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혼자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의 즐거움을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점심으로 파스타를 해 먹었다. 마늘과 청양고추를 넣은 알리오 올리오. 집에서 파스타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불광동 집에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가 마지막이니까 1년 반 정도 됐을 거다. 그때처럼 유튜브 채널 ‘하루한끼’의 영상을 보고 레시피를 따라 했다. 베이컨이 없다는 점과 스파게티를 링귀니로 대체했다는 점 외에는 거의 비슷하다. 면을 7분 삶고, 약불에 올리브 오일로 마늘 볶다가 노릇해질 즈음 청양고추 추가하고, 익은 면과 면수 두 국자 정도를 넣어 소금과 후추 간으로 마무리. 마늘 겉면이 꽤나 까맣게 타긴 했지만 그래도 비주얼은 얼추 나쁘지 않았다. 맛도 괜찮다. 마늘 향이 듬뿍 나는 게 8알이나 넣기를 잘했다.
개선할 점과 변화를 줘보고 싶은 점이 하나씩 있다. 먼저 개선할 점. 다음에는 소금을 조금만 넣어야겠다. 오늘은 조금 과하게 넣은 느낌이다. 마늘과 청양고추가 오일의 느끼함을 충분히 잡아주고 어차피 후추까지 뿌리니까 소금은 소량만 넣어도 충분할 테다. 아예 빼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고. 변화를 주고 싶은 점은 사전에 면을 삶는 시간이다. 다음에는 6분만 삶아볼 거다. 좀 더 탱탱한 면발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 유명한 알.덴.테. 나는 고기를 구울 때도 대체로 오버쿡을 하는 쫄보 성향이 있는지라 이번에도 그걸 못 참은 것 같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지금 막 생각났다. 다음에는 정말 맛있는 소시지를 하나 사서 같이 구워 먹어야겠다. 버드와이저 병맥주도 빠지면 안 된다. 보고 싶어서 저장해 둔 유튜브 영상 (최소 30분 이상 되는 길이) 하나 틀어 놓고 먹으면 을매나 맛있을까?
자취생활 7년 차에 접어들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7년 차라고 하면 대단한 살림 고수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난 좃도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물리적으로 혼자 사는 아저씨일 뿐이다. 물경력만 쌓으며 허송세월 보내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정작 실속은 없는 7년 차 노동자가 되는 건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몸만 떨어져 살지 진정한 독립과 자립을 이루려면 아직 한참 멀은 7년 차 자취러가 되는 건 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까? 생활력 떨어지는 성인이 얼마나 등신 같은지 이제야 조금씩 느낀다는 게 한심하다. 나 같은 남자들이 사실은 굉장히 흔할 거라고 생각하면 이 나라 미래도 참 답이 없다. 그럼에도 굳이 굳이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요즘 나는 직접 밥을 해 먹는 걸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사 온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고 쌀을 사고 면을 사서 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간단 조리를 한 역사조차 턱없이 짧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분명히 이전과는 다르다는 걸. 여전히 밖에서 사 먹고, 사 오고, 배달 음식 주문해 먹는 것에 대한 유혹이 시시각각 찾아오지만,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뭐라도 만들어서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의 즐거움을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걸 지속하는 게 관건일 테고, 사실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만큼 그냥 닥치고 해야 할 것이다. 돈 못 버는 놈이 쓰는 거라도 줄여야지 어딜. 카페 가는 건 끊을 수 없으니 최대한 식비를 줄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요리 경험치도 쌓일 테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에 일타이피에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안 할 이유가 없다.
상황과 환경에 휩쓸리며 기분에 좌우되던 내가, 어쩔 수 없는 조건에 놓이자 그 안에서 기분을 만들어 내려 노력하기 시작한다. 역시 나는 일정 수준의 제약이 있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주어진 흐름을 최대한 잘 타보는 수밖에 없다. 직접 해 먹는 시간을 늘려서 요리에 정 붙이고 집에도 정 붙이고 금전적 타격은 최소화할 것. 사소한 변화가 찾아온 지금의 일상이 나를 또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어디로 데려가든 부끄러운 싱글남만 벗어나면 된다.
2023.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