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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입장정리 Feb 18. 2023

헬스 열심히 하는 법

이번 달은 태어나서 제일 헬스를 열심히 하고 있는 달이다. 오늘까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17일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헬스장에 갔다. 수 년 전 권투를 배워 모두 다 패버리겠다는 집념으로 통 크게 글러브를 구매하고 세달치를 등록한 일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정확하게 9일째 되는 날을 마지막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권투장에 이별을 고했던 사례와 비교하면 제법 놀라운 발전이다.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력도, 기도도 아닌 돈이었다. 그 육체의 두께와 부피로 보아 헬스가 절실히 필요했던 직장 동료는 꽤나 똑똑한 사람이었다. 수수깡 같은 스스로의 의지력을 믿지 않고 헬스 스터디를 설립한 것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는 헬스장에 간 인증샷을 찍지 않으면 하루에 벌금 5000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사람들을 모았는데, 나는 열심히 헬스를 하고 벌금을 내지 않아서 꼭 공짜로 산해진미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참가했으며, 삼 일 만에 크게 후회했다. 그러나 후회해도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탈퇴하기 위해서는 탈퇴비 25000원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집을 차압당한 사람의 심정으로 운동화를 들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운동기구 인증샷만 찍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선 회원증을 건네고 열쇠를 받아 들어간 이상 다시 나오기가 여간 눈치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사진만 찍고 30초만에 나오려 하면 프론트에 있는 직원들이나 되도 않는 무게를 치고 있는 덩치들이 나를 더러운 인스타충 취급하며 비웃고 괄시하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분동안 걷기만 하자는 생각으로 러닝머신 위에서 걷다 보면 조금 몸이 덥혀지고, 또 앞에 있는 모니터에 해리포터며 셜록이며 하는 것들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에 오분 정도는 더 있어 볼까 하고는 속도를 올려 간단하게 뜀박질을 했다. 그렇게 적당히 뛰다 이제 갈까 하고 고개를 들면 러닝머신 너머 거울에 비루하고 허약한 육체가 비쳐 저기서 어깨가 조금은 더 넓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후 아령이며 바벨을 깔짝깔짝 들다가 나뒹굴고, 또 몇가지 기구들을 타고 움직이다가 보면 어느새 마무리 운동을 하며 숨이 넘어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종종 침대에 누워 곤히 자다 헬스 알람에 일어날 때면, 그냥 오천원을 낼까, 그냥 오늘만 쉴까 하는 달콤한 생각들이 유혹한다. 그러나 눈알을 몇 번 더 굴리다 보면, 내 통장에서 빠져나갈 피 같은 오천원과, 내가 낸 벌금으로 맛있는 음식을 탐할 사람들 생각에 눈물이 나고 치가 떨려 통나무 같은 몸을 이끌고 다시 그 땀내나는 헬스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항상 시작이 어려운 것이고,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게 해 주는 의지력은 돈에서 얻을 수가 있다. 헬스를 끝내고 땀에 젖어 집으로 향하는 오늘, 퇴사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대출을 받으라며 껄껄 웃던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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