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연히 유튜브 타임라인에 추천된 BTS의 <Dynamite>를 보고 한동안 흠뻑 빠져있었다.
가장 처음 BTS의 미국 팬덤이 강하다는 얘기를 접했을 때 'BTS가 갑자기 왜?'하고 갸우뚱했던 한국인 중에 하나였다. 완성도 높은 Kpop 아이돌은 많은데, 왜 그중 BTS일까?라는 생각이었다. SNS를 통한 소통을 활발하게 한 것이 성공요인이었다는 얘기에 일단 수긍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현상을 해석하기 어렵고, BTS에게는 타 아이돌이 쉽게 모방하지 못할 여러 요소들이 얽혀 있다는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전에 Z세대 트렌드 리포트를 제작하면서 봤던 온라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특성과 매칭 시켜 보았을 때 이해가 좀 더 됐던, 이 시대가 BTS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해석들을 써본다. (물론 잘 된 후에 이러쿵저러쿵 해석을 내놓기란 참 쉽지만 ^^;)
이제는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SNS 계정을 하나씩 갖고 있고,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순위에서 크리에이터(유튜버)는 의사를 제치고 3위가 되었다(2019년 기준). 유튜브 계정만 있으면 누구든지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에는 남들에게 없는 자신만의 스토리가 담긴 오리지널 한 메시지와 콘텐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에이터가 되라고 등 떠밀려 크리에이터를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각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의 의지로 크리에이터가 되었고, 1인 크리에이터가 넘치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콘텐츠와 팬층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데뷔 초부터 유튜브와 트위터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과 일상을 팬들과 열심히 공유해온 BTS라는 아이돌은 여느 아이돌들보다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BTS가 우리나라 3대 기획사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외국에서 Kpop가수들은 완성도가 높지만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배출되는 공장형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공장형 아이돌이라는 수식은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휘둘려서 안타깝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목소리나 메시지가 없다는 인상을 주어,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자 하는 Z세대의 공감을 얻기 힘들게 만든다.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얻기 쉬워짐에 따라 요즘 Z세대는 일찍부터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설계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슈가가 13살 때부터 미디 작업을 시작하거나, 정국이 중학생 때부터 아이돌 오디션을 나가는 모습 등은 어릴 때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주체적으로 스텝을 밟아나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오프라인과 비교하였을 때 온라인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내면적으로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Z세대 크리에이터들은 더욱 교감하고 소통하기 위해 꾸밈없이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일찍부터 BTS는 유튜브와 트위터를 통해 팬들과 소통해왔으며, 서툰 모습, 마음이 약해진 모습, 의견 차로 싸우는 모습 등이 가감 없이 영상으로 남겨져 있다. 오래전부터 아이돌을 준비해온 다른 멤버들에 비해 진과 RM이 춤이 미흡하여 제이홉과 지민이 도와주기도 하고, 중학생 때부터 아이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산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서 상경한 정국은 엄마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힙합 아이돌로 시작한 초창기 시절을 흑역사로 표현하는 팬들도 여럿 보았는데, 그것조차도 크리에이터들에게는 공감 요소가 된다. <Burn the Stage> 다큐멘터리에서는 뷔와 진이 안무에 관해 충돌이 생겨서 다투는 모습이 나온다. 둘 다 가장 안정적이고 멋진 무대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고 각자의 생각을 부딪힌다. 크리에이터들도 자신만의 콘텐츠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마주하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고, 팀을 결성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BTS도 자신들처럼 약해지는 순간들이 있고, 팀원들과 의견 충돌로 힘들어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더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온라인을 통한 소통이 활발해짐에 따라 크리에이터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스트레스는 매우 크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유튜버 번아웃(Youtuber Burnout)"으로도 불리며, 끊임없이 채널 시청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압박감에 엄청난 팔로워 수와 수익을 내고 있어도 불안감, 우울증, 공황장애 등에 시달린다. 랜덤 한 악플러로부터 공격을 받아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하고, 영상에 늘 멋지고 좋은 모습으로 비쳐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있다. 이러한 현시대 크리에이터들이 느끼는 사회적 불안감에 대해 BTS는 공감하며, BTS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들을 영상과 노래 가사에 담은 것은 듣는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령 지민이 팬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10일에 한 끼 먹으며 다이어트로 고생한 얘기, 청소년기에 우울·강박·대인기피증 등에 시달린 슈가의 얘기들은 크리에이터들도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RM이 익명의 Hater들에게 느낀 억울함이나 화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뜻을 담아 만든 <Mic drop>은 악플에 시달려본 이들에게 통쾌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BTS가 처음 데뷔하였을 때 이름과 콘셉트로 인해 안티도 많이 생겼지만 꾸준한 활동으로 세계적인 무대까지 오를 수 있었기에 더욱 지니는 의미가 큰 것 같다.
BTS를 좋아하는 것은 이 세대에 꼭 필요한 아이돌이라고 생각돼서이다. 풍요로워졌지만 전 세대에는 없었던 스트레스 요소도 많은 온라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위안을 주고, 자신을 싫어하는 Hater들은 무시하라고 말해준다. 또한 자신의 온라인 정체성과 오프라인의 정체성, 온라인에서도 여러 계정을 만들어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며 자신이 누구이고 어떠한 사람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어린 세대들에게 자신들 역시도 대중에게 드러나는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 사이에서의 정체성을 고민한다는 <Idol>이라는 곡은 따듯하게도 느껴진다. 자녀가 BTS를 좋아하면 안심한다는 미국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마음에 크게 공감된다. 앞으로도 BTS가 더욱 잘 되고,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쳐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