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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YSBE Nov 07. 2017

4. 교육과정과 현실 사이의 모순에 대해 묻다

학생들의 필요를 반영한 교육과정으로의 개혁에 대한 요구

  앞서 3장에서 의미있는 학창시절이란, 학창시절에밖에 할 수 없는 유의미한 경험과 추억을 만들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진로, 적성뿐만아니라 성격, 가치관, 삶의 스타일까지 포함하여 폭넓게 알아가는 시간을 말한다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교육과정’이란 무엇일까요? 학생들이 의미있는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교육과정이겠지요.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어떻습니까? 다양한 경험과 추억은 커녕, 입시로 아이들을 몰아 세웁니다. 교육 내용은 딱히 아이들의 삶에서 필요하거나 관련된 내용이 아닌, 수능을 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입시 공부조차도 제대로 해주지 못합니다. 교실에서 엎드려 자는 풍경이 고등학교에서 그리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학생들마다 수준이 너무 달라서 교사는 누구의 수준에 맞출지 알 수 없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수업을 학생은 듣지 않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때 그러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고1때는 그래도 많은 학생들이 수업에 깨어있었는데, 고2, 고3이 될수록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수업 시간에 아예 대놓고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늘어났지요. 어떤 수업은 50명 중에 10명도 깨어있지 않았습니다. 조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자는데도, 선생님은 학생들을 깨우거나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선생님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라디오나 컴퓨터가 아닌 인격과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아이들의 그러한 행동은 선생님의 자존감을 얼마만큼이나 떨어뜨렸을까요? 아마 저라면 교사를 오래 하지 못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학생들은 교사를 무능력하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교사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학생들을 무기력하고 버릇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도 교사도 불행하니, 그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고 서로를 원망합니다. 그러나 저는 교사나 학생 모두가 ‘잘못된 교육과정’의 피해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 상,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40명의 학생들은 대다수가 평범하고 착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다만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어느 순간 따라가기를 포기했는데, 선생님께서도 그들을 포기하시니 대놓고 자기에 이른 것이었지요. 교사가 되어 입장이 바뀌었지만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수업 시간에 뚱한 표정으로 저를 보거나 과제를 하지 않는 아이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원래부터 무기력하지는 않았으나, 계속해서 이해를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무기력한 성격으로 점차 변해 갑니다.

  교사들 역시 대부분은 죄가 없어요. 몇몇 교사가 되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사들은 모범생으로 살아왔고, 그런 모범생다운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해 교육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교실에 30명이 앉아있으면 30명이 모두 이해도도 다르고, 원하는 수업 스타일도 다르니 정말 난감합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 간 격차는 심해지고, 누구에게 맞추어 수업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리 유능한 사람을 갖다놓아도, 지금과 같은 교실에서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수업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명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원망을 거두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현재 교실 상황은 참 비합리적입니다. 모든 학생들에게 한 가지 교육과정을 강요하면서, 한 교실에는 너무나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이 앉아 있습니다. 교사가 슈퍼맨도 아니고, 그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칩니까? 교육내용에 따라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예컨대, 중1까지 예습이 되어 있는 아이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수학문제를 겨우 푸는 학생의 스펙트럼이 공존하는 5학년 교실에서 수학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건 슈퍼맨도 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교육과정을 선택해서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들을 수 있도록 하되, 한 교실에는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그래야 교사도 수업의 수준을 학생들에 맞게 가르칠 수 있고, 학생들도 자신의 수준과 흥미에 따라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으니 배움에 대한 의욕이 생깁니다. 물론 때로는 수준이 제각기 다른 학생들을 모아놓아도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고, 오히려 더 풍요로워지는 수업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수업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과목, 모든 학생에게 교육 방식과 그룹 형성 방식을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4장 ‘교육과정과 현실 사이의 모순에 대해 묻다’에서는 현재 대한민국 교육과정의 허점에 대해 짚어보고, 그에 대한 대안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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