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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Aug 19. 2018

중경삼림의 도시, 홍콩에서

홍콩의 밤은 아름답다. 

 아직도 경찰 223이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통조림을 사 모으고 있을 것 같고, 웨이트리스 페이가 경찰 663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녀의 전 여자 친구의 흔적을 지워내고 있을 것 같다. 영화 <중경삼림>을 재밌게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장면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영화의 OST인 California Dreaming과 페이가 종이비행기를 접어 창문 바깥으로 날리는 장면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있다. 영화 <중경삼림>은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다. 



 홍콩은 유럽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스탑오버로 3일간 머물렀다. 홍콩에 간 목표는 딱 하나였다. 영화에 나온 곳들에 직접 찾아가 보자.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문제는 숙소였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임청하가 바바리코트를 입고 등장했던 청킹맨션에 묵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침사추이에 위치한 청킹맨션 내부에는 저렴한 숙소는 많았지만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겁이 많았던 나는 결국 누아르 영화의 배경으로 딱 어울리는 이곳에 묵기를 포기하고 근처의 다른 값싼 숙소를 찾았다. 청킹맨션은 아니었지만 방 분위기는 얼추 비슷했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가면 딱 맞을 듯한 크기의 작은 방에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퀴퀴한 냄새가 올라오는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방 안은 온통 하얀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는데 그마저도 칠이 여기저기 벗거져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침대 옆에 위치한,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작은 창문은 문이 반 정도만 열리게 되어 있었는데, 반쯤 열린 창문 아래로 앞 건물의 환풍기와 침사추이의 뒷골목이 보였다. 오전 이른 시간에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그 창문을 보며 밤에 저 창문 밖의 밤거리를 보면서 캔맥주를 한 잔 마시면 운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던 나는 막상 밤이 되자 무서워 커튼을 닫고 밤새도록 불을 켜고 잤다. 어디선가 벌레가 툭 떨어질 것만 같은 방 상태 때문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겠다. 



 홍콩에 쇼핑을 하러 갔다던 친구는 볼거리도 없고 날씨는 습해 빠졌으며 별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나 역시 홍콩 여행이 단순한 휴가였다면 기억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중경삼림에 푹 빠져있던 나에게 홍콩은 어디를 걸어도 영화 속 한 장면이었고, 나 자신도 영화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낭만적인 곳이었다.  



 홍콩의 밤은 길었다. 나는 본래 여행을 가면 일찍 나가서 일찍 들어오는 편인 터라 그날도 저녁 무렵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갔다가 안주거리나 사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먹을거리를 찾으며 침사추이의 밤거리를 발길이 닿는 대로 아무렇게나 한 바퀴 돌았다. 늦은 시각에도 길거리는 여행객이며 현지인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나로서는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광둥어가 적힌 네온사인 간판들이 요란하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줄을 서서 기다려 들어가야 하는 식당도 있었다. 

 소란스러운 밤의 침사추이를 걷고 나니 더 이상 속이 허전하지 않게 된 나는 안주거리를 사지 않고 곧장 숙소로 돌아왔다. 홍콩의 밤은 배고픔을 잊을 정도로 이국적이고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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