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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May 18. 2023

집에 내려갈 때면 나는 바리스타가 된다

지금은 닭이지만 다음에는 꼭 꿩을 대접하겠다는 심정으로



집에 내려갈 때면 백팩이 터질 것만 같다. 적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열흘 치의 짐을 가방 하나에 욱여넣기 때문이다. 맥북 에어, 속옷과 양말, 기차에서 읽을 책 한 권, 잠옷 바지, 각종 충전기까지. 여벌 옷을 일절 챙기지 않음에도 백팩은 이미 거북이 등딱지인 양 부풀어 오른다. 다 자업자득이다. 손에 뭘 들고 다니는 게 번거롭다는 이유로 어깨가 녹아내리는 쪽을 택했으니까. 



한동안은 거북이 등딱지로 모자라 종이가방을 추가로 들고 다녔다. 커피 브루잉 도구를 다 가져가려면 별수 없었다. 세라믹 드리퍼와 유리 서버를 깨지지 않도록 뽁뽁이로 감싼다. 핸드그라인더는 전용 미니 박스에 넣어 가방 안쪽 깊숙이. 드립 포트와 종이 필터와 어제 산 원두까지 빠짐없이 챙기면 고향 갈 준비는 끝이다. 용산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급격한 피로가 느껴질 때면 ‘바리스타도 아니면서 내가 대체 왜?’ 싶었다. 그러나 고통은 잠시뿐. 다음 날 점심만 되면 바리스타도 아닌 주제에 사서 고생한 어제의 나를 칭찬할 수밖에 없다. 



“밥 다 드셨죠? 오늘은 믹스커피 금지. 제가 가져온 거 내려드릴게요.” (찡긋)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듣고 싶던 대사는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온다. “이야, 커피에서 어떻게 이런 맛도 난다니?” 같은 말. 부모님의 미각이 촌스러워서가 아니다. 내 브루잉 실력이 안쓰러워서다. 분명 똑같은 원두에 똑같은 레시피인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맛이 난다. 서울에서 혼자 먹을 때는 괜찮았는데. 스페셜티 커피가 어쩌니, 브루잉 커피와 에스프레소의 차이가 저쩌니 신나서 묻지도 않은 설명을 쏟아낸 내가 밉다. 아빠는 이따금 주방 선반으로 눈길을 돌린다. 믹스커피가 아직 두 팩이나 남았다. 



부채 의식.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탕아를 바리스타에 빙의하게 만드는 건 그런 것이다. 쿨하고 힙한 카페를 다닐 때마다, 감각을 열어주는 놀라운 커피를 만날 때마다 나는 즐거워서 쓸쓸해진다. 짜릿할 정도로 좋은데, 그렇게 좋은 걸 나 혼자만 누려서. 내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는 커피는 분명 부모 마음에도 위안을 선사할 텐데 말이다. 기쁨을 나눌 수 없어 울적한 아저씨와 비밀을 공유할 생각에 들뜬 초딩이 내 안에 산다. 두 사람 모두를 가장 빨리 달랠 수 있는 방법이라곤 주섬주섬 브루잉 도구를 챙기는 것뿐이다. 지금은 닭이지만 다음에는 꼭 꿩을 대접하겠다는 심정으로. 



이번에는 스테이로스트(STAY LOST)의 커피를 가져갈 생각이다. 원두 이름은 ‘Way Out’.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 커피 한 잔이 작은 탈출구가 되어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나는 부모에게 작은 탈출구를 선물하는 셈이겠구나. 가방이 터질 정도로 바리바리 도구를 싸 가는 게, 5초면 만들어지는 인스턴트 커피를 놔두고 시간과 노력을 몇 배로 들여 직접 손으로 내리는 게, 두 분에게는 더없이 그윽한 휴식을 만들어 주는 일일 테니까. 굳이 뭣 하러 그런 수고를 들이냐고 타박하셔도 소용없다. 솔직히 맥심보다 맛이 없더라 고백하셔도 상관없다. 원래 선물은 주는 사람 맘이다. 



아침에 한 잔을 내려 마셨다. 일종의 리허설이다. 카드에 적힌 레시피를 따라 원두를 갈고 물을 붓는다. 오늘의 커피, 첫 모금. 다크초콜릿이 떠오르는 묵직한 단맛과 고소한 풍미가 느긋한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내 부모의 하루에도 이 진한 커피 향이 밸 걸 생각 하면 더 이상 울적하지 않다.




* Achim Journal에 기고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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