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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o life Feb 02. 2023

미역 한 상자는 너무 많다...

일상에서...

 바싹 말라버린 미역을 성퉁하게 자른다. 


 며칠 전 2년을 먹어도 남을 것 같은 마른미역 한 상자를 받았다. 미역이 이렇게 많으면 뭘 만들어 먹어야 하지 고민하게 된다. 일 년에 두 번 이상은 먹지 않을 미역을 한 상자를 받았으니 당황함과 곤란함이 같이 밀려왔다.


 “자! 이거 먹어라.”라고 건네주는 상자를 두 손에 받아 들고 멍하니 보고 있었다. 거절하지도 못하고, 사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주 먹지도 않는데 이렇게 많이 주는 게 어디 있냐고 따지지도 못한다. 어머니는 그렇게 미역 한 상자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건네주셨으니까. 식탁에 덩그러니 놓인 미역 상자는 정말 혼돈의 상자였다. ‘먹으면 되지 뭐! 별거 있을까’라며 나를 다독여 보지만 정작 떠오른 아이디어는 매일 생일인 것처럼 미역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게 전부다. 미역으로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미역국이 전부라고 생각하니 다시 멍해졌다.


 자주 만들어 먹을 요리는 없으니 일단 보관이라도 잘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식탁 위의 미역 상자를 서늘하고 바람이 통하는 곳에 두어야 하는데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다. 맨션인 집에 서늘한 곳은 곰팡이가 필 것이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은 베란다뿐인데 그게 들락날락하는 바람이 아니라 들어왔다가 눌러앉는 바람이라 신통치 않다. 고민고민하다 생각을 포기하고는 방구석 온기가 잘 돌지 않는 곳에 두기로 했다. 일단 음지이지만 습하지 않으니 곰팡이 걱정은 덜었고, 바람은 불지 않지만 늘 서늘한 곳이니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방 한쪽에 툭 하고 던져 놓았다. 생각이 나면 꺼내 먹겠지. 그렇겠지. 이 말을 하는데 불쑥 올라온 걱정은 생각이 날까. 잊어먹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잘 기억할 거야. 스스로를 세뇌했다. 아무튼 미역 한 상자가 생겼다. 몇 년은 미역 살 생각은 안 해도 될 듯하다. 그러고 보니 냉동고에도 미역이 좀 남아있었던 거 같은데 그것도 빨리 먹어야 하는데. 날을 잡아서 냉장고 파먹기 해야 할. 듯.


 소진은 해야 하니까. 잘 먹지 않는 라면에도 넣어보고, 적당한 국에도 미역을 넣어보고, 실험적인 음식을 창조해야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해본다. 미역. 열심히 먹어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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