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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alai May 26. 2016

대항해시대가 여행에 미치는 영향

말레이시아 말라카

보드게임 부루마블(블루마블)과 컴퓨터 게임 대항해시대는 내 인생에 꽤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나는 그 전에도 지도를 좋아했다. 하지만 뜬금없이 여행지를 정할 때, 혹은 지도를 보면서 루트를 잡을 때, 여러 선택지 중에서 도시를 고를 때 게임으로 익숙해진 이름이 내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자면 몇 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스페인 남부로 갈 방법을 찾다가 눈에 띈 이름 '말라가'라든가 포르투갈에 갈 이유가 된 '리스본'이 그러하고 말레이시아에서 어딜 갈까 들여다보다가 눈에 든 이름 '말라카'가 그러하다. 


그런데 잠깐만. 지도에서 앗 이 도시는! 하고 가보기는 했는데, 말라가와 말라카라니 두 이름이 관계가 있는 건가? 있다면 어느 쪽이 원조람? 혼자 추측에 빠졌다. 그러나 말라가는 Malaga, 말라카는 영어와 포르투갈어로는 Malaca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Melaka라고 쓰고 발음은 믈라카에 가깝다. 그리고 믈라카라는 이름은 같은 이름의 나무에서 따왔다고 한다. 쳇, 완전히 헛다리 짚었다. 


아무튼 현지 발음은 믈라카에 가깝지만 나에게는 대항해시대의 말라카로 더 익숙한 이 도시는 14세기부터 무역 중심지로 활약한 긴 역사를 자랑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대항해시대의 중요 도시라는 건 물론 유럽 국가의 점령과 착취와 전쟁의 역사가 켜켜히 쌓여 있다는 뜻인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배가 남겨놓은 결과물은 아이러니하게 평화로운 관광지다. 앞서 여섯 개의 글로 쿠알라룸푸르의 재미있는 점을 열심히 적어본 게 무색할 정도로, 둘을 비교해 보라면 말라카 압승. 아름답기도 하지만 작고 온화한 도시라서 그런지 쿠알라룸푸르보다 훨씬 편하고 긴장감도 적다. 말레이시아에 짧게 간다면 쿠알라룸푸르 여정을 줄이더라도 꼭 들러보라 하고 싶은 곳.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도시 중심지인 네덜란드 광장에서 내리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사실 '네덜란드 광장/Dutch Square'라는 건 정식 명칭이 아니더라. 아무튼 이 기묘한 색깔의 건물들은 모두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지어졌다고... 그리고 그 앞에선 기묘하기 짝이 없는 인력거들이 손님을 노린다. 키티, 스누피, 도라에몽에 온갖 히어로 그림까지... 게다가 밤이 되면 불도 번쩍번쩍 들어와! 그러고 보면 단정하고 우아하게 꾸며놓은 일본의 관광 도시에서도 딱 이런 느낌으로 당혹스러운 조형물이나 관광 상품을 접할 때가 있지. 이런 종류의 미적 감각이란 것도 늘 자기 몫이 있나 보다.


쿠알라룸푸르에서도 교회를 하나 보기는 했지만, 주로 이슬람-힌두-중국 불교와 도교 문화가 두드러졌다면 말라카는 가톨릭 문화가 살아 있다. 오래된 세인트폴 성당 유적을 비롯하여 도시 곳곳에 성당이 보인다.  

동행의 그림일기 참조 : https://brunch.co.kr/@boida/4




산티아고 요새 유적. 현지 명칭은 A'Famosa. (산티아고 요새라고만 검색하면 필리핀에 있던 요새가 더 유명하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와의 충돌에 대비하여 지은 요새라지만, 지금은 아주 작은 건물 하나만 남아 있다. 실은 언덕 위의 세인트폴 성당도 전쟁으로 무너져서 탑만 남았다. 카톨릭-기도교 구교 국가였던 포르투갈이 지은 성당인데 신교를 믿는 네덜란드와 영국이 와서 무너뜨리고 선교사 동상의 손을 잘랐으니, 말레이시아 역사라기보다는 유럽사의 연장.  




하지만 나에게 말라카의 정점은 운하, 아니 강이었다. 도시 중앙을 관통하는 강변이 말도 못 하게 아름답다. 숙소도 강가에 자리잡은 작은 게스트하우스로 잡았고, 운하를 따라 도시를 왕복하는 리버 크루즈도 탔고, 이틀 동안 강변 양쪽을 산책하면서도 실컷 보았다. 다음날 동행이 세인트폴 성당과 요새 유적에 다시 가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나는 다시 강가와 길거리를 걸었다. 





2016.03.06- 03.07 




-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라카 가는 방법: 시외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요금 약 10링깃(3천 원)에 꽤 쾌적한 버스다. 시외버스 타는 곳은 센트럴 또는 마스지드 자멕에서 4호선 스리 페탈링 방향을 타고 Bandar Tasik Selatan으로 가야 한다. 요금은 3링깃(약 900원). 레게 맨션/차이나타운과 가까운 센트럴 버스터미널에서 타는 줄 착각하고 갔다가  빙빙 돌았다. 그나마 큰 짐을 숙소에 맡기고 단출한 가방 하나 들고 움직여서 망정이지. 


- 말라카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리면 밖에 바로 파노라마 버스들이 서 있다. 17번을 타면 중심가로 갈 수 있다. 


- 숙소는 리버뷰 게스트하우스. 강가에 자리 잡은 2층짜리 목조 건물로, 테라스에서 강을 내다볼 수 있다. 낡은 건물과 독특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추천. 물론 방은 깨끗하다. 



- 세인트폴 성당 쪽으로 올라가면 도시 전경과 그 너머 바다를 볼 수 있는데, 위 사진에 보이는 탑이 타밍 사리 타워라는 전망대다. 꼭 올라가겠다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도저히 엘리베이터가 들어갈 건물이 아닌데 이게 어떻게 전망대? 하고 올려다보다가 놀이기구처럼 바깥쪽 고리에 사람을 태우고 회전하며 올라가서 야경을 보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 무조건 탔다. 가격은 1인 20링깃. 



- 말라카 차이나타운이라 할 수 있는 존커 스트리트. (오른쪽 사진) 다만 안내책자에는 이 길에서 밤에 야시장이 열린다던데, 그날만 그랬던 건지 우리가 갔을 때는 썰렁하기만 했다. 음식점이 많이 모인 곳이긴 하다. 


- 말라카 존커 스트리트에서 먹어보라고들 하는 음식은 치킨라이스볼. 못 먹어봤다. 헤매다가 그냥 눈에 띄는 지오그래퍼 카페에서 베스트 메뉴라는 커리라면으로 저녁 해결. 다음날에는 숙소 주인장이 강력 추천한 채식 중식당 Am-lunch와 인도식당 Selvam에서 싸고 맛있게 먹었다. 음식 사진은 가끔 잘 나올 때도 있는데 (아래 사진;Am-lunch의 점원 추천 苦爪湯), 대체로는 맛있어 보이게 찍히지 않는다. 셀밤에서 먹은 점심은 동행의 그림을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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