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마지막으로 한 알바는 코인노래방이었다. 당시는 코인노래방이라는 개념이 거의 처음 생겼을 때였다. 기존의 노래방은 항상 시간제였기 때문에 10분 정도 남았을 때부터 가슴을 졸이면서 노래 예약을 할 때 눈치를 보게 되었고, 5분이 채 남지 않았는데도 보너스가 없으면 구차하게 밖으로 나가 보너스 시간을 구걸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 코인노래방이라는 개념은 제법 새로웠고, 대개 코인으로 하는 모든 것은 편했기 때문에 나는 그 새로움과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편승하여 코인노래방에 지원했다.
면접은 김 대리라는 사람이 진행했다. 개인 노래방이 아니라 기업형 노래방이라 본사 직원이 파견을 와서 면접을 보는 형태였다. 대충 삼십대 초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후덕한 사람이었는데 면접을 노래부르는 방 안에서 치렀다. 어두운 조명과 미러볼 아래서 잘 할 수 있다는 면접을 보고 있으니 호스트 지망생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노래라도 한 곡 뽑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평일 오전 7시부터 2시까지 주5일 알바였다. 당시 추가학기여서 수업이 이틀밖에 없었고, 그것도 오후 3시부터였으므로 아주 적절한 시간이었다. 평일 오전에 노래를 불러제끼는 열정적인 사람들은 별로 없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청소를 하고 은행에서 동전을 바꿔넣는 등 잡일이 대부분이었다. 수십 개가 넘는 동전 바구니를 은행원에게 주면 이상한 기계에 동전을 쏟아붓는데, 문과생들은 알 수 없는 신묘한 작동을 거치면 동전들이 백원과 오백원으로 나뉘어 차곡차곡 쌓였다. 나는 은행에서 뽑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그 광경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코인노래방의 오전은 고요하고 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종종 놀라운 일들도 벌어지곤 했다. 한번은 청소를 하다가 방 안에 들어갔는데 고약한 냄새와 함께 옷 뭉치 같은 것이 의자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살인 사건인 줄 알고 기겁했으나 알고 보니 숙면을 취하던 노숙자였다.
도저히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알 길이 없어 긴급하게 김 대리에게 문의하였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경비 아저씨를 부르면 물리쳐 주신다고 말해 주었다. 경비 아저씨 또한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 와서는 '여기서 주무시면 안돼요~' 하면서 노숙자들을 깨웠다. 아무래도 문을 닫고 있으면 누가 와서 열어보지 않으니까 노숙자들이 종종 방 안에서 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청소를 하러 닫힌 방문을 열 때마다 노숙자가 자고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것이 슈뢰딩거의 노숙자인가 하였다.
대략 2시간정도 동전 바꾸기, 청소, 노숙자 내보내기 등을 하고 나면 더 이상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손님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멍을 때리다가 밥을 먹었다. 열두시가 넘어가면 점심을 먹고 소화를 시키러 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방문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노래를 다 부르고 나가면 정리를 하러 들어가는데, 그것 또한 제법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밀폐되고 좁은 공간에서 대략 한 시간 정도 노래를 부르고 나면, 그 사람의 향기가 좁은 방에 농축되어 있다. 샴푸나 섬유유연제처럼 좋은 향기가 남아있을 때도 있지만, 대개 독한 향수 냄새, 머리 안 감은 냄새,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추리할 수 있는 냄새들이 방 안에 영혼처럼 농축되어 있다. 인간의 향기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코인노래방 알바에 지원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저냥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냄새를 남기고 간다. 그래서 문을 열어두는 정도로 해결된다. 그러나 가끔 안 씻은 냄새 혹은 빨래를 잘못 빤 것 같은 냄새를 강하게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문을 열어두는 방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고약한 냄새가 마치 지박령처럼 0.5평 될까 말까 한 방 안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에어컨을 강하게 틀고 나서 코를 틀어쥔 채로 문을 여러번 활짝 열어 강제 환기를 시킨 후, 전쟁에서 머리위로 총을 갈기는 소년병처럼 페브리즈를 무차별로 분사한다. 가끔 페브리즈조차 이길 정도로 강한 향기-지박령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체념하고 그 방으로 들어가려는 손님들을 통제한다. 통제하지 않으면 방독면 없이 화생방실에 들어간 훈련병마냥 3초 안에 뛰쳐나온다. 향기란 오묘한 것이다.
어느 정도 짬이 쌓이자 나는 대충 냄새가 날 것 같은 사람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통찰력을 갖추게 되었다. 맞추면 나름 즐겁기는 하였지만 그 냄새를 내 코로 맡아 확인하는 것은 영 고역이었다. 이렇게 인간에 대한 통찰도 기르고 돈도 벌었던 코인노래방은 취업과 함께 그만두었다. 그래도 6개월 넘게 근무했던 곳이라 가끔 궁금했는데 최근에 대학로에 가 보니 없어져 있었다. 코로나의 여파에 직격당했기 때문인지, 노숙자들이 20개가 넘는 방을 모두 점거해 버려서인지, 알바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고약한 사람이 단골이 되어서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