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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YSBE Nov 01. 2017

2-2. 교실 붕괴는 왜 일어나는가?

붕괴될 수밖에 없는 2차 산업시대의 교실 모델

  우리는 학교를 모든 사람들이 거쳐가는 당연한 곳으로 여기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학교는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저의 할머니 세대만 해도 여자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문맹 비율이 생각보다 높습니다. 100년도 되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날 교실 붕괴가 왜 일어나는지가 궁금하다면, 먼저 오늘날과 같은 학교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해 질문해 보면 됩니다. 오늘날의 학교 시스템은 2차 산업시대의 산물입니다. 그 전 시대에는 모든 국민을 국가가 교육하는 제도는 없었습니다. 소수 귀족들만이 교육의 특혜를 받았지요. 산업 혁명이 이루어지고 도시가 발달하게 되어 비로소 학교가 필요하게 되었지요. 산업 사회의 ‘숙련된 노동자’를 키워낼 필요가 있었고,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든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든 모든 국민들에게 통일된 국가관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어요. 한 때, ‘교육부’의 이름이 ‘교육인적자원부’인 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 이름이 산업주의 교육관을 아주 잘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인간’을 길러내는 곳이 아닌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곳이라는 의미였죠. 개인적으로 비인간적으로 느껴져서 좋아하지 않는 이름입니다.(불과 10년 전 일입니다.)

  학교 시스템은 산업화 시대에 최적화 되어 있어요. 같은 시간에 등교해서 정확한 시간에 맞게 공부하고, 같은 시간에 하교하는 연습을 충분히 한 학생은 성실한 노동자를 키워내기에 좋은 시스템이지요.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노동자인 부모는 안심하고 직장에서 일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고요. 게다가 그 때는 인터넷도 발달되어 있지 않아 학교가 지식의 거의 주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식 교육이 유용하고 효율적이기도 했습니다. 경제 성장이 한창이었을 때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면 평생직장이 되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하나 더. 산업 사회의 큰 특징 중 하나로,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가치관이 퍼져나가던 시대라는 걸 꼽을 수 있지요. 그 전 시대에는 소수에게만 특혜로 주어졌던 교육의 수혜를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었으니 이건 정말 혁명적인 일이었어요. 우리는 획일적인 교육,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 비판하지만, 학교 교육이 처음 시작된 때에는 모든 사람이 같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성공의 기회를 공평하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즉 , 2차 산업 사회에서 학교는 국가적 필요와 국민들의 수요를 잘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것이 학교가 2차 산업시대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입니다.


  그런데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우리는 지금 3차 산업 혁명을 지나 4차 산업 혁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 시스템은 2차 산업 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으니 위기에 처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교실 붕괴는 현대 사회에서의 학교의 무능력에서 기인합니다. 저는 두 가지 면에서 학교가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다양성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사회는 단지 공부를 잘 하고, 좋은 대학을 간다고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닙니다. 직업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 질 것이고, 삶의 방식도 더욱 다양해질 것입니다. 한 아이에게는 정말 필요한 지식이 다른 아이에게는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학교가 학생들의 이러한 실제적인 요구를 채워주지 못한다면 교실 붕괴는 더욱 가속화 될 것입니다. 부모의 의식 수준이 높고, 경제력이 되면 학교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스스로 채워줄 수도 있겠지만,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은 붕괴된 교실 현장에 방치되게 되겠지요. 교실이 붕괴되면 자신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들이 일으키는 사회적인 문제나 사회 부적응 문제도 심화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교육과정의 내용이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 발맞추어 교육과정을 ‘수시 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시 개정’으로는 변화하는 사회를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바뀌는 교육과정에 따라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고, 수업 내용을 재구성 해야 하는 교사들만 괴로울 뿐입니다. ‘교육과정 내용’을 ‘지식’이 아닌 ‘자기주도학습능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아이들이 공부해야 하는 과목의 지식 내용은 그다지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과목에 좋은 교과서가 있다면, 그 교과서는 새로운 내용만 조금씩 수정해 나가면 되는 것이지, 계속해서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면서 교사들에게 혼란을 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각종 매체에서 교과서보다 더 많은 양의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 국가가 아이들에게 공부해야 할 교육내용을 일괄적으로 정하여 해마다 바꾸고, 교과서를 바꾸는 것은 에너지 낭비 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지식을 골라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취합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교재를 스스로 고르고,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며 자신의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교실의 1차적 기능은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부라는 것이 자신의 삶이나 진로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면, 학생들은 학교 공부에서 의미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현재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그다지 의미를 찾지 못하는) 공부해야 할 교육내용을 정해놓고,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가르칠까에 대한 고민만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학생의 흥미를 유발하는 각종 수업 방법에 대한 연구는 의미있는 것이지만, 공부란 원래 항상 재미있을 수만은 없는 법입니다. 재미보다는 의미가 우선이지요. 학생 본인에게 의미가 있다면, 평범한 방식으로 가르쳐도 학생은 배움의 재미를 느끼고 그 안에서 성장합니다.

  저는 담임 교사를 하면서 학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삐딱한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었습니다. 수학의 경우, 이미 수준이 한 두 학년이나 뒤쳐져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는 상태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그 학생들에게 수업을 억지로 따라오도록 요구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대신 그 학생 수준에 맞는 학습지를 따로 뽑아서 풀 수 있도록 해 주었어요. 미술의 경우, 한 시간에 한 가지 주제로 일괄 그리게 하는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단원을 선택하여 개별 진도를 나가 보았습니다. 결과는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자신의 수준과 흥미에 맞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니, 무기력했던 아이들이 제 기대보다 훨씬 열심히 공부를 하더군요. 저는 그 아이들이 불성실한 것이 아니라 수업에 부적응하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어요. 안타까웠습니다. 수업에 따라가지 못해 한 번 쳐지게 되면 원래 성격과는 상관없이 아이는 무기력하고 불성실하게 태도가 변화합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부터 그렇게 되면 성격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자신의 진도에 맞게 공부할 수 있다면 조금 느린 아이는 있을지언정, 불성실한 아이는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배움이 단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많고, 각종 매체에서도 많이 배웁니다. 앞서가는 아이들은 학교의 수업을 시시하게 여깁니다. 당연히 흥미가 없고, 부진한 아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입니다. 교실 수업이 의미없기는 매한가지인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이 흥미있어 하는 분야에 대해 더욱 깊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몰입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입시위주의 교육을 막기 위해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학원에서도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것을 권장하지만 현재의 학교 시스템에서 그것을 막을 방법은 실제로 없습니다. 만약 획일적인 교육과 획일적인 시험이 없어지고, 자기주도 학습을 하는 학습 풍토가 정착이 된다면 그러한 문제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입니다.

  교실 붕괴의 원인은 학생들이 버릇이 없고 집중력이 없어서도, 교사가 무능력해서도 아닙니다. 가장 큰 원인은 학생이 살아가는 현실과 학교 시스템 및 교육과정 사이의 괴리와 모순에 있습니다. 다양한 개성과 요구를 가진 학생들이 본인에게 필요한 교육 내용을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학교가 가르친다면 교실은 의미를 찾을 것입니다. 학생이 배움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사는 억지로 주의집중을 시키는 수고를 덜 수 있고, 가르치는 기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와 관계도 많은 부분 회복될 것이며, 학생과 교사 모두의 삶이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새로운 교육과정 모델에 대한 고찰은 4장에서 구체적으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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