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Jul 06. 2023

내가 좋아하는 자리

서울, 버스, 1인석



이사를 하고 나서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많이 탄다. 지하철역은 15분을 걸어야 하지만 버스정류장은 5분이면 가기 때문이다. 응암초등학교 정류장보다 거리가 먼 명지전문대・충암중고등학교 정류장도 10분 안쪽으로 닿는다. 연희동이나 광화문의 경우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어서 지하철보다 낫다. 가면서 창밖으로 펼쳐진 한여름의 푸른 기운도 원 없이 만끽할 수 있으니 하루의 기분 자체가 달라지는 걸 느낀다. 이동의 신속성과 효율성만큼 중요한 게 감수성 아니던가. 건너갈 때조차 낭만을 챙기고 싶다. 원래 나는 그런 인간이다. 



가장 즐겨 앉는 자리는 승차 계단에 붙어 있는 1인석이다. 요즘에는 고정석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비어 있으면 무조건 앉는다. 앞에서 말한 ‘이동의 감수성’에 최적화된 좌석인데, 내 앉은키를 기준으로 창 너머의 도시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버스 전면 창은 거추장스럽게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여 있다. 의자 높이 역시 별도로 고개를 들거나 내리지 않고도 편하게 창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적당하고, 손잡이 역할을 하는 기둥 역시 시선을 해치기보다는 창문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종의 프레임이 된다. 창문이 측면이 아닌 정면에 위치한 건 꽤나 중요한 지점이다. 빠르게 지나가서 뭐가 뭔지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운 풍경 대신, 방향과 속도와 그 안의 크고 작은 변화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 안정적인 구도의 장면을 만날 수 있으니까. 주저하다 어렵사리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초보운전 차량의 안쓰러운 뒤태와 바람이 불어올 때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가로수, 방지턱을 지나며 도로 위로 잠시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 같은 건 이 자리에 앉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1인석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지금처럼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인간을 혐오하거나 타인의 냄새와 촉감에 민감한 타입은 아니지만 솔직히 누가 옆에 앉는 건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데 괜히 내 시간을 방해하는 기분이 든다. (그냥 인간 혐오 맞나?) 최애 자리에 앉으면 그럴 일이 없다. 쾌적한 단독 공간과 아름다운 뷰가 딸린, 나만을 위해 마련된 VIP석. 심지어 다른 좌석에 비해 앞에 서 있는 승객도 적은 편이다. 버스에 올라타면서 바로 지나치기 쉬운 자리라서 그런가. 대개 좀 더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 빈 좌석을 찾거나 손잡이를 잡고 서는 경향을 보인다. 오히려 좋다. 안중에도 없는 자리라서. 



하지만 승차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놓칠 수 없다. 문이 열릴 때마다 생각한다. 이번엔 또 누가 탈까? 나는 지금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 이들의 얼굴을 가장 먼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하는 (그러면서도 방해받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다. 남자와 여자가 탄다. 노인과 아이가 탄다. 직장인과 학생과 주부가 탄다. 몸보다도 큰 백팩과, 대파가 삐져나온 장바구니와, 굵고 진한 로고가 새겨진 수영가방이 주행 속도에 맞춰 때로는 작고 빠르게 때로는 크고 느리게 흔들린다.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버스가 내게 알려준다. 너는 몰랐겠지만 서울에는 이런 동네도 있단다. 이런 동네에는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 네이버 지도에 최단 경로를 찍고 버스에 올라탄 10년 차 서울 거주자의 머릿속에 입력되는 건 처음 들어보는 지명과 낯선 풍경뿐만이 아니다. 이 도시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물리적 실체를 확인하는 감각까지 포함이다. 그 감각을 오래오래 가져가고 싶다. 서울에서 계속 살아가는 한.





이 도시에 ‘내 자리’라고 부를 만한 거라곤 겨우 이 정도다. 남의 집이 아닌 내 집, 임시의 공간이 아닌 지속의 공간을 갖는 건 여전히 비현실에 가까우니까.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지만 이 도시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제 본 영화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기적”이라던데 서울도 이쯤 했으면 그만 비싸게 굴고 내 사랑 좀 받아주면 좋겠다. 따뜻한 보금자리 하나 내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누가 이길지는 장담 못 한다. 못 버티고 결국 내가 다른 도시로 도망가 버릴지도. 그때까지는 고작 이런 하찮은 고정석이라도 알뜰히 확보해 둬야 하나 싶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여기 내가 좋아하는 자리 하나는 있었다’며 아련하게 인사 남길 수 있도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끄러운 싱글남과 알리오 올리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