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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Sep 21. 2016

볼라벤고원의 커피

ADB-IFAD 프로젝트 지역 방문기

아라비카는 11-12월에 주로 생산되고, 로부스타는 1-2월에 생산된다. 우리가 방문한 3월 말의 볼라벤 고원은 바쁜 커피 수확 작업은 끝이 나고 한가한 철이었다. 가끔씩 주택 마당에서 커피를 말리는 광경이 이채로워 보였다. 아마도 끝물을 수확한 로부스타 일 것이다.


마당에서 햇볕에 건조 중인 커피 과육


팍세(Pakse)에서부터 차를 타고 달려왔지만 완만한 경사 때문에 고원지대에 이른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벌써 해발 1,100미터의 볼라벤 고원이 시작되고 있었다. 기온은 발아래 도시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을 체감할 수 있었고, 건기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떨어지는 빗방울이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토양은 수분을 머금어 갈색을 띠고 있어 비옥한 느낌이었다. 또한 군데군데 남아 있는 습지의 물이 이곳이 아래 지역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형은 완만했다.


라오스의 커피 재배 단지가 밀집되어 있는 이곳은  동남아시아에서 흔치 않은 화산회토 지역으로 고도가 800~1,200미터에 위치하고 있어 최적의 커피 재배 환경으로 손꼽힌다. 팍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다오(Dao) 커피 사장의 주택 신축 현장을 보았다. 호텔인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의 저택 규모를 보고 이 지역의 커피산업이 호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는 여느 라오스 지역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여느 산간지방 같은 느낌이 났다.


라오스의 커피 재배


베트남이 세계 2위의 커피 생산 대국으로서 연간 백만 톤에 달하는 커피를 생산(대부분 Robusta, Arabica고급종은 5~6만 톤 정도에 불과하다)하는 데 비해 이웃인 라오스는 연 2만 톤 정도에 불과하다. 아직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지 못해 커피시장에서는 먼 변방으로 취급된다. 라오스의 커피는 아직은 대부분 Robusta 종이 주종을 이루며 맛도 순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토양이나 기후조건이 아라비카(Arabica) 재배에 적합하여 점차로 고급 품종으로 품종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1/4에 불과한 아라비카(Catimor가 주종)의 재배 면적을 점차로 늘려가고 있는 추세이며, 주 정부와 국제기구가 이를 지원하고 있다.


라오스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70% 이상은 유럽으로 수출된다. 라오스의 빈곤을 해결하고자 하는 프랑스 원조기구(AFD)와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등의 국제기구, 그리고 NGO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이런 영향으로 지금 볼라벤 고원이 위치한 참파삭 주 이외에도 인근 세콩 및 사라완 주에서도 커피 재배가 확산되고 있다. 라오스는 지금 커피 열풍이 볼라벤 태풍처럼 지나가고 있다.


커피가 라오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커피꽃


그동안 라오스 커피 브랜드는 베트남계의 다오(Dao) 커피가 독점했다. 2003년부터는 시눅(Sinouk)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딴 시눅(Sinouk) 커피를 내놓으면서 시장이 분화하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과점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지금은 비엔티안과 팍세 등 라오스 도시 곳곳에서는 시눅커피 전문점을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국내에서는 라오스 커피는 아직 생소하다. 최근에 컨테이너 3개 분량인 50톤 정도의 커피만 수입되었다는 풍문 정도만 들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연 200톤 규모의 라오스 커피를 수입한다. 최근 국내에도 섬세하고 다양한 향을 찾는 커피 애호가들의 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중소 커피 상들이 라오스 커피 도입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외에도 시눅 플랜테이션(Sinouk Plantation)을 중심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커피 수확 및 가공체험 연수 프로그램”도 운영 중에 있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커피농장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라오스 커피를 맛볼 수 있을까?  아직은 진한 맛의 아라비카 맛에 중독된 내게는 부드럽고 특징 없는 듯한 맛의 라오 커피가 크게 끌리지는 않는다. 텁텁한 향도 나를 어렵게 만들었다. 아마도 새로운 품종, 재배방법, 또는 가공방법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국제기구는 커피 생산자 그룹에 무엇을 지원하고 있나?


IFAD는 지속가능한 자연환경보전 프로젝트(SNRMPEP)를 통해 라오스 커피 농가를 지원하는 사업을 2010년 경부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25개소의 커피 모종포를 설치하여 새로운 품종의 커피나무를 보급하는 사업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맛과 향이 우수한 아라비카 품종의 커피 유묘를 새로운 커피 생산자 그룹에 분양하고 있다. 기존의 커피 생산자 그룹도 품종을 개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농민들과 현지의 농촌지도자들에게는 커피 모종포 관리, 커피농장 운영, 수확 후 관리 및 습식 커피 가공기술 등 관련된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국제원조프로그램은 대개 지역의 공동체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볼라벤 고원에서는 커피생산자협동조합(CPC)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CPC에 소속된 농민들은 유기재배 표준, ACT Thailand(유기인증기관), FLO(공정무역기구)의 규정을 준수할 것을 약속하고 관련 서류에 서명을 해야 본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참여 농민들은 또한 협동조합이 주최하는 각종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농장관리 및 판매 기록을 유지관리해야 한다. 이에 대한 내외부의 감사도 받는다. 각 농민 그룹들은 서로 다른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커피생산자협동조합(CPC) 조직체계 안에서 함께 일하고 경제적 또는 사회적 요구 사항들이 있을 경우 의견을 모아서 함께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을 한다.


커피열매


이 사업이 시행되기 전에 커피 재배 농가의 생산성은 매우 낮았다. 농가들은 전통적으로 음영지역에서는 아라비카(Arabica) 품종을 재배했고, 소 방목 지역에서는 로버스타(Robusta) 품종을 “무투입” 농법을 사용하여 재배하였다. 평균적으로 아라비카는 700 kg/ha의 조수확량, 또는 450 kg/ha의 생두를 생산한다. 열성적인 농가에서는 유기재배 방식을 사용하여 1.6 ton/ha 이상의 생두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SNRMPEP 프로젝트에서는 커피 생산량 증대를 위해 농민들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퇴비와 생물학적 방제를 직접 사용해보게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커피 생산량과 품질을 향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농민들을 조금씩 따라오게 했다.


또한 습식 처리방법과 새로운 커피 처리장을 도입하여 커피의 품질을 향상하였다. 농가들이 협력하여 중앙집중방식으로 커피를 가공 처리하는 것이 더 우수함을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농민 그룹이 기술을 향상하고 경영능력을 배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구형 건식 커피과육 제처리기와 신형 일괄처리형 습식 커피과육 처리기


또한 프로젝트에서는 시간당 5톤을 처리할 수 있는 습식 커피 열매 처리기 34 세트를 각 농민 그룹에 공급하였다. 농가형 커피 처리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커피 농가들은 수확 후 바로 거래상을 찾아가 헐값에 팔아넘길 수밖에 없었다. 품질열화를 막기 위해 커피는 수확 후 24시간 이내에 과피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커피 농가들이 커피 생두로 가공하여 장기간 보관하면서 가격이 좋을 때 판매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농민들의 수익은 거의 2배 정도 더 증대되었다.


커피 나무들은 아직 어린 상태였다.


이렇게 생산된 커피 생두는 유럽의 유기농 시장으로 팔여 나간다. 물론 기존의 커피보다 더 좋은 가격에. 이러한 일은 NGO 성격의 기업에서 주도하고 있다. 이 역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농민들에게 추가적인 수익을 주는 요소이다.


프로젝트의 성과


커피생산자협동조합(CPC)은  각 그룹과 그룹에 소속된 농민들의 역량 강화하고 커피 가공 및 저장시설을 도입하여 품질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물론 커피의 시장 시세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 개별 농민들은 자신의 농장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토양비옥도를 관리하고 제공된 메뉴얼에 따라 재배방법을 개선해 나간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3,500 가구의 소득 수준과 생활여건이 개선되었다. 이 사업의 영향으로 싼사이 및 다칭 군 등 볼라벤 고원지대에서는 더 많은 농가들이 새롭게 커피 재배에 뛰어들었다.


언젠가는 라오스의 볼라벤 커피가 블루마운틴처럼 하나의 브랜드로 세계시장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힘들지만 그런 날이 오기를 나 역시 바란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이런 국제기구와 NGO 성격의 기업들의 노력으로  라오스 농민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아프리카나 남미에서처럼 커피농장이 노동착취의 현장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일구어나가는 희망의 농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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