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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할머니 스타일이면 어떤가

아이코 상의 잠옷

by 포공영

잠옷이었다. 연보라색과 파란색의 작은 네모 무늬로 가득했다. 거기에 티셔츠 한 장과 여름용 팔토시 하나 그리고 편지까지, 마치 성탄 선물을 받아 든 기분이었다. 분홍색 카드 봉투를 열자 10,000엔과 함께 공책에 쓴 편지 한 장이 나왔다. 필체가 좋은 아이코(あいこ, 愛子)상의 글씨로 가득했는데, 큼직하고 반듯한 것이 그의 성정이 느껴졌다.


편지를 요약하자면,

“항상 친절하게 대해 주고, 안아 줘서 고마웠어요.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 기뻤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마음뿐인 고센베츠도 받아 주세요.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파자마와 티셔츠가 괜찮다면 입어 주길 바라요.”


귀국을 앞두고 몇몇 사람으로부터 금일봉을 받으며 어리둥절했었는데, 이는 일본 문화라고 했다. 고센베츠(ごせんべつ, 御餞別)는 이직, 귀국 등의 이유로 떠나는 사람에게 주는 전별금이다. 아이코 상의 형편을 생각하면 만 엔은 큰 금액이어서 미안했다.


아이코 상은 일본 사람이다. 내가 다니던 재일교포 교회에서 딱 두 명밖에 없는 일본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교회 문 앞에서 합장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인사를 건넨 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 후 가끔 교회에 방문하더니 예배에 나오기 시작했다. 큰 병이 든 딸을 오랫동안 홀로 간호해 왔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아이코 상은 외롭다면서 종종 울었다.


“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어. 나는 혼자야.”


그렇게 울먹이며 말할 때마다 나는 꼭 안아 주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자신을 안는 것이 어색해서 그랬는지 거부하는 듯 몸이 뻣뻣했다. 그래도 계속 안아 주었다.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나중에는 인사하듯 서로를 얼싸안았다. 안으면서 “아이코 상, 이름이 '사랑받는 아이'잖아요. 하나님이 아이코 상을 사랑한대요. 혼자 아니에요. 우리도 사랑하고요.”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잠옷을 입는 습관이 없었던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헐렁한 티셔츠에 운동복 차림이었다. 아이코 상의 잠옷은 옷장 서랍에서 새것 그대로 고이 잠들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스타일도 아니어서 잊고 지냈다. 날이 더워지면서 좀 더 가볍고 편한 옷이 필요했던 나는 서랍을 뒤적였다. 그러다 보라색 잠옷을 발견하고는 꺼내어 입어 보았다. 웬걸, 좋은데! 기장도 딱이고!


이제껏 잠옷을 데면데면 대했는데 아이코 상의 선물을 입기 시작하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내친김에 계절별로 몇 벌을 더 장만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이를 닦으며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할 때 아이코 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할머니 스타일이면 어떤가. 그의 파자마가 가볍게 안아 주는 듯 세상 편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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