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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Oct 15. 2016

긴 호흡과 긴 안목이 필요할 때

태국의 농타오(Nongtao) 농림개발센터를 보며

가끔은 '우리도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나 우리가 더 낫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우리보다 더 잘했을 때 그런 복잡한 감정이 들곤 한다.


태국은 라오스 접경 국가이다.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처럼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요즈음 점점 더 많은 라오스 젊은이들이 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지만 이 관계가 금방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기억엔 태국도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지만 태국 역시 다른 나라를 돕는 일에 나서고 있다. KOICA처럼 공식적인 원조기구를 설립했고, 이전부터도 접경 국가인 라오스에  농업교육을 위한 원조를 지원하고 있다.


태국은 이미 20년 전에 수도 비엔티안 시에 '후아손 후아수아 농업교육센터'를 설립했다. 52 ha 규모의 부지에 축산, 원예, 수도작, 과일, 양어, 버섯, 토양관리 등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장을 만들었다. 이 교육센터는 태국 국왕 이름으로 기증되었는 데, 그 후 20년 동안 운영비를 계속 지원해 오고있다.


농타오 농림서비스개발센터 표지판


내가 처음 비엔티안 시에 있는 '후아손 후아수아 농업교육센터'를 방문했을 때는 그저 그런 느낌이었다. "잘 만들었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20년 전에 했을까"라는 정도였다. 센터에서는 태국 대학원생들의 연구활동, 태국 농업연구자 및 대학원생의 실습 방문 등 여러 학술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후아손후아수아 센터는 태국이 만들어 놓은 라오스 내 농업 베이스캠프처럼 느껴졌다.


누구라도 이 교육센터에서 교육을 받거나 방문을 하게되면 맨 처음 하는 일은 강의실에서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이다. 센터 소개와 함께 태국 국왕이 농민들의 문제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를 감동적인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 비디오를 본 누구라도 라이카 카메라를 목에 건 태국 국왕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 교육센터를 만들면서 기대한 효과 중 하나일 것이다.


농타오센터의 주건물, 열대의 주택양식과 현대의 조화가 멋지다.


사바나켓을 방문했을 때, 사나나켓 농림국 공무원이 '농타오 농림개발센터'를 방문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불과 한 달 전에 개소식을 했는 데 태국의 공주가 참석했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전혀 새로운 정보였고, 또 '태국이 이번에는 무엇을 만들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대반 우려반으로 찾아갔다.


잉항스투파, 사바나켓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 센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비엔티안에 있는 교육센터처럼 역시나 호수와 숲을 끼고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 '어~ 리조트를 세워도 되겠네'라는 느낌이 들 정도의 환경이었다. 비엔티안에 있는 센터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건물은 한층 더 세련되어 보였다. 20년간의 경험이 상당 부분 잘 녹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이오가스 생산시설


호수를 끼고 7개 분야별로 건물과 실습장이 배치되어 있었다. 축산, 수도작, 산림관리, 양어, 토양관리, 버섯 등이다. 축산분야는 다양한 소가축들이 축사에서 사육되고 있었고, 사료작물들이 조그마하게 축사 주변으로 종류별로 가꾸어져 있었다. 아마도 얼마후면 남은 공터에 새로운 시범포장이 들어설 것이다.


소동물용 축사, 바닥에서 떨어져 있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돼지 축사 옆에서는 바이오가스 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검은 백이 부풀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스가 발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연결된 버너에서는 불을 붙여 취사도 할 수도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돼지 축사와 바이오가스 시설까지 아담하게 잘 만들어진 교육용 시설을 본적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축산분야의 강의장 건물


각 교육 모듈별로 별도로 강의장과 실습장이 구분되어 있어서 분야별로 동시에 교육이 가능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 센터를 둘러보면서 라오스의 농업을 잘 이해하고 농업실습 교육방법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진 전문가가 이 시설을 디자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과연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고, 아마도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장기적인 안목과 리더십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림관리 교육장의 모습


무엇보다도 과하지 않고 적정한 기술과 시설이 적용되었다는데 대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어떤 시설을 만들다 보면 어떤 부분은 과하고 어떤 부분은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대개는 경험 부족에서 기인하는 문제이다. 실제로 해보고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아주 기본적인 것 마저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설에서는 그런 과함과 부족함이 없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정한 내공이 느껴졌다.


산림관리 교육장 부근에 위치한 육묘장


또한 건물의 구조나 운영 방식 역시 라오스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비록 앞선 농업기술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열대농업에 대해서는 현지의 지식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런 한계를 분명히 느끼게 하는 교육센터였다.


이 센터는 8명의 라오스 공무원이 운영을 담당하고, 12명의 자원봉사자와 태국의 전문가를 포함 30여 명의 인력으로 운영된다. 태국의 전문가는 바로 강만 건너면 되는 곳에 살고 있어서 수시로 방문할 수 있다. 전문가 파견비용을 사용하지 않고도 시설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는 접경 국가의 큰 장점일 것이다.


농타오센터의 벼품종 전시포장, 벼 농사 교육장


교육센터를 나오면서 "있으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을 태국이 이미 하고 있다는데 대해 놀랐다. 그리고 20년 간이나 꾸준히 농업을 지원해왔고, 또 새롭게 확대해서 같은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데 대해서도 인상 깊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러할 것이다. 그렇지만 단편적인 시각과 단기적인 사업성과에 집착하는 우리의 접근 방식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때로는 실용성 보다 우리 기술의 우수함을 강조하는 과시성 시설을 너무 많이 보아온 터라 더 그랬다. 우리도 분명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태국이 새롭게 만든 교육센터를 돌아보는 내내 가시지가 않았다.

 

우리나라가 만약 농촌과 농업개발을 장기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어떤 접근 전략이 필요하다. 철학도 필요하다. 그런데 태국은 라오스에 대해서는 분명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태국의 CP가 세계적인 농식품기업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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