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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12. 2022

스타트업 10년 차가 되었습니다.

스타트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던 인턴이 9년이 지나 이제 10년 차 경력직이 되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나에게 스타트업이란 어떤 곳인지를 짧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100% 내 경험에 관한 것이며, 모든 스타트업의 경험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스타트업도 스타트업 by 스타트업이고, 세상에 100가지 회사가 있다면 100가지의 일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도, 스타트업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조금은 무엇인가를 알 수 있기를, 바라며 적는다.


01. R&R이 명확하기 어려운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기업이다. 당연히 대기업처럼 모든 조직이 다 갖춰져 있기 어렵고, 결국 한 명의 인원이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해야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나도 마케팅 담당자로 입사했지만, 입사 첫날의 업무는 상품 포장이었고, 입사 초기에는 CS를 겸업했으며, 때에 따라 어렸을 때 '장미나라의 태그교실'에서 틈틈이 익혔던 포토샵 기술을 사용해야 했다. 역할에 빈 공간이 생기면 누군가를 뽑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인원이 무언가를 메꿔야 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일이 내 일이 아니어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스타트업의 기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커리어 패스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되는 일은 다 하고 봐라."라는 말은 하는 말은 아니다. 본인이 만들어나가고 싶은 경력의 방향을 놓지 않되, 늘 사이드 프로젝트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단순이 사람이 없어서 R&R이 명확하기 어렵다는 것도 맞지만, 동시에 내가 맡은 역할이 아니어도 목소리를 내야 할 때도 많다. 회사에 고쳐야 하는 문화가 있거나, 개선해야 하는 문제점이 보였을 때 설령 그게 내 역할이 아니어도 큰 소리로 모두와 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스타트업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02. 끊임없이 나를 믿어야 하는

나의 첫 회사는 내가 일을 시작하고 몇 년이 되기까지도 아주 작은 회사였다. 친구들과 부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걸 늘 불쌍하거나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돈도 얼마 못 받는데 이름도 없는 회사에서 매일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업 초기에는 실제로 그랬다. 돈도 얼마 못 받았고, 고생도 많이 했다. 


누군가에게 내 직장을 소개할 때 회사 이름이 아니라, "어떤 회사인지" 설명해야 하는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회사의 이름에는 절대 기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000 다녀"가 아니라 "나 ~~~ 한 일 해"라고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일들의 가치를 믿고, 이 일이 나를 잘 성장시키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회사의 이름에 기대고 싶어지는 순간, 내가 있는 이곳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나의 경우에는 정말로 운이 좋게도 회사가 아주 빠르게 성장했다. 덕분에 나는 몇 년 안에 누구나 이름을 말하면 아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별 차이 나지 않는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언젠가부터는 회사 이름에 기대는 순간이 왔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회사가 빠르게, 그리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많은 스타트업 중에 아주아주 일부의 경우다. 그래서 회사보다는 내 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 곳, 그리고 나를 믿어야 하는 곳이 스타트업이다. 



03. 회사의 성장과 함께 성장해야 하는

회사가 J커브를 그리며 성장할 때, 나는 갑자기 늘어난 내 역할에 버거웠다. 아주 어린 나이에 아주 많은 팀원이 있는 리더가 되었고, 동시에 많은 책임을 맡게 되었다. 내가 맡은 사람들이 1명에서 몇십 명이 되고, 마케팅만 하던 내가 디자인, 콘텐츠까지 같이 맡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사실 나는 버거웠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범위였고, 실제로 나는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회사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너무 커져 있었고, 나는 그 속도에 맞춰 성장해야만 했다. 시간이 더 지나서, 유능한 경력직 리더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나는 더 많은 역할을, 더 많은 사람을 책임져야만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업 전략을 짤 수 있는지, 내가 배울 시간은 없었다. 그런 방법들을 배울 수 있는 스킬도 없었다. 늘 trial & error를 반복했다. 돌아보면, 그 기간 동안 나와 같이 일했던 구성원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회사가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은, 나도 그만큼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력이 느는 경험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배우고 또 부딪혀야 했다. 돌아보면, 그 과정에서 나는 참 많은 실수와 잘못을 했다. 그래서 성장하는 로켓에 올라탄 많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떠오르는 로켓 안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함께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그리고 가끔은 내 속도와 회사의 속도를 비교해서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내 역할이 작아져도 억울해하지 말라고. 



04.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

나의 첫 회사는 아주 많은 피봇팅을 했다. 자꾸만 더 배워야 했다. 처음에는 프로덕트 마케팅만 했는데, 그다음에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배워야 했고, 그 이후에는 사업 운영을, 그리고 브랜드 기획을 배워야 했다. 당연히 사수는 없었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활발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현대카드 정태영 회장님이 유튜브에서 브랜딩 비법을 강의하시지만, 라떼는 그런 게 없었단 말이다.


모두가 내 사수가 되었다. 에이전시에게 물어봤고, 옆 팀의 사람에게 물어보고, 다른 회사 마케터를 만났다. 구글에서 외국 사례를 공부했다. 매일 처음 하는 일이어서, 스스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히스토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배우기보다는 이미 정해져 있는 룰을 따르기를 좋아한다면, 스타트업을 추천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가르쳐주기도 어렵고, 언제나 처음 하는 일이 가득한 곳이라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적다 보니, 스타트업은 그리 좋은 직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경험했던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R&R이 명확하지 않아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었고, 끊임없이 나를 믿어야 했기에, 회사에 기대기보다 내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회사의 성장 속도에 맞추려다 보니, 어느새 다른 사람보다 앞서 있었던 적도 있었다. (돌아보면 그랬던 시간들이 있다. 지금은 그러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스스로 성장하는 건 어느 곳에서도 늘 필요한 자질이다. 마케터라는 직업은 반복해서 같은 일을 하기보다는 늘 새로운 일을 만들고 해내야 하기에, 나는 늘 스스로 배우며 만들어 온 내 경험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 줄 안다.


다만, 내 모든 이야기는 변화를 즐기고, 주도권을 갖기를 좋아하고 독립심이 강하며, 무엇보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라는 사람의 형상이 반영된 경험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모두에게나 이 경험이 뿌듯하거나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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