옥1을 흥미롭게 봤으므로 기대를 가지고 시청해 보았다.
솔로지옥은 지난 몇년간 제철인 하트시그널류 연애프로그램의 일종으로, 인천 부근으로 추정되는 무인도 컨셉의 섬에서 진행된다. 이 섬은 '지옥도'로 불리는데, 코앞에 바다가 있는 해변 숙소에 밥도 주고 술도 줘서 지옥은커녕 놀고 먹기 좋은 휴양지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도'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안에서 남녀가 매칭되면 '천국도'라는 이름의 호화 호텔로 가기 때문이다. 천국도의 정체는 인천 영종도에 있는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인데, 파라다이스니까 천국도고 천국도의 반대니까 지옥도다. 보아하니 담당자들이 이름 짓기가 제법 귀찮았나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스펙 좋고 외모가 뛰어난 20~30대들이 외딴 섬에 모여 공작새처럼 자신을 한껏 뽐낸다. 그리고 원하는 상대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일반적인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운이나 상호 호감 등 비교적 점잖은 방법으로 데이트 상대를 정한다. 그러나 솔로지옥에서는 줄다리기를 해서 원하는 여자들과 점심을 먹는다든가, 씨름을 해서 천국도에 데려갈 남자를 정한다든가 하는 육체미 소동을 벌인다. 무인도에 떨어진 컨셉이다보니 공예를 하거나 칵테일을 마시는 등의 나약하고 물러터진 모습보다는 화끈한 야생성을 바탕으로 추파를 던지는 것이다.
포맷 탓인지 그 결과도 야생과 유사하다. 대충 두어 명의 남성에게 모든 여성들의 관심이 쏠리고, 두어 명의 여성에게 모든 남성들의 주목이 쏠린다. 이럴 때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참으로 안쓰럽다. 다들 밖에서는 제법 먹어줬을 외모와 스펙인데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외로이 지옥도에만 머무는 모습이 마치 남의 구역으로 쫓겨난 영역동물들 같다. 문득, 쥐 여섯 마리가 모이면 대장부터 부하까지 서열이 생기는데, 각 집단에서 대장 쥐만 여섯 마리 모아도 그 안에서 다시 서열이 나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연애 프로그램에는 그 프로그램을 상징하는 주인공 격 인물들이 있다. 솔로지옥 2에도 여자 주인공이 있는데, 딱 보면 공주처럼 생겨서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다 학력도 서울대학교 피아노과다. 이 여주를 두고 세 남자가 싸우는데, 그녀는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타입이라 데이트 상황에 따라 좋고 싫고가 얼굴에 다 드러난다. 그리고 그걸 구경하는게 퍽 재미가 있다. 남자 주인공 후보는 아래와 같다.
남자 1 - 성형외과 의사,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얼굴도 남자답게 생겼다.
남자 2 - 직업이 기억나진 않는데 커피쪽이었던 것 같고, 키가 크고 훤칠하게 생겼다.
남자 3 - UDT를 전역한 유튜버로, 힘이 세고 잘생겼다.
글로만 보면 남자 1의 당선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그러나,
대단한 스펙을 지닌 남자 1은 안타깝게도 첫 번째 데이트에서 물음표 살인마이자 하남자로 판명되어 두 번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여주에게 첫눈에 반한 남자 2는 그녀가 자신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만, 지고지순한 일편단심 서브남주의 가시밭길을 걷는다.
의외로 여자 주인공이 눈에 하트를 수십개씩 띄우며 빠져버린 사람은 남자 3이었다. 게다가 여자 주인공 외에도 무려 3명의 여성에게 구애를 받는다.
물론 남자 3도 잘생기고 몸이 좋지만, 남자 1이나 남자 2에 비해 덩치가 작고 얼굴도 압도적으로 잘생기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대단한 상남자였다. 매사에 여유로우며 상대방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이페이스. 어쩌면 다양한 스펙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남자냐 하남자냐일지도 모른다.
이후의 남주 쟁탈전은 물음표 살인마가 배제되고 매력적인 상남자 대 일편단심 순애보의 싸움으로 흘러가는데, 최종 선택 결과는 스포일러이므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겠다. 연말 연초가 루즈한 상황이라면, 혹은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무인도에서 쥐잡듯 사랑싸움을 하는 광경을 보고 싶다면 한 번쯤 추천한다. 열심히 보고 나서 노트북을 덮으면 문득 일부일처제가 유지되고 있는 현실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