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전통 공연: 와양 꿀릿
인도네시아에 갈 때 꼭 보고 오리라 했던 공연이 하나 있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그림자 인형극 와양 꿀릿(wayang kulit)이다.
이리저리 기회가 닿으면 닿는 대로 라마야나 댄스 공연도 보고, 발리에서는 께짝 댄스, 끄리스 댄스, 레공 댄스, 바롱 댄스 다양하게 감상했지만 처음부터 꼭 봐야지 했던 공연은 와양 꿀릿 하나 뿐. 그리고 우리는 와양 꿀릿만 두 번을 보게 된다. 자바 섬 족자카르타에서 한 번, 발리 우붓에서 또 한 번.
그게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본 건 아니고, 한 번 실망했기 때문이다.
와양은 자바어로 '그림자', 꿀릿은 '가죽'이라고 한다. 가죽으로 만든 납작한 인형을 막 뒤에서 움직이면서 빛을 비추어 그림자를 보여준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여행한 사람들이 선물로 많이 사가는 바로 그 인형.
다른 곳에서도 두루 공연한다지만 자바 섬의 와양꿀릿이 가장 유명하고, 족자카르타에 있는 교육기관이 가장 강력한 전통을 자랑한다. 그러니 원래 노렸던 곳도 당연히 족자카르타.
족자 중심가의 소노부도요 박물관에서 요일에 따라 공연한다.
그러나 기대를 안고 간 결과...
악기도 다양하고 화려하게 동원하고, 그림자 인형도 다양하고 화려하게 동원하고, 무대 뒷면도 구경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사진 찍기만 좋은 공연. 내용이 재미가 없다. 인형극보다 오히려 음악 연주에 더 무게가 실렸다는 느낌마저 든다.
와양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었던 건 좋았지만.
낙심한 채로 족자카르타를 떠나, 동쪽으로 흘러 흘러 발리까지 갔다.
발리 우붓에서는 매일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는데, 이번에는 당연히 발리에서 유명한 공연을 먼저 점찍었더랬다. 그러다가 발견한 와양꿀릿 공연.
께짝 댄스, 레공 댄스 같은 발리의 유명 관광상품은 대충 한국 돈으로 7천 원쯤이면 볼 수 있건만 와양꿀릿은 만원 돈이 넘는 데다가, 공연장도 외곽에 있는 어느 호텔이다. 사람도 별로 없다. 미심쩍은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는데 이게 웬걸! 깔깔거리고 손뼉 치며 정신없이 봤다.
공연장도 작고 가믈란 악사도, 동원하는 인형도 얼마 안 되지만 이 공연은 살아 있었다. 족자카르타 박물관에서 공연하는 와양 꿀릿은 라마야나 줄거리였고 이쪽은 마하바라타 줄거리였지만 그게 이런 엄청난 차이를 낳았을 리는 없다. 발리 작은 호텔에서 공연하는 이 공연자는 이야기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애드리브를 치며 관객들을 쥐락펴락했다. 다 알아듣지 못해도 빨려들 수 있게 해주는 진짜배기였다.
느긋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감도는 무대 뒤편. 이게 전부였다.
같은 공연자가 계속 맡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붓에서 시간이 여유롭다면 와양 꿀릿을 한 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관광객들이 보러 오는 데 익숙한 만큼 영어를 섞어가며 더 쉽게 전달한다. 박물관 공연이 더 전통에 충실한 게 아니냐고? 애초에 이런 공연은 대중을 상대로 했고 지금도 그렇다. 마치 한국의 판소리처럼, 시대와 변화에 발맞추는 게 오히려 그 정신에 맞는 게 아닐지.
우붓에서는 오카 카르티니 Oka Kartini 호텔에서 일요일, 수요일, 금요일 공연을 정기적으로 하는 모양이다.
족자카르타에서 본다면 박물관 공연보다는 궁정 광장 공연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나 그쪽은 토요일마다 저녁 9시부터 아침 5시 30분까지라 하니 쉽지는 않을 듯. 비교하자면 판소리 축약 공연과 완창 공연이랄까.
참고: 와양꿀릿이든 다른 공연이든 어느 정도 따라가려면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기본 줄거리는 숙지해두는 게 좋다. 인도네시아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역과 인도까지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