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낙엽이 진 거리를 터벅터벅 걸으며 고뇌에 잠기다 보면 별안간 해마 같은 것이 옆을 쉭 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깜짝 놀라 다시금 쳐다보니 그것은 해마가 아니라 전동 킥보드를 탄 사람이었습니다. 엄숙한 표정과 곧게 선 자세로 미동도 없이 고요하게 멀어지는 모습은 백조처럼 우아하고 곧습니다. 야단스럽게 다리를 놀리지도 않고 부산스럽게 드르렁소리를 내며 매연을 내뿜지도 않습니다. 그저 우웅- 하는 스마트한 전자음과 함께 저 멀리 소실점을 향해 작아질 뿐입니다. 그 멋진 모습을 나는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약하고 느린 내 다리를 애써 외면하면서 말입니다.
전동 킥보드를 탄 사람들의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시도해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일종의 레이트 스타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앱을 깔고 인증을 하고 하는 모종의 과정이 귀치않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공유경제를 좋게 평가하면서도, 즐겨 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에 따릉이라는 더러운 자전거 시스템에 크게 데여 종로 삼가 한복판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액티브 엑스를 연상케 하는 지저분한 UI와 자전거 한 대를 빌리는 건지 핵폭탄 버튼에 보안 접근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철통 같은 과정은 울화통이 터진다는 옛말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가르쳐 주었지요. 물론 지금은 수년간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제법 나아지긴 했겠지만요.(요즘엔 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따릉이라는 트라우마 덕분에 나는 전동 킥보드 역시 그저 치기어린 학생들이 타는 복잡한 요즘의 물건으로 여기고 지나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급히 집을 보러 집 근처 역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시간은 촉박한데 마을버스는 지금 나가도 놓친 시간, 우리집 문 앞에 보이는 것은 매끈한 전동 킥보드였습니다. 마치 너도 나를 타고 아스팔트 위를 백조처럼 미끄러지지 않을래? 라고 말을 건네는 듯 했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마을버스의 배차간격을 확인해 본 후, 도박하듯 앱을 다운받았습니다. 그러나 웬걸, 처음 빌릴 때 정확하게 15분이 걸렸던 따릉이와 달리 전동킥보드 앱은 깔끔하고 직관적이며, 명료했습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들고, 핸드폰을 인증해 등록하고, 다시 핸드폰을 인증한 후 ARS전화까지 걸면서 결제를 하고, 되도 않는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정류장 번호를 입력한 후 6번 자전거를 선택해 빌려 보니 통신 오류로 자전거가 빠지지 않고, 같은 과정을 거쳐 옆 자전거를 빌렸더니 바퀴에 펑크가 나 있어서 내 안의 방화 본능을 일깨우는 따릉이와 달리, 그저 한 번의 인증과 신용카드 촬영인식으로 모든 가입절차가 끝났고, 킥보드에 있는 QR코드 스캔으로 눈앞에 있는 킥보드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마치 산뜻한 숲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킥보드위에 올라 다리를 박차고 스로틀을 당기는 순간, 나는 우도가 떠올랐습니다. 우도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백사장, 그리고 그 위를 달리는 전기 자전거가 떠올랐다 이 말입니다. 전동킥보드는 스마트한 25km/h의 속도로 신속하게, 그러나 우아하고 고고하게 공기를 갈랐습니다. 아스팔트 위를 가볍게 미끄러지는 동안 인도에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감탄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성공한 삶을 완성한 젊은 기업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겨울치고는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고작 3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개처럼 헐떡이며 뛰어와도 7~8분은 족히 걸릴 거리였는데 말입니다. 약속 시간은 2분이나 남았기 때문에 나는 근처 도로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전동 킥보드만 있다면 그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출퇴근 동반자가 생긴것 같았습니다. 행복감 속에 주차를 하고 앱을 확인했습니다. 6분 30여초 동안 3천원에 육박하는 요금이 나왔습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앱을 삭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