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과 혐오에 관하여
요즘 인터넷을 하다 보면 커뮤니티와 유튜브 덧글에서 혐오가 팽배하다. 특히 일본과 중국에 대한 혐오는 몇 년 사이에 심각해졌다. 일본에 대한 혐오는 2019년에 일어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악화된 것 같고, 중국은 (정확하진 않지만) 한국문화를 자신들 것이라고 우기는 중국 네티즌 때문에 안 좋아졌던 것 같다. 코로나도 물론 한몫했다. 인터넷이 활발해지기 전에는 우리끼리 욕하고 끝났다면, 이제는 유튜브나 트위터라는 공통된 플랫폼을 통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금방 접할 수 있다는 면에서 국가 간의 혐오는 확산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유튜브를 통해 산드라 오와 봉준호 감독의 통역으로 유명해진 샤론 최의 대화를 보게 되었는데, 산드라 오는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상을 "로컬"하다고 발언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그 말을 하는 봉준호 감독에게서 인종차별을 겪어온 사람 특유의 억울함이 느껴지지 않아 인상적이었다고 하였다. 내가 인종차별이라는 문제를 바라볼 때 한국에서만 살아온 사람들과 나 사이에서 느껴졌던 이질감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7살 때까지 일본에서만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그 당시 내가 다닌 메릴랜드 주 프레드릭의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뜨문뜨문 흑인과 동양인이 있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내가 한국인이라고 얘기하면 아이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다고 했었다. 내 앞에서 눈을 양옆으로 당기며 'Chinese, Japanese...'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르는 장난은 예사였고, 급식실에 가면 잘 모르는 옆반 흑인 아이가 점심시간 때마다 선생님이 안 보고 있는 틈을 타서 내 다리를 물었다. 그게 그 당시에는 내게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하루는 몸이 안 좋아서 엄마가 점심으로 죽을 싸주셨는데, 그전에 죽을 본 아이들이 토 같다고 놀린 적이 있어서 런치박스를 열고 한 수저 뜨고, 다시 닫고, 아이들이 안 보고 있을 때 다시 열어서 한 수저 뜨고, 다시 닫고를 반복하며 먹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끝까지 다 먹었다ㅎㅎ)
대학교 진학을 위해 미국에 다시 돌아갔을 때에는 영어도 잘했고, 학교에 한국인이 많아서 초등학교 때와 같은 인종차별은 없었지만, 가령 Staples (대형 문구점)에서 잉크 카트리지가 어디 있는지 묻는데, 대마에 약간 취한 점원이 뜬금없이 '너네 나라로 돌아가지 그래?'라고 한다던지, 길거리에서 캣 콜링으로 "니하오!"라고 하며 지나가던지, 자긴 동양인들을 구별할 줄 안다며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순으로 예쁘다고 제멋대로 떠드는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을 만나던지 하는 소소한(?) 사건들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몇몇 결정적인 순간 한국에서는 왜인지 스스로의 메인 정체성을 '여성'으로 인지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스스로를 '아시아인'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외국에 나가면 내가 한국인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토록 나의 정체성을 인종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이 내 개인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산드라 오의 얘기를 듣고 나니, 이게 타국에서 소수 인종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특성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을 계속 당하다 보면 마음속에 억울함이 생긴다. 나에게 사실 없는 특성이 남에 의해서 씌워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남들보다 출발선이 뒤쳐진 느낌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하고 나에 대해 편견을 갖는 일이 자꾸 생기다보면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정 뉴스와 미디어를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니, 인종차별에 환멸을 느끼는 내 안에도 편견과 미움이 쉽게 들어서는 것을 느꼈다. 한동안 일본 미디어에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게 되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일본 서점에 혐한 서적을 두는 코너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고, 방송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들의 관점으로 멋대로 해석하여 내보내는 것을 보니 '일본인'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다.
나는 나를 자신의 애인이라고 장난치시며 따듯하게 보살펴주시던 친할머니도 일본인이셨고, 엄마 아빠가 20대 초반에 일본에서 지낼 때 보증인을 자처하고 30년 넘게 우리 가족들의 생일을 꼼꼼하게 챙겨주신 일본 할머님도 계시다. 내 생일이 광복절인데, 일본에서 그 날은 패전일이다. 엄마, 아빠가 일본에서 지낼 때에 일본인들이 다니는 교회를 다녔는데, 거기 일본인 할머님, 할아버님들이 내가 정말 의미 있는 날에 태어났다며, 엄마, 아빠의 손을 잡으며 일본인들이 저지른 과오를 용서해줄 수 있겠느냐며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한다. 이렇게 살면서 상냥하고 좋은 일본인들을 만나온 나 역시도 일본인에 대해 편견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인"이라는 인종을 하나로 묶는 순간, 나 역시도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이다. 인터넷 악성 댓글러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고, 우리나라도 그렇듯, 마음 건강한 사회인들은 온라인에서 혐오발언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타국에 가서 사는 사람들 역시도 매일 같이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20명도 안될 것이다. 각 나라의 외국인 비율이나 인식 차이에 따라 인종차별이 더 심한 나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만나본 최악의 외국인들의 모습에 따라 나머지 인구들까지 한 가지의 모습으로 묶어버리게 되는 순간 우리 역시도 최악의 한국인들의 모습과 함께 묶여버리는 것에 대해 할 말이 없어질 것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은 든다. 사람은 대부분이 좋았던 경험보다 안 좋았던 경험을 토대로 사람을 묶는다. 나 역시 식당에서 떠나가라 큰 소리로 떠드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보고, 시장조사를 나갔다가 버스에서 매우 폭력적인 조선족을 마주한 이후 '중국인'에 대한 인상이 한동안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인 자신들의 네티즌들을 부끄러워하는 중국인들을 본 후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마음 흘러가는 대로 생각 없이 특정 인종을 혐오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혐오는 더 큰 혐오를 낳고 굴레는 끊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