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kalai Apr 09. 2017

발리에서 공연 보기

인도네시아 발리 섬 우붓

발리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가 흘러흘러 가게 됐지만, 신혼여행지라는 선입견과 달리 발리는 다양한 여행자를 포용할 수 있는 여행지였다. 


수영과 서핑을 즐기고 싶다면 바닷가에 묵을 테니 일단 빼고, 우붓에서 즐길 수 있는 활동은 대충 이렇다.


1. 그냥 빈둥거리며 동네 산책, 마을 외곽 트레킹. (사실상 산책) 

2. 시장과 가게 구경 + 맛집 순방

3. 각종 투어를 이용하거나 택시/오토바이를 빌려서 발리 섬 돌아보기. 

4. 각종 신전 구경

5. 요가나 쿠킹 클래스 듣기

6. 미술관 순례, 그림과 조각 

7. 각종 공연 보기


나는 5번을 빼고 나머지를 다 조금씩 했는데, 이 포스팅에서 쓰려는 건 7번이다. 


동부 자바가 워낙 척박한 편이었기 때문에 발리의 상대적인 안락함이 반가웠지만(버스가 제시간에 움직여! 흥정 좀 덜 해도 돼! 쇼핑도 할 수 있어! 서점도 있어! 등등), 우붓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 중에 또 하나 좋았던 건 다양한 전통 공연을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격은 보통 한국 돈으로 7천 원에서 1만 원 꼴. 

공연장은 대개 마을 여기저기에 흩어진 신전 앞이나 왕궁. 공연 전에는 이런 느낌이다. 



왕궁 옆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일주일 단위로 어떤 공연을 하는지 정리해둔 표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생긴 표다. 요일별로 공연단, 간단한 공연 내용, 장소, 시간, 가격이 적혀 있다. 표는 관광안내소에서 살 수도 있고, 공연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호객꾼이 접근해 오니 그 자리에서 사도 괜찮다. 직전에도 얼마든지 사서 들어갈 수 있는 대신, 지정 좌석 같은 게 없으니 앞자리나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공연 시작보다 일찍 가는 게 좋다. 



극단에 대해서야 아는 바가 없으니 통과하고, 보고 싶은 공연을 동그라미 쳐가며 즐겁게 뭘 보러 갈지 정했다. 


일단은 역시 춤! 언어를 몰라도 문화가 달라도 이해하기 쉽다는 점에서 역시 몸짓 예술이 최고지. 


다만 보다보니 '레공 댄스' '께짝 댄스'라고 적혀 있다고 한 시간 넘게 그 춤만 공연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개 적혀 있는 공연이 메인이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춤을 맛보기 메들리 식으로 엮어서 공연한다. 


간단 정보를 적어두자면 


Kecak dance: 께짝. 아무래도 지금 발리에서 공연을 본다면 이 춤이 1순위가 아닐까 싶다. 라마야나의 한 부분을 빌려온 내용이라지만 만들어진 것은 1930년대라고 한다. 



보다시피 께짝은 주로 남자들 한 무리가 공연한다. 웃통 벗고 둘러앉아 있는 남자들이 춤의 주인공이다. 연령대는 다양하고, 불을 에워싸고 '께짝 께짝 께짝'을 연호하며 춤을 춘다. 이게 꽤 박력이 있다. 


께짝은 기회가 닿는다면 우붓보다는 바닷가 신전 울루와투에서 하는 공연을 보면 더 좋을 듯. 


Trance dance: 외국인들을 위해 간단히 트랜스라고 적어놓았지만 원래 이름은 Sanghyang라고 하는 제의적인 춤으로, 아래 사진에 보듯 어린 소녀 두 명이 춘다. 본래는 발리 힌두교 제의에서만 추게 되어 있다지만 현재는 이렇게 관광객용 퍼포먼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Legong dance: 레공. 가장 다양한 공연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왕실 연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예전에는 어린 소녀가 맡았다는 점에서 바로 위에 적은 제의에서 비롯되었다 믿기도 한다. 크게 뜬 눈과 정교한 손가락 움직임이 특징. 레공에는 열다섯 가지 정도 종류가 있다는데, 그것까지 알기는 무리였고 몰라도 즐기는 데 지장은 없다.


어처구니없게도 정작 레공 댄스는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다! 할 수 없이 같은 공연에서 본 다른 춤으로 넘어가서


아래 공연은 레공이 아니라 그전에 들어가는 환영의 춤 Gabor 가보였지만, 대략의 느낌은 비슷하다. 의상은 더 아래에 Oleg 사진의 여성 댄서와 비슷. 


손가락과 손의 움직임은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나 인도에서도 강조하지만, 실제로 이 춤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 움직임이 굉장히 나무인형 같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크게 뜬 눈과 무표정을 결합하면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려는 노력이랄까. 인형의 움직임은 점점 더 사람답게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이 춤은 그 반대라 오묘하다. 


Oleg : 올레그. Bumblebee dance는 남녀 두 명이 추는 사랑의 춤. 역시 여성 댄서의 모습은 레공 댄스와 비슷. 


Topeng: 토펭. Mask dance. 가면을 쓴 연희자가 악령을 중화하는 내용의 춤. 아래 보는 가면은 흰머리의 노인Tua를 선택해서 Topeng Tua라고 했다. 역시 움직임이 기묘하니 눈길을 빼앗는다. 



Barong:바롱은 딱 사자춤이다 싶은데, 바롱이란 좋은 정령이며 숲의 수호신이다. 이런 짐승이 있을 리 없는 지역인데, 어떤 경로로 사자의 모습을 취하게 됐나 모르겠다. 이 공연에서는 짧게 바롱만 나왔지만, 많은 경우 바롱과 그 적인 랑다Rangda의 싸움을 그린다고 한다.




맨 위 안내문을 보면 보통 바롱은 Barong and Keris dance로 같이 묶여서 적히는데, 두 춤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내용이 연결되어 있다. Keris 또는 Kris는 대체로 이 지역 일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불구불한 칼 끄리스로... 이렇게 생긴 칼을 쥔 사람이 등장해서 바롱 앞에서 자해소동(?!)을 벌인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 



그 밖에도 사진을 찍지 못했거나 보지 못한 다양한 춤이 아직 여러 가지 남아 있으니 이 정도로 해두고. 


와양 꿀릿에 대해서는 이 글(https://brunch.co.kr/@askalai/26)에 따로 적었다. 



발리의 전통춤은 전시용이 아니다. 지금도 매일 길거리에서 집에서 꽃을 바치는 사람들이 해마다 축제를 열어 추는 춤이다. 그걸 이렇게 부담없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관광 상품으로 가공해낸 점이 감탄스럽고, 부럽기도 하다. 한국의 전통 공연도 물론 훌륭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있지만, 이렇게 접근성이 좋지는 않고 대체로 공연 기간이 짧다. 관광객이 누리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뭐 그렇다고 억지로 어설프게 상업화하기를 바라진 않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바와 발리에서 본 그림자 인형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