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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Jun 02. 2018

2-13. 델리에서의 8일간

나에겐 영원히 어려울 인도 

 나는 푸쉬카르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죽도록 아팠다. 그러다가 다음날 아침, 몸이 한결 괜찮아졌기에 델리행 기차에 겁도 없이 올랐다가 결국 기차 안에서 다시 시작된 원인 모를 두통과 급체 증상 때문에 죽을 뻔했다. 안 그래도 더러운 기차 화장실에서 서너 시간을 30분 간격으로 토하고, 슬리퍼칸 가장 윗 침대를 예약해두었었는데 내 자리로는 올라가지도 못하고 가장 아래칸을 예약한 사람과 침대를 바꿔서 정말 말 그대로 죽은 듯이 델리까지 갔다.  

 

 델리에 내려서도 반은 정신이 없는 상태로 릭샤를 타고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 간지에 와서 일단 숙소만 잡고 배낭은 내던져둔 채로 숙소 주인에게 물어 D와 함께 사이클 릭샤를 타고 근처 병원의 응급실로 직행했다.  

어느 병원인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빠하르 간지에서 사이클 릭샤로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사실 사이클 릭샤를 타고 병원에 간 게 아니라 거의 실려서 갔었는데 눈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통이 심했던 그 와중에도 병원비가 많이 나올까 봐 돈 걱정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숙소 주인이 알려준 그 병원은 공립 병원 아니면 보건소 같은 곳이었던 터라 약값 외에 진료비는 따로 들지 않았다.  

 병원은 아수라장이었고, 사실 그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침대가 부족한 것인지 병원 마당에서 수많은 인도인들이 기차역에서 처럼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 있었다. 피를 흘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무서워졌다.  

  사실 피를 철철 흘리는 중환자들도 있는데 의사나 간호사가 보기에 나는 가벼운 증상에 응급실을 찾는 엄살 심한 여행자였을 지도 모른다. 의사에게 내 상태를 설명했지만 원인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고 대신 간호사를 따라가서 주사를 맞았다. 풍채 좋은 인도 간호사는 내 엉덩이를 문지르거나 톡톡 두드리는 과정은 생략하고 바로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다시 사이클 릭샤에 실려서 숙소로 돌아왔고 그 날 이후로도 3~4일 정도를 두통이 심해서 일어날 수 없기에 침대 생활을 했다.  

 

사실 인도까지 가서 숙소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내가 왜 아픈지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혹시 내가 광견병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광견병은 이름 때문에 가끔 미친개(?)에게 물리면 걸리는 병이라고만 오해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개뿐만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 전체에 감염될 수 있는 질병으로, 한 번 걸리면 대부분은 사망한다고 보면 된다.  

 나는 리시케시에서 원숭이에게 눈가를 긁히고 머리를 쥐어 뜯긴 경험이 있다. 심하게 긁힌 것이 아니라 피도 나지 않았고, 그래서 의사도 광견병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될 거라고 돌려보냈지만 델리에서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고 와도 계속 낫지 않는 증상에 혹시 진짜 광견병은 아닐까, 그때 나를 돌려보낸 그 의사가 돌팔이는 아니었을까 싶었던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광견병 증상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는데 물 공포증, 환청, 정신착란, 근육마비와 같은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외여행지에서 원숭이에게 공격당해 광견병으로 죽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유서 비슷한 거라도 한 장 미리 써 놓아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몸을 일으켜 앉아 있으면 두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졌기 때문에 곧 다시 침대에 누워야만 했다.  

 

 며칠이 지난 뒤 통증은 자연스레 사라졌고 나는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지금도 나는 그때 내가 왜 아팠는지 모른다. 단순한 감기 몸살 혹은 체한 증상이라기에는 너무 심하게 아팠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죽도록 아팠던 덕에 D는 차마 사경을 헤매는 나를 두고 갈 수 없다며 귀국 비행기 날짜를 또 한 번 연장했고, 나는 원래 계획했던 암리차르나 찬디가르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에 2주 더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간격으로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다. 몸이 괜찮아졌다고 해도 한국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었고 더 이상은 다른 도시에 다녀올 힘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푸쉬카르에서 델리로 온 날부터 한국에 갈 때까지 총 8일을 델리에서 보냈다.  





 사실 델리는 첫 번째 인도 여행에서의 마지막 도시였고, 이번 여행에서도 따로 여행기로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지나쳐가며 하루 이틀씩 묵은 곳이었기 때문에 나의 델리 방문은 이번이 이미 4번째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델리는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들르는 도시이거나 잠시 지나가는 도시일 뿐 그 자체로 여행지가 되지 못했었다. 아마 많은 여행자들이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델리에 네 번째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이클 릭샤에 실려 다니는 와중에도 ‘아, 또 델리야?’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델리에서 일주일을 넘게 있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는 델리를 오해하고 있었다. 빠하르 간지와 코넛플레이스, 찬드니촉에만 가보고 델리를 좋거나 혹은 별로라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이번 여행의 첫 도시인 콜카타에서 우연히 슬럼가에 들어갔다가 게스트 하우스와 여행자 거리에서 만나는 인도가 과연 진짜 인도 일지, 내가 과연 진짜 인도를 볼 수 있을지 회의감을 품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델리를 관광지 몇 개의 모습만 보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도시이든 간에 한두 가지 모습만으로 대상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델리에 8일을 있어 보니 편견과 달리 무조건 좋기만 했다는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우리가 오기 며칠 전, 이곳 빠하르 간지에서 길을 묻던 유럽 여자 여행객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 온 후 뿌옇게 안개 낀 델리의 뒷골목을 D와 함께 걸으며 나는 문득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그 소식을 듣기 전,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델리가 오해와는 달리 생각보다 훨씬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일주일째 일상처럼 걷고 있는 이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인생 최악의 장소였을 것이란 생각에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델리가 별로라고 생각했으나 좋은 곳이었고, 생각보다 좋은 곳이었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그날 밤의 안개처럼 뿌옇고 모호했다.  

 

 콜카타에서 이미 나는 인도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걸 알았지만, 한국으로 가는 날을 코앞에 두고 다시 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네가 생각했던 그대로 너는 이번 여행에서 인도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며 앞으로 다시 오든 말든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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