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비엥에 온 이유이자 라오스에 온 이유
"거참 물에 빠지기 좋은 날씨구만!"
오전 내내 흐렸던 날씨가 오후에도 이어졌다. 비록 사진은 좀 우중충하게 나오겠지만 대신 햇빛에 탈 걱정은 안 해도 되니 물놀이하기에는 오히려 좋아~~~ 드디어 블루라군에 간다. 나에게 '블루라군'이란 '청춘' 그 잡채다. 블루라군이 청춘이요 청춘이 블루라군인 셈. 단연 꽃청춘의 영향이 크다. 꽃청춘에서 나온 블루라군의 바이브와 블루라군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나이,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행복하고 여유와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그래서 부러웠다. 당시의 나는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하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야근에 허덕이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내일 출근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나도 저기 블루라군에서 맥주나 홀짝홀짝 마시며 외국인들과 농담 따먹기 하고 다이빙이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매일같이 아주 강렬하게 들었더랬다. 이때부터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버킷에 블루라군이 담겨있었고 어언 1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가게 되었다. 그래서 블루라군은 이번 라오스 청춘여행의 사실상 메인 스폿인 동시에 방비엥에 온 이유이자 라오스에 온 이유나 다름없다.
블루라군에 가는 방법으로는 튜빙, 카약, 동굴 트레킹, 짚라인, 버기카 등의 방비엥의 다양한 액티비티와 함께 패키지로 묶인 원데이투어로 가거나, 다른 건 됐고 난 그냥 딱 블루라군만 가고 싶다! 하면 왕복 교통편만 구해서 갈 수 있다. 우린 후자를 택했다. 액티비티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원데이투어를 할 계획이었다면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어야 했다. 전날 사쿠라바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있다 보니 청춘은 청춘이지만 10대도 20대도 아닌 30대 청춘인 우리에겐 다소 버거웠다.
블루라군으로 가는 대표적인 교통편으로는 포터와 버기카, 그리고 자전거가 있다. 그중 사람들은 단연 버기카를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버기카 자체가 방비엥을 대표하는 액티비티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이동을 하며 재미와 스릴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도 처음에는 버기카를 타려고 했었다. 하지만 (여행을 앞둔 입장에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행 전 방비엥 버기카 관련하여 전복, 충돌, 사기 등의 뉴스가 뜨는 바람에 우리는 이동만큼은 무조건 안전, 신속, 편안하게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리하여 숙소에 요청해 포터를 잡았다.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으로 넘어왔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비엔티안은 도시였고 방비엥은 진짜 시골이구나였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방비엥도 우리 숙소와 여행자거리가 있는 곳은 시골이 아니었구나, 이래 봬도 방비엥에서 가장 번화한 시내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진짜 시골은 역시 외곽으로 나가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블루라군까지는 약 40분 정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골길이다 보니 모든 길이 비포장도로였다. 시도 때도 없이 엉덩이는 들썩들썩, 머리는 천장에 닿을락 말락 했다. 의자에 쿠션 패드가 붙어있기는 했지만 본래 화물차인 포터 특성상 차 자체의 승차감이 좋지 않다 보니 내 엉덩이뼈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뾰족한지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만약 비라도 오거나 비 온 다음 날이었다면 얼마나 더 험난했을까? 안 봐도 유튜브다. 이런 길을 버기카를 타고 흙먼지와 흙탕물로 샤워를 하며 갔던 꽃청춘이 떠올랐다. (물론 방송상의 연출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청춘이 아니었을까? 순간 포터 타고 나름 편안하게 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지금까지 우리를 '다섯 청춘'이라 자칭하고 우리 여행의 콘셉트를 '청춘여행'이라 떠들고 다녔던 것이 무색해졌다. 우리끼리 있을 때나 하는 얘기지 어디 가서 다섯 청춘이니 청춘여행이니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겠다^^;;
여행자 거리가 있는 방비엥 시내에서 마주친 방비엥이 관광지로서의 방비엥이었다면 블루라군 가는 길에 마주친 방비엥은 사람 사는 곳, 삶의 터전으로서의 방비엥이었다. 집 앞마당에서 밭일을 하는 사람들, 삼륜카(?)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아이들, 도로를 가로지르는 한 무리의 소떼들을 보며 멍 때리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힐링이 됐다. 이런 게 촌캉스(촌+바캉스)의 매력일라나? 자연의 색인 초록색이 눈을 편안하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처럼 사람은 자연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이치로 그들이 자연을 벗 삼아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되는 자연풍경에 슬슬 하품이 나올 때 즈음 블루라군1 간판이 보였다. 이제 대략 온 만큼만 더 가면 블루라군3다. 과거에는 블루라군 하면 그냥 블루라군이 전부였는데 꽃청춘 이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는지 2군데가 더 생겼다. 블루라군1, 2, 3 총 세 곳이 있는데 블루라군1은 '오리지널 블루라군'으로 꽃청춘의 그곳이고, 블루라군2는 일명 '유토피아 라군'으로 불리는 인공적으로 만든 라군, 우리 목적지인 블루라군3는 '시크릿 라군'으로 역시 인공으로 만들어진 라군이다. 이중 블루라군3가 요즘 인스타에도 많이 올라오고(뚝배기 라면) 물놀이하기에도 가장 좋다 하여 우리는 3을 택했다. 물론 블루라군1에서도 수영은 당연 기본이고 다이빙과 타잔놀이를 즐길 수 있지만 요즘은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점령해 버리는 바람에 꽃청춘 시절의 신비스러우면서도 여유로운 낙원 같은 분위기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단다.(실제로도 그랬다.) 대신 블루라군의 원조이자 상징인 만큼 안 보고 가면 아쉬울 것 같아 돌아가는 길에 들르기로 했다.
일정한 속도로 잘 달리던 포터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더니 앞서 달리던 버기카들의 뒤꽁무니가 보이기 시작했다. 맛집 웨이팅처럼 버기카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블루라군3 입구에 도착했다는 말. 차례로 입장료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블루라군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