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하루를 지켜가는 일> 이야기
얼마 전 있었던 고등학교 강연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나답다'는 것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는지.
답을 구체적으로 낼 수 없는 질문이다 보니 혹시 잠깐 생각하다가 포기하면 어쩌나 싶어 결이 비슷한 질문 몇 개를 추가로 슬라이드에 덧붙였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나다움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면, 최근 무엇을 했을 때 가장 자연스럽고 편했는지, 가장 기분이 좋고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친구나 선생님에게 내가 무엇을 잘한다는 얘기를 듣는 편인지 써 달라고 했다. 학생들은 조금 고민하더니 이내 수다를 멈추고 내가 나눠 준 노란 포스트잇 위에 자기만의 답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흐르는 시간만큼 살아온 날들이 늘어난다. 나는 아직 20대도 되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훨씬 많은 도전과 실패와 사랑과 이별을 했지만 나답게 잘 살고 있는지 자주 의심한다. 물론 예전처럼 뿌리까지 흔드는 일은 적다. 과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무던해진 것인지 그냥 포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둘 중 어느 쪽에 기울어 있는지도 부러 구분하지 않는다. 원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그것만으로 감사하려 한다. 아니, 당장 할 일이 있으니까 아무 생각 없는 걸지도.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성실하게 여러 날들을 지켰다는 것이다. 울며불며 법석을 쳐도 완전히 떠나지 않고 이내 삶의 자리에 엉덩이를 가져다 붙였다. 주름이 짙어져도 활짝 웃었고 새치를 뿜어내듯 있는 힘껏 고민하며 '지금'을 사랑하려 애썼다. 그 마음이 묻어 있는 일기장을 넘길 때면 살짝 애틋하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지난 일들에 대한 소감을 말할 때 왜 그렇게 우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시간이 이미 그리워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나답게, 글과 사진으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요즘을 계속해서 사랑해 나간다.
직장인에서 번역가로, 번역가에서 작가로, 다시 작가에서 출판사로 영역을 확장해 나갈 때마다 내 곁에 있어 준 것은 나를 닮은 나날들이었다. 이미 올해가 실패로 가득해 보이지만, 오히려 태평하게, 그런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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