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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ug 15. 2023

크리스천 결혼 수다

(2) 이 사람일까요? - 기도응답


내게 좋다고 고백하던 오빠를 기억한다. 나는 교회에 큰 일을 준비하고 있으니 이후에 만나보자고 대답했고, 시간은 흘렀다. 그러던 중 수련회를 지나갔는데 수련회가 끝난 후 같은 청년부 소속 언니에게 "나 교제를 응답받았어"라는 간증을 들었다. 알고 보니 내게 좋다고 했던 오빠와 만남을 고민하고 서로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했었고, 서로 응답을 받아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럼 나에게 했던 말은?



 그 충격적이고도 씁쓸한 사건 이후로도 종종 '이 사람을 만나도 되는가?' 하는 문제 앞에서 기도실로 가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기도실로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사랑하고 존중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는 항상 더 하지 못해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앞선 질문을 들고 가는 이들과 같이 고민하고 싶다. 먼저, 어떤 방식의 응답을 기대하며 가는지. 환상으로 보이길 바라는 건지, 번개가 떨어지길 바라는 건지, 성경을 갑자기 펼쳤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나오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마음으로 알아지는 건지? 그리고 이미 다녀온 적이 있다면 어떻게 응답을 받고 만나게 되었는지 말이다.



 이 질문을 나누자면 기도 응답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본 지면은 결혼과 관련된 수다이니만큼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 속에서 고민의 여지를 남기고 생각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 나도 결혼을 앞둔 그즈음 고민해야 했다. 기도 하는 것 까지는 그래, 좋다. 모든 삶의 구석구석까지 우리 주인 되시는 이가 간섭하시고 이끄시기를 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무언가 내가 막연하게 '기도실 = 기도응답 = 연애 = 결혼 = 해피엔딩' 순으로 이어지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기도 응답이라고 하고 만나던 이들이 헤어질 때, 결혼까지는 성공했으나 이혼이라는 파경을 맞이할 때, 남자는 만나고 싶어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하는데 반대로 여자는 그 남자와 만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 등등. 그들의 만남이 진정 기도 응답이라면 하나님의 승인과 100%의 확신으로 이루어진 것일 텐데 왜 그들이 걷는 길은 꽃길이 아닌 건지, 그리고 나는 내 배우자와 만날 때 어떤 방식의 기도 응답을 기다려야 하는 건지. 우연히 금요철야 가는 길에 만날 때? 기도실에서 나오는 길에 내가 바라던 이성과 마주칠 때? 내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도 나를 두고 기도하고 있다고 할 때?



 쓰고 보니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일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의 일로 들을 때는 웃고 지나갈 이 일들이, 막상 내 일로 만나게 되면 똑같은 웃픈 상황을 연출하게 되곤 했다. 물론 감사하게 잘 만나고 잘 살면 진심으로 축복하고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웃지 못할 상황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모두 나의 고민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도 '이 사람일까요? 저 사람일까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장하면서 '응답'받았던 사람들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해서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고, 그제야 교회 안에서 만나던 이들을 떠올리며 '이 사람일까요?'하고 묻던 내 질문을 그쳤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성과 감정, 의지를 모두 주시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하셨다. 나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적절히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에야 이혼, 졸혼과 같은 단어들이 익숙하지만 크리스천에게 결혼은 그 본질이 평생을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 사람일까요 하고 허공에 묻기 전에, 과연 이 사람이 맞는가 하는 문제는 나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애라면 찡한 마음만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결혼 상대를 찾는 거라면 지진하는 동공으로는 찾을 수 없다. 자신을 성찰하고 생각을 고정시키고 동공 또한, 멈춰야 한다. 그렇게 말씀과 미래를 설계하는 이성과 건강한 감정이 눈을 맑게 한다. 나는 사랑하는 동생들이 맑고 책임 있는 눈동자로 배우자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시선보다는 나와 함께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견인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면 좋겠다. 무척 사랑하고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상대.



 내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모두 사용해서 건강한 대화와 사귐을 가진 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결심할 때, 나는 '이 사람일까요?' 묻지 않았다. '이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 평생 내가 순종할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결심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시면 결혼 과정에서 순적하게 인도하실 것을 구했다. 그래서 연애하는 동안, 결혼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에도 사람들 앞에서 소개할 수 있었다. '제가 만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연애를 비밀로 하지 않는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결혼 준비는 좌충우돌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세미하게 순적한 결혼으로 이끄셨고 결국 하나님과 이웃들 앞에서 서약할 수 있었다.







 신랑과 신부는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결혼서약






 우리는 온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사용하여 '아멘'하고 하나님과 교회와 하객들 앞에서 대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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