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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Oct 06. 2016

라오스 최초의 파머스마켓

탓 루앙 광장의 유기농산물 시장

토요일 새벽, 일어나자마자 오토바이를 타고 탓 루앙 광장으로 향했다. 도시는 고요하고 길은 한산했다. 가끔씩 지나가는 도요타 하이룩스와 오토바이만 가끔씩 눈에 띌 뿐이었다. 빠뚜사이를 돌아 유턴(u-turn) 한 후 UNDP와 WHO 건물을 지나 레스토랑 뱀부(Bamboo)가 위치한 사거리의 오르막을 지났다. 바로 앞에 탓 루앙 사원의 상징인 황금색의 각진 종모양의 탑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새벽, 광장은 아직 한산했다.


탓 루앙 사원, 각진 모양의 황금색의탑이  인상적이다.


탓 루앙 광장은 라오스 최대 규모의 불교사원이 있는 곳으로, 이 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이다. 매년 11월 이면 이 나라 최대의 축제인 '탓 루앙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사원 앞의 넓은 광장은 평상시에는 주차장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토요일 아침은 다르다. 7시가 가까워오자 점차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시장은 가벼운 차림으로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광장에서는 주차요원이 주차료를 징수하며 질서를 잡았다.


탓루앙 광장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유기농시장



토요일 새벽부터 점심 전까지(대개 11시 정도) 비엔티안 주변에서 온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이 열린다. 새벽부터 산지에서 바로 올라온 농산물들은 신선하고 싱그럽다. 신선한 농산물을 찾는 부지런한 라오스 주부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는다. 문득 친하게 지내던 미얀마의 농업공무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얀마에서는 거리 음식을 먹지 마세요. 그리고 인레 호수에 가시면 '쭌묘'에서 재배한 방울토마토와 채소를 직접 드시지 마세요."


식품에 대한 불신은 개도국 어디에서나 흔히 마주치는 일상이었다. 아마도 관광객들은 라오스 농산물은 모두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될 것 같은 상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고독성 농약들이 별다른 규제 없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농민들 교육 역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시장이 붐비는 것을 보면 라오스 인들 역시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신뢰는 그리 높지 않은 듯하다.


라오스의 공무원들을 만날 때마다 유기농을 강조했다. 토양이 그리 비옥하지도 못하고, 병해충은 심한 나라에서 그 꿈이 그리 쉽게 달성될 수 있을까?


탓루앙 유기농시장에서 판매되는 농산물들



라오스에서 어떻게 유기농산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파머스마켓'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이 역시 ODA(해외공적개발원조) 사업의 일부였다. 스위스의 INGO인 HELVETAS에서 지원한 PROFIL 프로젝트(2004-2011)의 결과물이었다.


HELVETAS가 라오스 정부와 협의해 파머스마켓을 여는 데 합의했다. 시장운영위원회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를 조직하여 사업 종료 후에도 유기농 시장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역시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진다. 시장에 좌판을 여는 농민들은 약 3천 원 정도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 프로젝트가 끝이 나고 그때 지급한 티셔츠가 헤어져가고 있지만, 시장은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녹색 티셔츠를 입은 농민들은 HELVETAS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가격은 일반 시장과 차이는 거의 없었다. 사실 이 시장에 장을 보러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들이다. 익숙한 얼굴들도 꽤 보였다.


농민들은 여전히 그때 배운 농사방법을 지속하고 있을까? 유기농산물 인증은 여전히 유효할까? 이 나라의 많은 제도들이 그렇지만 우리의 기준을 들이 밀수는 없을 것 같았다. 현시점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지속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게 느껴졌다.



탓 루앙의 유기농산물 시장을 바라보면서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면서 지나갔다. 하나는 라오스에서 유기농업을 장려하는 게 옳은 일이냐는 것이 처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위스 사람들 일 좀 할 줄 안다는 질투심이었다. 아마도 나의 자격지심(自激之心)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탓루앙 유기농 시장의 운영자들


스위스는 확실하게 자신들만의 농업개발 전략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물질적인 지원은 최소화하고 교육과 농민 조직 강화 등 커뮤니티의 역량을 증대하는데 중점을 두는 방식이 그렇고, 시작부터 마케팅에 초점을 맞추고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국제시장을 타겟팅하는 전략이 대부분 프로젝트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게 그렇다.


이를 위해 민간기업들의 참여를 처음부터 계획에 넣고,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아주 장기적으로 계획된다는 것도 우리가 배워야 할 점으로 생각되었다. 농업개발의 기본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부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들이 하는 일을 잘 알아 갈수록 내가 과연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충분한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점점 더 자주 하게 된다.


탓 루앙 유기농산물 시장의 전경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것과는 달리 커뮤니티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 우린 이 분야에서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 때로는 경험보다는 철학의 부재가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라오스에서 몰랐던 것들에 대해 많이 배운다.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스위스는 이야기하는 듯했다. "짜슥들아~~, 일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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