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트라떼 Jun 07. 2018

Epilouge -
안녕, 나의 뜨거운 인도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2013년, 내가 인도에 두 번이나 가서 보낸 총 4개월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을 어떻게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나는 인도에서 스물여섯 살이 되었고, 40명이 넘는 사람들과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약 한 달까지의 시간을 길 위에서 함께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유 편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여행이 끝났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내일 아침이면 기차역에 내려서 릭샤 흥정을 하고, 숙소를 구하겠다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돌아다녀야 할 것만 같은데 말이다. 여행 마지막에 몸이 아파서 귀국 비행기를 며칠 앞당겼고 한국에 무척 돌아가고 싶었지만, 막상 정말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나는 이미 다시 인도에 가고 싶어 졌다.  


 인도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나라였다. 공식적으로는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카스트 제도, 그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삶이 이미 결정되는 사람들, 극심한 빈부 격차,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낮은 여성 인권과 성범죄율,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빈번한 사기와 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바가지요금 등등. 나는 인도가 좋았지만 내가 다녀온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인도는 친구들에게 너도 한 번 가보라고 권유할 수 없고, 인도에 다시 가겠다고 말하면서도 다음 여행도 안전하게 잘 다녀올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사실 나는 인도가 영적이고 신성한 이미지로만 사람들 눈에 비치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도는 단순히 어떤 이미지로만 정의되어 지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낭여행의 단순한 즐거움들이 있어서 나의 여행은 행복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 처음에는 낯선 타인이었던 사람과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어 가는 일, 매일 마주하는 새로운 풍경과 역사와 공기, 사기꾼 물리치기, 몇 배를 올린 건지 감도 안 잡히는 가격 갂기, 삐끼 쫓기,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숙소 잡기 등과 같이 늘 퀘스트처럼 주어지는 과제들과 함께하는 인도 여행은 하루하루가 도전이고 모험이었으며, 그 호기심 가득한 모험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내 눈에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멋진 사람들이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을 이미 걸었던 사람들도 있었고,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이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멋있어서 내 계획은 휴지통에 버리고 졸졸 따라다니고 싶었던 사람들도 많았다. 나보다 평범하고 겁이 많아 보이는 여행자는 4개월을 통틀어 딱 한 번 만났다. 저 사람이 어떻게 인도에 올 생각을 했지 싶을 정도로 주변 환경에 예민하던 그 사람이 인도에 완전하게 녹아드는 데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절대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예민한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갖고 있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고작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만에 인도에 동화되는 것 또한 내 눈에는 대단하게만 보였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는 길목에서 내가 느낀 것은 지극히 평범하기만 한 것 같던 나도 사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아직은 내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그 멋진 사람들에 비해 내세울 만한 무언가는 없었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나의 속도로 소중한 시간들을 살아나가고 있었다.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내가 길 위에서 뜨겁게 사랑하고, 상처받고, 울고, 웃고, 미워하고, 좋아하면서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 있게 그때 배운 것들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다고 말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언제일지 모르는 인도 여행을 다시 계획하고 있다. 아마 다음번에는 이제까지 봉사활동 외에는 가보지 못했던 남인도 쪽으로 가게 될 것 같다. 남인도의 해변 사진을 볼 때마다 인도가 나를 부르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은 한국을 떠나 호주에서 살고 있고, 디우에서 처음 만나 리시케시부터 여행의 마지막 날까지를 동행했던 D와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친구들은 인도에 가서 '김종욱을 찾아왔다.'라고 말하지만 내가 정말로 찾은 것은 김종욱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도가 영적인 어떤 힘을 가지고 있어서 자아를 찾아준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 시간들이 나를 변화시켰다. 이 여행은 5년 전에 이미 끝이 났지만 여전히 나의 인도는 뜨겁고, 나는 내가 길 위에 서 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머지않아 다시 만나길, 안녕 인도! 



매거진의 이전글 2-13. 델리에서의 8일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