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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YSBE Nov 06. 2017

3-4. 휴학은 왜 대학생들에게만 있는가?

삶에서 쉼표가 필요한 시기가 언제 찾아올지는 정해져있지 않다.

  사람은 살면서 달려야 할 때가 있고, 쉬어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쉼표가 허락되지 않죠. 오직 대학생들에게만 허용이 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휴식은 결코 낭비되는 시간이 아닙니다. 버닝 아웃 상태에서 일을 하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지요. 학생의 경우 공부의 능률이 오르지 않고, 직장인의 경우 일의 능률이 떨어집니다. 쉼 없는 달리기는 개인에게만 불행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살면서 쉼표가 필요할 때 쉬어갈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학교는 물론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아이들의 삶에 대해 논하고 있기 때문에 초중고 학생들의 쉼표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해요.


   초중고 학생들에게도 때로 휴학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인생의 큰 난제에 부딛쳤을 때에 마음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인생의 큰 난제가 있겠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단언코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왕따나 학교폭력에 휘말리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 입니다. 함께 두면 피해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심각한 상황의 경우, 무조건 한쪽을 전학보내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피해 학생의 경우, 마음의 상처가 커서 학교에 바로 나가기가 두려울 수 있습니다. 불안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고, 학교에 가도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고 어서 집에 가고만 싶습니다. 이럴 때에 마음을 치유하고 용기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해학생의 경우에도 반성을 하고 올바른 인간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간이 필요하며, 자신의 안에 분노가 있다면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때로는 집안에 큰 일이 생겨 상처 치유가 학업보다 우선인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에 노출되거나 부모의 이혼으로 충격을 받은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문제는 다양한 형태로 발현됩니다. 움츠러드는 아이도 있고, 친구들이나 교사에게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아이는 교실에 있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아이에게도, 그 아이와 함께 있는 교사나 친구들에게도 해롭습니다.

  이러한 경우, 아이의 상처 치유를 담임교사나 아이 스스로에게 해결하도록 떠넘길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있을 수 있는 대안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어떨까요? 학업보다는 놀이치료나 상처를 잊을 수 있도록 전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공간. ‘교육전문가’인 교사보다는 ‘심리전문가’인 상담가와 마주할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공부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큰 상처는 제 때 치유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아이를 괴롭힐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를 떠나 다른 유의미한 경험을 하고 싶을 때에도 휴학은 필요합니다. 대학생들이 휴학을 하고 하는 전국 배낭 여행이나 워킹 홀리데이, 인턴십, 또는 창업 경험 등은 고등학생들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흔한 예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부모가 안식년을 얻어 큰 마음을 먹고 1년 간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은 경우, 아이에게 휴학을 하고 여행지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평생 더 값진 것으로 마음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미루었다 대학을 간 후에 해야 하는 이유가 꼭 있을까요? 마음으로부터 꼭 하고 싶을 때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고 해서 3년 후에까지 계속 하고싶으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다면 아이의 가치관과 인생이 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대학생의 휴학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면서, 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휴학은 이상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대학생들은 다양한 나이의 학생들이 한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반드시 같은 나이의 학생들로만 교실을 구성해야 할까요? 학급 구성이나 교육 내용에 대해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휴식이 필요한 아이들을 강제로 교실에 집어넣고 정해진 내용을 배우라고 강요하는 것은 인간적으로도 몹쓸 짓입니다.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아이에게 그래도 공부하라고 강요하겠습니까? 마음에도 화상을 입은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폭력이지만, 그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에게도 폭력입니다. 교사는 교육을 하는 직업이므로, 심리치료까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 입니다. 그러한 아이들은 일대일로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진 심리치료사가 상담을 해야 하며, 교실로 돌아올 태도와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일반 교실에 올 수 있어야 합니다.

  휴학이나 복학, 대안 교실과 일반 교실 간의 이동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이상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정말 이상하거나 독특해서 가는 곳이 아닌, 누구나 마음의 쉼이 필요할 때 다녀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삶에서 쉼표가 필요한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초등학생 때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시기가 찾아오면, 누구든 눈치를 보지 않고 쉬었다 갈 수 있는 교육 풍토의 마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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