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이 맺어준 인연
“삼겹살은 아이카 집에 가서 먹으면 안 될까?”
“우리 집, 집에 가서 먹자고? 나 부모님 하고 같이 사는데?”
“그래? 난 괜찮은데.”
눈이 동그래진 아이카는 순간 목소리도 커졌다. 집이 멀다면서도 부모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백패커 호스텔에서 장기 투숙객으로 머물던 손님이었고, 아이카는 리셉션 카운터에서 일하는 파트타임 직원이었다.
일본어로 인사밖에는 못해서 영어 하는 직원들과 주로 얘기를 나눌 때였다. 호스텔 1층에는 작은 주방이 있었는데, 나는 음식을 만들 때 조금 더 만들어서 직원들과 나눠 먹으며 친해졌다. 손님 대부분이 서양사람이어서 그랬는지, 직원들은 영어나 스페인어를 할 수는 있었지만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은 없었다. 그때, 나는 책으로 일본어를 떠듬떠듬 혼자 배우고 있었는데,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호스텔 직원이 있어 언어교환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 한 번씩 서로를 돕기 시작했고, 그중 한 명이 바로 아이카였다.
어느 날, 아이카가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했다. 투숙객의 거실도 겸하고 있는 호스텔 주방에서 둘이 고기를 구워 먹는 건 좀 무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대뜸 그의 집에 가서 먹으면 어떠냐고 물었다. 부모와 함께 살 거라는 생각까지는 못했고, 기대 역시 크지 않아 가볍게 물어본 건데, 그의 부모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아이카는 내친김에 나처럼 장기 투숙객이었던 프랑스인 한 명도 초대했다.
고기 등은 아이카 집에서 준비하겠다고 해서 나는 직접 만든 제육볶음과 함께 파절이 재료(대파와 한국 고춧가루)와 쌈장을 들고 갔다. 모리구치역까지 아이카가 마중을 나왔다. 조용한 골목의 2층 집 문이 열리자 아이카의 부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두 분 역시 영어를 해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알고 보니 아이카 부모님은 미국에서 오는 교환학생의 하숙을 하고 있었다. 해서 영어나 외국인에 대해서 친숙했다.
삼겹살은 먹어 본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쌈장도 파절이도 처음이라고 했다. 아이카의 아버지 히로 상은 쌈장에 푹 빠졌고 아이카는 파절이에 반했다. 파절이는 아이카 집에 일반 식초가 없어 초밥용 식초로 만들었는데 적당한 단맛까지 있어 설탕을 넣을 필요가 없었다. 조금 매웠지만 제육볶음도 인기였다. 야키니꾸용 불판은 큼직한 것이 삼겹살을 굽기에 제격이었다. 한국 사람이 온다고 특별히 일본식이었지만 김치도 사 왔다며 내주었다. 많다고 생각했던 삼겹살을 다섯이서 “오이시이! 오이시이!(맛있어, 맛있어)”를 연발하며 먹어 없앴다.
불판의 열기와 더불어 프랑스인 피에르가 사 온 와인과 히로 상이 내 온 술도 곁들이다 보니 얼굴까지 발갛게 달아올랐다. 치이익 고기 익는 소리와 함께 12월의 추위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밤이었다. 단독주택이라 소음걱정 없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반려조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익숙한 지 별로 놀라지 않았다. 흔쾌히 내 어깨에도 올라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삼겹살 파티가 계기가 되어 아이카의 부모님과도 가까워졌다. 어떤 날은 아이카가 집에 없어도 그의 부모를 만나러 갔다. 아이카의 어머니 키미코 상과는 몇 달에 한 번씩 점심을 함께했는데, 그는 오사카 시내인 기타하마역 부근에서 일을 했다. 키미코 상의 점심시간에 만나서 역 주변의 식당이나, 도시락을 들고 나카노시마 공원에서 먹기도 했다. 키미코 상이 퇴직을 하면서 끝이 나기는 했지만, 한창 연애 중이었던 아이카는 자신이 아닌 엄마와 어울린다고 신기해했다.
당시 짧은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소통했기에 오해도 있었지만 웃을 일이 더 많았다. 하루는 아이카의 부모가 교토로 여행을 다녀온 뒤 기념품으로, 마이코 상(어린 기녀)가 새겨진 금박의 책갈피와 나무로 만든 은행잎 모양의 책갈피를 사와서는 아이카 편에 보내주었다. 책갈피라는 일본어 단어를 찾아가며 한참 걸려 문자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おしり(오시리)、どう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とても可愛いです。
책갈피,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 예뻐요.
문자를 보낸 지 얼마되지 않아 아이카가 생글생글한 얼굴로 나를 찾더니 보자마자 웃음보를 터트렸다.
"하하하! 진짜 오시리라고 했어? "
"어? 문자? 응, 책갈피 감사하다고 했지."
"오시리는 엉덩이란 말이야, 책갈피는 시오리고. 하하하!"
아이쿠! 시오리(しおり)를 쓴다는 게 오시리라고 쓴 모양이었다. 글자 순서가 바뀌면서 엉뚱한 감사를 전한 것이었다.
엉덩이,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 예뻐요.
순간 당황했지만 나 역시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부끄러움은 박수로 날려버리면서. 덕분에 책갈피와 엉덩이라는 일본어는 절대로 잊지 못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가 본 일본인 집이 바로 아이카네였다. 웬만해서는 손님을 집에 들이지 않는 것이 일본 문화라고 들었는데, 유학생 하숙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삼겹살이 맺어 준 인연은 어쩌다 보니 아이카의 부모, 형제에 이어 남자 친구 (현재 남편) 그리고 아이카가 결혼한 이후에는 그의 아이까지로 이어졌다.
얼마 전 오랜만에 아이카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한국어가 유창했다. 작년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그래서 내가 다시 생각난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 한국에 여행을 오고 싶다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길을 걷는데, 그해 겨울처럼 1월의 찬바람이 얼굴을 향해 불어왔다. 전화기를 잡은 손이 시렸지만, 군고마 한 봉지를 안고 가는 듯 반가움이 퍼져갔다. 따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