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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r 17. 2017

라오스에도 6차 산업이 있다?

참파삭 콩 섬의 쌀국수 제조 마을의 소득증대사업

농업이 어려운 것은 어느 나라나 거의 공통적이다. 더군다나 가난한 나라일수록 농촌은 더 어렵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STEPI)의 이주량 박사는 "농업의 수준은 그 나라의 경제 수준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대담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럼 경제가 발전하면 농업도 저절로 발전할 수 있을까? 글쎄...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되기 어렵지 않을까.


농업이 강하다고 모두 선진국은 아니다. 그렇지만 선진국 중에 농업과 농촌이 부실한 나라는 없다. 그러니 선진국이 되고 싶으면 농업과 농촌부터 챙기는 게 현명한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경제가 발전하면 저절로 농업이 강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수학공식처럼 그리 명쾌하게 답하기는 어렵다. 농업은 경제발전 이외에 세심한 개발 전략이 필요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콩 섬 인근 우리가 방문한 섬, 산도 없고 농경지는 좁다.


라오스의 농촌, 많은 사람들이 우리네 70년대와 비슷하다고 한다. 절대 틀릴 수 없고 그래서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같은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다. 라오스에서 KOICA의 ODA 농업전문가로 일하는 동안 오히려 우리나라 2000년대와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ADB(아시아개발은행) 컨설턴트들과 라오스 농촌 현장을 방문했을 때 특히나 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라오스 SNRMPEP 사무국의 비노스 부국장, 쌀국수 건조대에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산넘고 물건너 찾아간 메콩강의 외진 섬마을


라오스의 콩 섬(Don Khong)은 중국에서 발원해서 라오스와 태국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메콩강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사이를 가로지르며 바다로 흘러간다. 강폭이 넓어지는 이곳에는 우리의 다도해처럼 수많은 작은 섬들이 어우러져 있다. 유속이 느려지면서 흙이 퇴적되어 수많은 섬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이 지역을 시판돈, '4천 개의 섬'이라 불리기도 한다. 조금 더 가면 민물 돌고래의 서식지가 있고, 라오스의 배들이 바다로 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폭포들이 있다. 콩 섬은 그중에 가장 큰 섬으로 남북으로 길이가 18 km, 동서로는 11 km이고, 콩 군의 군청이 위치하고 있다. (* 최근 콩 섬까지 중국에서 건설한 현대식 교량이 연결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소개할 곳은 이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10여 분 들어가는 작은 섬(Ban Khamous-Phoumeo, 깜무스-푸메오 마을)이다. 라오스에서도 가장 남단, 물을 건너 콩 섬으로, 다시 콩 섬에서 차로 이동 후 다시 배를 타야 이곳 외딴섬까지 올 수 있다. 이 외진 곳을 방문한 이유는 마을 주민들이 만든다는 쌀국수 제조장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ADB에서 지원한 주민소득 증대 프로젝트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


가족들이 모여서 쌀국수를 만들고 있다.



ADB, 이 친구들 일 좀 하는데...


이곳에 들르기 전부터 비노스 부국장과 ADB 컨설턴트인 인도 출신 씽 박사는 이미 들떠 있었다. 그들은 라오스-ADB 프로젝트 사무국에서 함께 일한다. IFAD(국제농업개발기금)의 스테파니아의 주선으로 이번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기들이 만들어낸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하는 듯했다. 길고 날렵하게 생긴 보트가 선착장에 다다르자 우리를 마중 나온 이장과 주민들이 보였다. 콩 섬에서는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타고 이동했지만 여기서는 혼다 오토바이 뒷자리가 내 자리다.


주변의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도 산은 없었다. 평평하거나 작은 구릉 정도가 전부인 작인 섬이었다. 비교적 느린 강물이었지만 제방도 없이 위태로운 섬 가장자리 흙을 조금씩 훑어내고 있었다. 그나마 상류에서 흘러 내려온 나무와 수초들이 물이 할퀴는 상처를 받아내고 있었다. 강과 섬의 위태로운 평화처럼 느껴졌다.


선착장? 섬 둘레에 제방이 없어 위태로워 보인다.


황토가 퇴적된 땅은 비옥해 보였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굶지 않을 정도 이외의 소득을 안겨줄 수는 없어 보였다. 가난할 수밖에 없는 농촌마을, 이곳을 지원하기 위해 ADB의 컨설턴트들은 새로운 소득사업을 개발해야만 했다. 비노스 부국장은 그 과정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노트북을 열어 수백 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어려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상향식(bottom-up)으로 진행된 사업 발굴 과정에 특히 자신감을 드러냈다.


마을 주민들과 지역의 공무원들을 마을 회관으로 불러모았습니다. ADB 프로젝트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사업을 제안하라고 요청했죠.


비노스 부국장은 그 지역을 잘 모르는 중앙에서 온 관료들이 섣부르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미 수많은 실패사례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저녁 시간마다 모여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했다. 가끔씩 외부 컨설턴트들이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주민들이 모임을 주도해나갔다.


그때 촌로 한 분이 예전에 마을에서 쌀국수를 만들어 팔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걸 다시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ADB 컨설턴트들은 쌀국수가 가능성 있는 사업이 될 수 있을지 검토에 들어갔다. 시장 조사를 하고 쌀국수의 품질과 소비자들의 기호에 대한 조사도 실시했다. 그런 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중에 있는 베트남 쌀국수가 가격은 저렴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옛날 방식으로 만들었던 쌀국수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 역시 베트남에서 전해 준 기술로 만든 것이지만 오늘날 대량으로 생산되어 수입되는 베트남 쌀국수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가격차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신선한 쌀국수에 대한 수요도 있다고 판단했다. 라오스판 6차산업이 시작되었다.


발효 쌀가루물을 이용해 쌀국수를 제조하고 있다.



새마을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네...


ADB에서는 쌀국수 제조에 필요한 기본 장비만 제공했다. 새마을운동에서처럼 최소한의 지원만 했다.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에게는 제조장을 지을 수 있도록 벽돌을 제공했고, 국수를 자르는 기계를 제공했다. 또한 소규모 종잣돈으로 쌀가루 발효통 등 제조에 필요한 기초 도구를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지만 사업을 이끌어 나간 것은 전적으로 주민들의 몫이었다. 마을 촌로는 경험을 살려 주민들에게 쌀국수 제조방법을 전수했다. 강물에 떠내려온 통나무는 연료가 되었고, 드럼통을 잘라서 국수를 만드는 장치로 재활용했다. 군청에서는 주민들이 생산한 쌀국수를 빡세 등 참파삭 주에 위치한 국수가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마케팅을 지원했다.


주민들은 자기들끼리 쌀국수 제조방법을 공유했다. 쌀국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개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마을에서 생산된 쌀을 하루 정도 불린 후 제분기로  쌀가루를 만든다. 쌀가루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사흘 정도 발효를 시킨다. 따뜻한 나라라서 그런지 그냥 상온에 방치하였다. 여러 개의 플라스틱 양동이에는 쌀가루 용액이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사흘 정도를 두면 쌀가루는 어느 정도 숙성과 발효가 일어난다. 쌀국수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점성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쌀 양동이 근처에는 시쿰한 냄새가 났다.


쌀국수를 만들 때 사용되는 발효 쌀가루물


걸쭉한 발효 쌀가루 물을 납작한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 시루에서 증기로 익힌다. 이때 시루는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만들었는데, 두껑 대신 천을 팽팽하게 덮어서 만들었다. 이 천위에 쌀가루물을 붓고 얇게 편다. 증기를 쉐인 쌀 반죽은 이내 얇은 전병처럼 익어간다. 그러면 막대를 이용해 얇은 쌀가루 피를 둘둘말아 올려 수거한 후 대나무 발에 넌다. 그다음은 따가운 햇볕이 부드러운 피를 빳한 종이처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쌀국수 원판은 여러장 포갠 후 동력 커터를 이용해 얇게 절단한다.


상표도 없고 포장도 없지만 이 마을에서 만든 쌀국수는 인근 도시에서 인기가 많다. 가족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일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쁘다. 그들의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집집마다 보이는 혼다 오토바이, 새롭게 단장한 집들, 자녀 한둘은 도회지 학교로 보낼 정도로 여유도 생겼다. 그들은 진정으로 ADB의 쌀국수 프로젝트를 고마워하는 듯 보였다. 비노스 부국장과 씽 박사가 왜 그렇게 이 섬을 오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쌀국수를 만드는 제조장치



그럴싸한 시설보단 탄탄한 접근방법이 더 중요


우리는 농촌사업을 말하면 그럴싸한 건물부터 만드는 경향이 있다. 최소한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볼 수는 있으니 마음은 편하다. 처음에는. 그렇지만 시설은 갈수록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돈을 벌어주지 못하는 시설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기기도 한다. 시설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을 또 만드는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그럼 시설이 잘 활용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전형적인 주객전도, 본말이 뒤바뀐 경우이다.


이것 역시 필요의 법칙과 충분의 법칙이 뒤섞여서 헷갈린다. 시설이 있어서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돈을 버니 시설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까?


떠나올 때 비노스 부국장은 나에게 국수를 한 뭉터기 사라고 권했다. 사실 내가 이 쌀국수를 사서 끓여 먹을 일은 없었다. 그는 이어서 "이곳을 방문하는 누구에게든, 꼭 쌀국수를 사가라고 한다"며 말을 이었다. 마을 이장이 어색한 웃음으로 국수를 내밀었다. 방문한 일행들 모두 국수 한두 뭉터기를 기쁜마음으로 구입했다. 외부컨설턴트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 수 있어야 한다고 주민들에게 교육시킨 덕분이었다. 수줍은 주민들은 이방인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 수 있을만큼 대담해져 가고 있었다.


나는 5만낍(약 4천원)을 주고 국수 한 봉지를 구입했다. 양이 무척이나 많았다. 마른 쌀국수를 먹어보았다. 쌀 특유의 향내와 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 국수를 먹었을까? 어쨌든 비엔티안에 있는 집까지 가져오긴 했다. 그렇지만 결국 집에 있는 메반(집안을 청소하는 여자 관리인)에게 선물로 주었다. 정말 고마웠던지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참파삭에서 온 수제 쌀국수, 돈이 있다고 먹을 수 있는 품목은 아니지 않는가. 작은 선물이었지만 메반의 가족들은 시판돈에서 온 쌀국수를 맛보며 행복한 한 끼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족들이 말린 쌀국수 피를 기계를 이용해 잘게 절단하고 있다.



문제는 지속가능성


라오스가 좋았던 점은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에 촘촘히 박힌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농업전문가로서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있는 게 없다 보니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농촌 마을에서는 시장 구조가 거의 발달하지 않았고, 농업 가치사슬 전반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도 단순했다.


그러니 주민 소득을 높이는 사업을 기획하려면 처음부터 작물종자 부터 자재구매, 재배방법과 농기계, 수확과 저장, 그리고 유통까지 가치사슬 전반을 모두 고려에 넣어야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게 이미 있어서 목적으로 하는 한 부분만 집중할 수 있었지만, 라오스 농촌에서는 가치사슬 전반의 흐름을 거의 새롭게 디자인해야만 했다.


반면에 NGO의 농촌개발 프로젝트 대부분은 전체 가치사슬 중 하나만 접근한다. 그러다 보니 좋은 사업 취지와는 달리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마중물을 부으면 그때뿐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의 비영리기업과 비영리단체(NPO)의 사업계획서에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다시 농업, 농촌개발사업을 바라보았다. 안타깝게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는 그리 크지 않았다. 누구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듯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기술, 트렌디한 용어들에 집착하는 듯 보였다. 정부가 사업을 기획하고 주도한다는 그 사실만 지속 가능한 듯했다. 이 방식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쌀국수를 말리는 단계


농촌개발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기술도 시설도 아니다. 바로 사람들이다. 한 문화권에서 혈연 중심의 좁은 인간관계에 머물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행동양식을 따르게 하는 일은 히말라야의 준봉을 오르는 것보다 결코 더 쉽지 않다. 그러니 모든 농촌개발사업은 주민들을 교육하는 역량개발사업 중심으로 진핼될 수밖에 없다. 외부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끊어진 가치사슬(value chain)을 이어주고, 주민들 스스로 조직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정도가 적당하다. 주민들의 역량을 뛰어넘는 사업이 지속가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했던가?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 전통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수많은 외부 컨설턴트와 관주도의 하향식(Top-Down) 사업 추진이 일반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대자면 수십 가지는 더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게 최선일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중심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저녁노을 속으로 사라져 가는 시판돈의 수많은 섬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지, 상념에 잠겼다. 시판돈과 우리 농촌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2000년대 어느 지점에서 함께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자신감이 메콩강의 흙섬처럼 위태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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