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아직 많이 짜친다
“포장을 해서 맛이 유지되는 법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서교동 446-4번지 '춘풍국밥' 외벽에 적힌 문장이다. 포장 주문이 불가하다는 말을 이렇게도 할 수 있다. 겸손한 동시에 솔직하다.
나는 저 문장이 “포장을 해서 맛이 유지되는 법을 알았다면 기꺼이 포장해 드렸을 겁니다”라고 들린다. 내가 못 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고백인 셈이다. 솔직한 걸 넘어선 정직한 마음. 세상에는 제대로 할 줄 몰라도 그냥 하는 사람들이 많다. 파는 게 중요하니까. 내가 부족한 건 상관없다고, 제3자가 뭐라 말하든 지금 앞에 있는 이 손님한테만 팔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적지 않다. 그렇게 안 하는 게 바보라고 빈정대는 시대다. 춘풍국밥 사장님은 바보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은 바보일 거다.
2023년은 그야말로 진정성투성이. 근데 진정성 외치는 사람치고 “자신을 완전히 까보이겠다는 결기”를 가진 사람 찾는 건 또 졸라게 어렵다. 솔직하지 못한 주제에 진심을 알아달라는 건 까놓고 생떼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건 김해서 작가가 옆에서 자주 말하듯 '손해는 1도 보지 않고 그저 개꿀 빨고 싶다'라는 소리다. 징징대는 표정을 상상하면 내가 다 열받는다. 그 표정이 어디서 많이 보던 거라서 더 열받는다.
참고로 “자신을 완전히 까보이겠다는 결기”는 영화평론가이자 작가로도 활동하는 김도훈 씨가 쓴 표현이다. 내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 추천사에 내 글을 보고 그렇게 적었다. “난감하게 정직하고 통쾌하게 솔직하다.” 어… 정말 런가? (머쓱)
춘풍국밥 사장님한테서 배운다. 맛을 유지하지 못 할 거면 포장해주지 말자. 차라리 앞에서 호객행위 해서라도 자리잡고 먹고 가도록 하는 게 맞다. 못 하는 걸 못 한다고 말할 줄 알아야 진짜 자신 있을 때 '나 존내 잘해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많이 짜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