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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망작가 Apr 29. 2024

금융인에서 요가인으로

삶의 변화가 시작되다.

첫 회사, 열정 Girl이었던 나에게 찾아온 무기력함


16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26살이 되던 17년도 첫 영업일인 1월 2일에

여의도에 있는 증권회사에 입사하였다.


내 능력으로 내 스펙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

운좋게 증권사 인사팀 막내로 입사했다. 


꿈 많고 열정이 많았던 나는

인사팀에서 1년 동안 급여, 입퇴사자관리, 성과급 등 다양한 업무를 배우고 나서

그 이후로도 우연히 영업팀, 재무팀, 기획팀등 여러 팀을 경험하면서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반적인 운영프로세스를 익히고 31살 직전에 퇴사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한 회사를 훑은 직원도 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원래라면

'회사의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배우고 유능한 직원이 되었다.'

이런 스토리로 진행되는 것이 맞았을까?



5년이란 근무기간 동안 대주주들이 계속 바뀌면서 오너도 3번이나 바뀌었다. 회사분위기는 안정적이라기보다 내 밥줄, 내 위치를 지키기 위해 서로 눈치보기 바빴고, 본부헤드들이 잘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복잡해졌었다.

회사 분위기는 아주 침몰하기 직전인 배의 암울함처럼 침체 그 자체였다.  


내가 회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잘리지 않고 필요한 인재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든 하나라도 배우려고 이것저것 찾아보고 공부하고 자격증도 여러 가지 따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계속 마음 한편에는  무기력하고 생동감을 잃은 나를 발견하곤 했다. 한숨도 깊어졌다.


특히 회사 직전 1년 정도는 경영기획팀에 있었는데 기획일은 본부장님과 팀장님 두 분이 주로 일을 감당했기에 막내인 나에게 주어진 어떤 큰 업무는 없었다. 나의 쓸모에 대해서 내가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왜 역할을 주지 않는 거지?'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점점 잡생각이 많아졌다. 사무실이 건물 3층이었는데 바로 아래 2층 사무실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마침 공터였다.  몇백 평인지 모르겠지만 공간이 꽤 넓었기에 더 휑해 보였다. 그곳을 나는 오전에 1번 오후에 1번 트랙을 돌듯이 걸으면서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부러 가졌다기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 이직해야 하나?'

'잠깐 이직 전에 내가 업계의 일을 좋아하는가?'

'앞으로도 평생 증권일들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일을 통해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신앙인이기에 내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님, 저의 마음아시지 않습니까?

저 뭐든 잘할 수 있는 거  아시잖아요? 제게 주신 작은 것도 열정적으로 하는 거 아시잖아요?

이런 무기력함을 느끼나요? 저 뭐 하면 되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엄마 미안해



30살! 어떤 팀에서 어떤 일이든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열정으로 책임감으로 맡아왔던 나니까

지금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도 내가 원하는 그림대로 도달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 새로운 시작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더 좋겠다는 기대감과 함께 편안함 속에서 사직서를 준비했다.


21년 3월 말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난다.) 공터에서의 방황을 마침내 끝내고

본부장님께 퇴사한다고 말씀드리기 직전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목소리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엄마 나 회사 그만두려고'

'아니... 왜?'

'나 고민 많이 해온 거 알잖아, 그냥 응원해줘'

'너 그 괴롭힌다는 여자부장 때문이야?'

'에이... 엄마 내가 사람 힘들어서 나오는 사람이야? 일이 안맞아서지!'

'아니 세상에 누가 자기랑 맞는 일하니? 안 맞아도 참고 하는 거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왜 참아!'

'엄마 불안해! 더 신중히 생각해 봐'

'이미 결정했어'


엄마는 이후로 2주 정도?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한다. 엄마 미안해

나 진짜 보란 듯이 자리 잡아볼게... 그때 다짐했다.





요가수업을 시작하다.


퇴사하기 6개월 전부터 요가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강사가 아닌 회원으로서였다.

내 맘을 다스리기 위해서 친구 추천으로 수업을 들었는데 첫 시간에 바로 매료되었다.


나중에 근무시간보다 일 끝나고 요가 갈 생각에 하루가 벅찰 정도였다. 요가센터까지 콧노래 부르며 가던 때가 기억난다.


요가가 그만큼 좋아서였는지 재미없는 회사생활에서 벗어나 나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곳이라 좋아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때 나는 요가가 참 좋았었다.


어느 날 요가수업 결제하는 날이 돌아와서 재수강할지 고민 중이었다.

알아보니 요가 관련협회에서 요가자격증 따는 비용이나 요가수업 비용이나 가격이 비슷한 거 같아서 이 참에 요가자격증이나 따보자는 맘으로 요가교습자격공부를 시작했다. 요가강사자격증은 민간자격증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인정한 자격증이다.


자격과정이 끝난 이후에도 아쉬탕가, 빈야사요가, 핫요가, 플라잉요가, 해부학수업 등 다양하게 수료과정을 거치면서 어느새 요가강사로서의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요가로 용돈벌이하자는 맘으로  난 퇴사하였다.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고 나의 가치도 달라진다.


요가강사를 시작하면서 평소에 하는 생각들과 고민들이 많이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거래처에 투자금을 받아낼까?', '수수료가 얼마가 될까?', '이번에 어떤 주식이 핫한가?', '오늘의 코스피는?' 이런 것들만 가득 찼던 나의 생각들이


'말린 어깨를 펴는 동작은 뭐가 있을까?', '머리서기할 때 안전하게 하는 방법은 뭘까?', '회원님들이 어떻게 하면 이 한 시간이 힐링이 되실까?'등 심신건강에 대한 생각들로 바뀌었다.


증권사에서 일했을 때는 하던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가를 가르치면서는 이 일이 참 가치 있는 일로 느껴졌다.


물론 증권사에 일하시는 분들이 의미 없는 일을 한다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의 자산을 증진시켜 주면서 그 관련일들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런 사람들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돈 때문에 재미없는 일을 견디며 참는 사람은 아니었다.


돈! 돈! 돈! 하던 환경에서

몸! 몸! 몸! 하는 환경으로 오니

보이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내 인생에서 요가강사의 삶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냥 흘러가는 대로 현재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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