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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Mar 14. 2021

한국인은 인종차별주의자?

특정 유튜브 영상에 들어가 보면 'Koreans are racist.(한국인들은 인종차별주의자야)'라는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한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한 의식이 많이 낮구나'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문구를 자꾸 접하다 보니, 이 댓글을 다는 많은 이들이 그냥 한국에 대한 혐오성 발언을 뱉으며 자신들의 깨어있음을 과시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니, Koreans라고 특정해버리는 문구를 쓰는 순간부터 이것 역시 인종차별이 아닌가?


한국인으로서 억울한 부분은 이렇다. 첫 번째는 한국인들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하기에는 단일 민족 국가 대부분이 인종차별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 같은 다민족 국가도 좀 더 나을 뿐 인종차별이 없지 않다. 솔직히 몇 개의 유럽 국가는 대놓고 길거리에서 타 인종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니, 최소한 그것보다는 문명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이러나저러나 인종차별이지만...) 또 하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에 대한 기대치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기생충>과 BTS로 한국 문화콘텐츠가 외국의 메인 스트림 미디어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 전부터도 한국문화의 마니아 층은 꾸준히 있었다. 이렇게 K-pop과 K-drama로 한국을 처음 접하고 환상을 가졌던 소비자층이 아직은 외국인들에게 폐쇄적인 한국의 모습을 보며 실망했을 것이다. Honeymoon phase가 끝나가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일본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던 기간에 비해 우리나라에 대한 환상을 갖는 기간이 짧은 것은 온라인을 통한 정보공유가 더욱 활발해졌기 때문으로 느껴진다.


나는 '한국은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들 중 하나다'라는 문구는 받아들이는 편이다. 다문화 정책을 선택한 다른 나라의 사회문제들을 보며, 한국에 거주하기 위해 들어오는 외국인들 자체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적대감을 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직 다양한 인종과 함께 지내볼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 인종차별로 간주되고 그렇지 않은지에 관해 대중이 모르고 있는 부분도 많다.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짱개(중국집) 먹으러 가자"는 말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의정부고 학생들이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한 것을 두고 샘 오취리가 화냈던 사건을 접했을 때, 복잡한 감정이 들었었다. 미국에서 블랙페이스를 금기시되는 것은 역사적인 부분이 얽혀 있다. 미국 백인들이 1940년대에 흑인들을 비하하는 코미디에 활용했던 메이크업이기 때문에 흑인들은 이를 매우 싫어하고 백인들은 그때 자신들의 과오를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샘 오취리는 화가 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가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은 의정부고 학생들이 의도적인 흑인 비하를 한 것이 아니었기에, 바로 분노하기보다는 좀 더 잘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마음이 복잡했던 이유는 샘 오취리의 즉각적인 분노가 우리나라 일부 네티즌들이 욱일기를 보았을 때의 태도와 정말 판에 박히듯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미국 땅에서 일어난 흑인들의 핍박과 차별의 역사를 모르고 관심 안 가지듯,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당한 수모를 구체적으로 모를뿐더러 관심이 없다. 하지만 화 많은 국내 네티즌들은 욱일기 문제만 되면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알아야 하는 양 분노하고 달려든다. 작년에도 필리핀의 19세 '틱톡 스타' 벨라 포치의 욱일기 문양 문신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이 악플을 달고 협박하여 파장이 있었는데, 대체 이 키보드 애국자들은 다 어디서 나타난거지 싶었다. 마치 자신이 대한민국을 위해 세계의 역사관을 바로잡겠다는 확신에 찬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들은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으며 타국의 10대 청소년에게 욕하는 것이 우리나라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지, 어느 부분이 애국인지 알 수가 없다.


모든 차별 문제를 대할 때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전제가 필요하고, 이는 '상대방도 우리 마음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시도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우리들의 마음을 몰라줬을 때 바로 분노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누가 공감을 해줄까. 나는 욱일기, 독도문제, 위안부 할머님들 문제 등에 대한 고발도 채팅창으로 싸우기보다는 보다 체계적으로 세계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와 같은 속도로 국내에서 발생되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고 대중의 인식개선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를 위한 일이 될 것이라 느껴진다...

(이상 또 한 명의 키보드 애국자의 글이었습니다.)


(메인 사진: Khoa Võ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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