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인의 가장 큰 적은 월세, 공과금, 식비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짜증나는 적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기입니다. 모기는 앵앵거리는 습성이 있는데, 보통 여름-초가을에만 출몰했지만 요즘에는 방한 기능이 생겼는지 11월까지도 심심치 않게 앵앵거리곤 합니다. 또한 과거에는 멍청하게 흰색 벽에 앉아 있다가 죽기가 십상이었습니다만 요즘엔 자신의 색과 비슷한 어두운 옷에 몸을 숨기는 스텔스 기능도 탑재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손바닥을 피하는 몸놀림도 예사롭지 않아졌죠. 역시 생물의 진화는 오묘하고 신비합니다. 그러나 모기만 진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 역시 전보다 빠르고 강해졌죠. 그것은 헬스 덕분입니다. 나는 고된 주4회 헬스로 얻은 강한 근육으로 놈들을 압도합니다. 놈들이 여럿이라면 나는 쓰지 않는 수건을 듭니다. 과거 에어컨이 아직 설치되지 않았던 여름, 나는 문을 열고 게임을 하다가 모기들의 습격을 받고 너무나도 화가 나 수건을 채찍처럼 휘둘러 6마리를 주님의 곁으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쓰레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렇듯 깨어 있을 때의 모기는 나의 상대가 아니지만 불을 끄고 자기 직전이 되면 전세는 역전됩니다. 교활한 모기들은 잠이 들 동 말 동 하면 귓바퀴에 붙어 앵앵거리고, 야음을 틈다 피를 빨아먹습니다. 모기에게 피를 빨리면 몹시 가려워져 긁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긁을 수록 더 가려워져서 나중에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가려움 덕분에 잠을 청할 수가 없게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모기에게 물리게 되면 열심히 손톱으로 십자가를 만들면서 기도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썩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스님들도 모기에 물리면 손톱으로 십자가를 만들까요? 그랬다가 들키면 종교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노파심에 조사해본 결과 다행스럽게도 스님들은 십자가 대신 ‘만' 자를 만든다고 합니다.
아무튼 모기는 피를 빨면서 포름산이란 것을 우리의 피부에 박아넣는데, 그것의 독성 때문에 가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점에 근거해 종교에 의존하는 십자가 요법보다 좀 더 과학적 근거를 지닌 민간요법이 바로 뜨거운 물체로 물린 곳을 지지는 방법입니다. 40~50도 정도의 뜨거운 물체를 대고 있으면 모기가 주입한 단백질성 독성이 변성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게 진짜 과학적으로 맞는 설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군대에서 모기에 물릴 때마다 뜨거운물을 담은 머그잔으로 물린 부위를 지졌는데 꽤나 효과가 좋았습니다. 주의할 점은 첫 번째로 물리자마자 최대한 빠르게 뜨거운 것을 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너무 오랫동안 대고 있으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너무 오래 뜨거운 머그잔을 팔뚝에 대고 있다가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습니다. 소탐대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모기는 도대체 왜 굳이 왜 우리를 가렵게 만드는 효소를 주입하는 것일까요. 사실 인간들이 모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놈들이 쥐 코딱지만한 양의 피를 훔쳐먹어서가 아닙니다. 순수하게 자신의 혈액에 대한 자긍심과 소중함 때문에 모기를 증오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건강검진 때 피를 뽑는 의사 선생님들이나 헌혈차를 보고 기겁하며 화염병을 던졌을 테니까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가 모기를 싫어하는 것은 주로 가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모기가 가려운 물질을 주입하지 말고, 공생하는 생물의 입장에서 좀 더 예의바르게 노화를 방지하는 항산화제라든가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비타민 오메가쓰리 같은 것들을 주입해 준다면 서로서로 윈윈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진화방향인 것입니다. 아무튼 나중에 과학 기술이 발전해 모기와의 대화 같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면 꼭 한 번 논의해 보고 싶은 사항입니다. 참고로 모기는 이산화탄소에 끌린다고 하니 되도록 숨을 쉬지 않는 방향으로 호흡을 조절하면 모기에 물릴 일이 줄어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