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기 2 - Tübingen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네카르(Neckar) 강에 접해 있는 대학 도시 튀빙겐까지는 기차로 약 1시간이 걸렸다. 역에서 내려 조금 걷다 보니 강변을 따라 눈에 뒤덮여 새하얗게 변한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는 산책로가 나왔다. 알고 보니 이 산책로는 네카르 강변을 따라 조성된 약 1km 길이의 플라타너스 산책로로 이미 꽤 유명한 관광명소였다. 하지만 나는 튀빙겐이 대학 도시라는 것만 알고 갔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눈 쌓인 가로수들이 자아내는 풍경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산책로를 따라 걷게 되었다.
한걸음 한걸음을 옮길 때마다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눈발과 함께 네카르 강변의 집들과 나무들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점점 더 아름답게 변해갔다. 눈이 많이 내려서였을까, 아니면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일까. 산책로를 끝까지 걷는 내내 나는 단 한 명의 사람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독일 소도시 여행을 할 때 대부분 목적지 없이, 지도도 보지 않고 그냥 걷기만 했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생기면 잠시 앉아 쉬었다가 다시 또 걷는 식이었다. 튀빙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걷다 보니 이번에는 터널이 나왔다. 처음엔 터널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지만, 반대편 끝에서 누군가가 바이올린으로 Frank Sinatra의 My way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홀리듯이 들어갔다. My way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유럽을 여행할 때 나는 스물셋이었고 친구들은 20대 초반에 옛날 노래를 좋아하는 내가 할머니 같다고 했었다. 노래를 따라 터널을 걸으며 나는 왠지 이 터널이 끝이 나지 않을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터널은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끝이 났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 악사가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몇 군데의 독일 소도시에 다녀왔지만 튀빙겐은 내가 갔던 곳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기대감도 없이 만난 함박눈 쌓인 플라타너스 길 때문이었을까, 역시 예고 없이 마주친 좋아하는 음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튀빙겐이 원래 예쁜 도시여서 그런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나 가장 인상 깊은 순간들은 대부분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