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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Oct 14. 2021

악플을 멈춰주세요


국가대표 이재성은 팬들과의 소통을 좋아한다. SNS로도 꾸준히 자신의 소식을 한국 팬들에게 전한다. 홀슈타인 킬 이적 후에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이재성의 축구일기>를 연재했다. 역시 팬들을 위해서다. 전북현대에선 팬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지만, 킬에서는 힘들기에 글로나마 팬들과 만나고자 했다. 자기가 새로 만든 취미, 요즘 하는 생각, 어제 한 요리, 주말에 만난 축구선수 동료들 등등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전달했다.


그는 팬을 끔찍이 사랑한다. 홀슈타인 킬과 다름슈타트의 경기가 열린 날, 한국에서 팬들이 경기장에 많이 찾아왔다. 경기가 끝난 후 늦은 시각, 이재성은 자신의 집에 팬들을 초대했다. 열댓 명의 팬들을 자신의 차로 두 어번 왔다 갔다 하며 집으로 데려갔다. 급하게 초대한 거라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함께 머물던 그의 친형은 피자를 주문하고, 그의 어머니는 이전에는 만들어본 적 없는 거대한 양의 떡볶이를 빠르게 조리하셨다. 그동안 이재성은 팬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팬들이 머무는 숙소까지도 직접 데려다줬다. 이 밖에도, 기차를 놓친 팬이 있으면 기차 티켓도 사주고, 밥을 사주기도 한다. 자기를 보러 온 팬들은 최선을 다해 챙기려 노력한다, 이재성은.


최근에는 마인츠05로 이적했다. 일기를 쓰는 플랫폼도 네이버로 옮겼다. 네이버 블로그를 열어 격주에 한 번씩 칼럼을 쓰고, 자신의 일상도 공유하기로 했다. 조금 더 체계적이고 규칙적으로 글을 쓰게 돼서 더 책임감이 생긴다고 기뻐했다. 나는 "블로그는 기사 플랫폼이 아니라 댓글도 달려요. 팬들과 소통도 더 활발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재성이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근데 조금 걱정되는 건... 거기도 악플이 달릴까요?"


그때 이재성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최근 포털 사이트 스포츠 뉴스 댓글란이 닫히며 한동안 잊고 있던 존재, 악플. 블로그는 댓글을 달 수 있는 플랫폼이다. 국가대표로서 악플에 숱하게 시달렸던 이재성은 마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큰 내색을 안 해서 몰랐는데, 이 선수. 참 힘들었구나.


이재성뿐만이 아니다. 국가대표 타이틀을 단 선수라면 누구나 입에 담기도 험한 악플 세례를 받아봤다. 손흥민도 물론이다. 토트넘에선 잘하더니, 국가대표만 오면 왜 골을 못 넣느냐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약 5년 전,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콜롬비아와 친선전을 치렀다. 그곳에서 손흥민은 마침내  골을 넣었다. 당시 차범근 감독이 경기를 관전했는데, 경기를 끝내고 라커룸에 들어가는 손흥민이 차 감독을 보자마자 폭 안겨 눈물을 흘렸다. '고작 친선전인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손흥민이 느꼈을 부담감과 힘듦이 고스란히 전해지던 순간이었다.


과거 모 선수는 "국가대표는 욕먹으러 가는 곳이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서 어떤 모습을 보여도 욕을 먹는다며,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소집되는 걸 두려워한다는 말도 들었다. 악플을 통해 느끼는 그들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도대체 전 세계 어느 프로 축구선수가 국가대표에 소집되는 걸 두려워할까.


최근에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열렸다. 한국은 최근 시리아와 이란을 연달아 만났다. 시리아에는 2-1 승리, 이란과는 1-1 무승부를 거뒀다. 준수한 성적이다. 이겨야 할 팀에 이겼고, 져도 이상할 것 없던 팀과 비겼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또 욕을 먹는다.


이번에 도마 위에 오른  다름 아닌 이재성이다. 이란전에서 이재성의 판단 미스가  실점으로 연결됐다는 이유에서. 손흥민의 골을 도운  이재성인데, 후반전 실수로 이재성은 역적이 됐다. 네이버에 악플을 달지 못하는 '축구팬'들은 이재성의 인스타그램으로 달려가 차마 눈뜨고   없는 끔찍한 댓글을 달아대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재성이 팬들과 소통을 위해 블로그를 열었다는 게시글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걸  이재성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현실적으로 이란은 처음부터 한국이 이길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은 원정팀의 무덤이다. 해발 1,200m 고산지대이고, 같은 아시아지만 이동거리가 유럽과 비슷하게 길고, 선수들의 체격도 역시 유럽 선수들과 비슷하고, 텃세도 심하다. 10만 관중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이란전 승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손흥민의 선제골이 그 기대를 키우긴 했다. 44년 만에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승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등장했다. 하지만 후반전이 되며 선수들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결국 실점했다. 다행히 역전을 당하진 않았다. 그렇게 승점 1점을 챙겼다.


44년 만의 승리를 '놓쳤다'라고 생각하는 '축구팬'들은 이재성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지금도 쏟아진다. 대표팀 고참 정우영은 자신의 SNS를 통해 선수 개인을 향한 비난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전 주장 기성용도 과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선수들이 악플을 두려워하고, 멈춰달라 부탁하는데 도대체 왜 자꾸 악플을 달까.


도가 지나친 비난과 악플은 결국 부정적인 결과만 낳는다. 이번 안 좋은 경험으로 선수들에겐 다시 트라우마처럼 자리한다. 아, 잘해도 못해도 우린 욕을 먹는구나. 다음 대표팀 소집이 다가오면 기쁘지만 한편으론 두려움이 생긴다. 두려움은 긴장감으로 이어지고, 극도의 긴장감은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대를 많이 받는 유럽파는 더 그렇다. 가뜩이나 시차 적응도 안 되고 몸도 힘든데 기대감은 충족시켜야 하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공을 골대 안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분명 욕을 먹을 거고... 아마 황희찬의 슈팅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도 비슷한 이유였을 테다. 이들의 불안한 심리는 누가 보듬어주나.


월드컵이 코앞이다. 한국은 월드컵에 나가 16강에 올라야 한다. 한국 대표팀을 향한 기대는 그렇게 크면서, 예선에서 나온 실수로 죽어라 욕을 한다. 그 심리를 정말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가 안 된다.


이재성은 국가대표 소집을 좋아한다. 오직 자신들만 응원해주는 열렬한 팬들이 있어서란다. 그 팬들의 응원을 받으면 없던 힘도 생기고, 피곤해도 한 발 더 뛰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고. 그 응원을 느끼고 독일에 돌아오면 더 열심히 뛰게 된단다. 그런 그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악플 세례를 받고 있다. 심정이 어떨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국가대표는 욕을 먹으러 가는 자리여선 안 된다. 한국 축구를 위해 부상도 감수하며 그 먼 거리를 오간다. 소속팀에 남아 훈련을 더 하고,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프로 축구선수'에게 훨씬 이득이다. 특히 방금 막 팀을 옮긴 선수들에겐 더더욱. 그런 선수들도 국가대표라면 마다하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간다. 체력이 떨어질 때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힘이 정신력인데 그마저 흔들리면 이 선수들은 어떻게 버텨야 할까.


그러니 부디, 악플을 멈춰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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