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무렵, 윤선생 영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안면도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아마 토요일 오후였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의 첫 차, 아니 아버지의 첫 차, 은색 엑셀을 타고 갔다. 엑셀을 사기 전에는 아버지의 출퇴근용 오토바이가 우리 가족 이동수단의 전부였다.(네 가족이 오토바이에 타고 사고가 난 적도 있다. 그렇게 살던 시절이었다.) 엑셀을 뽑고 나서 여느 가족처럼 활동반경이 넓어졌다. 그날 안면도 여행도 즉흥적으로 떠났다. 요즘처럼 길도 좋지 않았고 칠갑산 고개를 넘어가며 두 시간 반 넘게 운전해야 하는 코스였지만 괜찮았다. 영어 수업 때문인지 가는 길 내내 멀미를 심하게 했지만 깊은 내륙에 사는 어린아이가 바다를 그렇게 쉽게 만나는 것은 아무래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의 여름휴가를 맞아 강원도 해안도로를 따라 여행을 떠났다. 엑셀 대신 쏘나타3를 타고 갔다. 중형 세단의 뒷자리는 무척이나 넓었다. 뒷자리 가운데에는 암레스트를 꺼낼 수 있었고, 암레스트를 꺼내면 스키 스루가 있어 중형차를 타는 기쁨이 배가 됐던 기억이 난다. 2박 3일 정도 여행했던 것 같은데 정동진 말고는 특별히 장소가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대신 어느 고갯길에서 라면을 끓여 먹은 기억은 선명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갓길에 차를 세우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트렁크에는 어디 피난 가는 길도 아닌데 냄비, 김치, 라면 등 온갖 재료가 구비되어 있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 만든 엄마의 습관이었다. 길가에 쪼그려 앉아 동생과 라면을 먹었는데 묘하게 넉넉하고 풍요로운 기분이 드는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는 그때 그렇게 여행을 다녔다.
스물한 살, 아버지가 그랜저를 뽑았다. 낡디 낡은 쏘나타3를 처분하고 오랜 고민 끝에 새 차를 출고했다. 그 주말, 태안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코스의 절반 정도는 내가 운전했다. 태안까지 가는 길이 넓어지고 간결해졌다. 그랜저의 6기통 엔진 소리는 부드럽고 심지어 달달했다. 가속페달을 지그시 누르면 낮은 목소리로 엔진이 울리며 순식간에 속도를 높였다. 멀미도 하지 않았다. 넓고 안락한 실내도 그 시절 그랜저의 명성에 걸맞은 기쁨을 주었다. 쏘나타3의 패브릭 시트에서 그랜저의 천연가죽 시트로 옮겨 앉으니 엉덩이로 전해지는 감동은 더욱 커졌다. 내가 이렇게 느꼈는데 오너드라이버였던 아버지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때 그 그랜저를 물려받아 타고 있다. 서른셋에 물려받아 만 4년을 탔다. 올해 5월로 차는 만 15년을 맞이했다. 이미 폐차장으로 돌려보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됐지만 그랜저는 여전히 잘 달리고 있다. 첫째를 낳고도 한동안 차가 없어서 한겨울 갑자기 응급실에 가거나 돌사진 촬영을 하러 사진관에 갈 때 불편함이 많았는데 차를 물려받은 이후 이동의 자유도가 크게 높아졌다. 덕분에 가보고 싶었던 전국의 여행지를 누비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일까. 2006년 생산한 그랜저를 타면서 정비하는데 신경과 비용이 많이 소요됐다. 타이밍벨트, 리어 크로스멤버, 점화플러그와 코일(6기통이라 6개씩 들어가 총비용이 더 비싸진다), 오일팬 등 정비소 사장님과 친해질 정도로 방문할 일이 많았고 들어간 비용만 기백만 원이 된다. 종종 엔진오일이 연소하면서 머플러로 뿌연 연기가 뭉게뭉게 터져 나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내 마음도 함께 연소하고 주변 차들 앞에서 괜스레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장거리를 떠나기도 슬슬 불안해졌다. 고향과 처가를 다녀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퍼진’ 차들은 대부분 내 차와 연령이 비슷한 또래들이다. 갓길에 퍼져있는 차를 보면 마치 내 차도 불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듯 걱정 없이 달릴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은 불안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여기에 에어백도 없고(운전석만 있다. 그마저도 유사시 제대로 터질지 장담할 수 없다.) 요즘 차라면 다 있는 ‘긴급제동보조’와 같은 안전보조 기능도 전혀 없어 아이 둘을 태우고 다니면서도 잔잔한 걱정을 안고 다녀야 한다. 블루투스 또한 당연히 지원되지 않아 휴대폰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카팩이라는 구시대 유물을 꺼내야 한다.
그렇다. 나는 요즘 차를 사고 싶다. 생애 첫 차를 사고 싶다. 넓고 안락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새 차를 타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멀리 남해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신차 구입은 개인적 만족보다도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서임을 강조하고 싶다)
오랜 기간 차를 짝사랑한 사람으로서 새 차를 바라는 명확한 기준도 있다. 6기통 엔진의, 쿼터글라스가 있는 E세그먼트의 세단. 이 기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를 찾기로 하자.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를 꽤 좋아해 온 사람이라면 나타나는 이상행동이 있다. 포르쉐나 벤틀리 같은 드림카를 당장이라도 살 것처럼 시뮬레이션을 한다. 인터넷으로 견적을 뽑아보고 등록과 세금, 보험료 등 제반 비용은 얼마가 필요하고 그래서 총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 계산한다. 상상 자체만으로도 즐거워진다. 경우에 따라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만약 로또에 당첨이 된다면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고민하지 않고 바로 전시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나도 요즘 틈만 나면 유튜브로 희망 차종의 리뷰를 찾아보고, 구입비와 유지비를 따져보고, 아는 딜러에게 견적도 물어보고, 임직원 할인은 얼마나 가능한지도 물어보고, 예산을 따져본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좌절하고 포기한다. 주택담보대출과 학자금 대출을 짊어진 현재 상황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따져보더라도 새 차 구입은 시기가 요원한 망상에 그칠 뿐이다. 혹시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조금 더 크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었다는 기억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될 즘엔 바라던 차를 사서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엑셀, 쏘나타, 그랜저로 착실하게 사이즈를 키웠던, 어찌 보면 산업화 시대의 생활수준 향상을 몸소 보여준 아버지와 달리 나는 여전히 마이카를 장만하지 못했다. 이렇게 부모 세대만큼 살지 못하는 21세기 에코세대의 표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