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 수술 후 병원에서의 1주일
강남차여성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나는 엄청난 겁쟁이라 미리 겁먹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적은 정보를 갖고 들어갔고, 작년에 같은 병원에서 출산한 절친의 '견딜만하다.'는 얘기만 듣고 들어갔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언니와 나는 '견딜만한 고통'의 기준이 다르거나, 내가 좀 다른 경험을 한 것 같은데, 일단 글로 좀 남겨놓을까 한다. 정보제공보다는 개인 기록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글이 길다.
- 수술 전날 3시에 입원했다. 입원실이 예쁘고, 저녁식사를 누가 차려주는게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았다. 아까 그 친구는 "병캉스"라고 했다. 내가 아래의 인증샷을 보내니 친구가 작년에 찍은 비슷한 구도의 인증샷을 보내와서 17년 지기 친구끼리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양한 검사 등 준비과정들이 있었는데, 아픈 것들도 있었지만 잠깐이라서 모두 견딜만했다. 병원 침대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잠은 많이 못 잤다.
- 물을 뜨러 갔다가 출산한지 3일 된 산모를 마주쳤는데, 바로 말을 걸면서 수술이 엄청 아팠다고 했다. 너무 디테일한 얘기로 들어갈까봐 걱정되었는데, 첫 소변이 엄청 아팠다는 얘기까지만 들어 다행이었다. (나는 그리 아프지 않았다.)
-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보지 마세요.)
- 병원에 수술이 많은 날이라서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압박스타킹을 착용하고 있어야 간호사 분들이 미리 수술바늘을 꽂아놓을 수 있었다. 이것 빼고는 오전은 오후 수술시간까지 기다리기만 했다.
- 수술 장면을 상상할 때 평화롭게 마취 주사를 맞고 잠들고는, '아 쫌 쓰리네...'하고 깨어나는 시나리오를 그렸었는데, 예상과 판이하게 달랐다. 들어갈 때부터 지나치게 환한 수술방에 들어가 간호사 5-6명이 내 팔다리를 붙잡고 묶고, 아기에게 마취에 대한 영향이 가지 않도록 소변줄을 미리 꽂았는데, 몸이 속박된 채로 아래로 뭐가 들어가고, 산소마스크를 끼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정신없고 무서웠다.
- 회복실에서 마취가 깼을 때에는 배의 통증에 오른팔은 내 멋대로 덜덜 떨고 있었고 목이 쓰려서 목소리가 잘 안 나왔다. 배는 그냥 있어도 너무너무 아픈데, 간호사분이 피를 빼내야 한다며 (? 사실 이유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내 배를 힘껏 누르셨다. 그와 동시에 꾹 누른 치약 통처럼 아래로 오로가 쏟아져 나오는데, 마치 피범벅 고어 영화 같았다.
- 그 후 다시 방으로 옮겨지는데, 모든 침대에서 일어나는 덜컹거림이 아팠고, 수술대에서 입원 침대로 옮겨갈 때도 물론 아팠다.
- 시체처럼 누워있는데, 그날 밤 4번 정도는 배가 눌려졌다. 간호사 분들은 이날 많은 경우 2-3명이 함께 들어오셨는데, 출산할 때 창피함 따위는 안 느껴진다는 아이 셋 낳은 친동생의 말이 맞았다. 이제는 간호사 분들이 내 방으로 들어오실 때마다 내 배를 누르실 건지만이 궁금했다. 중간에 수술부위에서 피가 세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진검사를 하고 배도 누르는데, 가만히 있어도 아픈데, 또 이리저리 쑤시고 만지니 공포감에 식은땀이 절로 났다.
- 아기가 3.96킬로여서 거의 4킬로였다. 그날 태어난 아기들 중에 크기로 1등이었고, 만일 수술 날짜를 1주일 미루었다면 그달의 1등이었을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자궁수축도 더 아플 수 있다고 하셨는데, 너무 아픈 것과는 별개로 다이어트로 빼야 할 살이 좀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수술 후 남편이 보여준 아기 영상과 사진은 아직 태지가 많이 붙어있어서 어떤 얼굴인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진만 봐서는 그렇게 큰 건지 실감이 안 갔다.
- 7시에 아기 면회가 가능하다고 하여, 남편을 보냈다. 찍어온 사진을 보니, 처음 사진보다 훨씬 정돈(?)되어 있었고, 아기의 세모 입이 정말 너무 귀여웠다. 무엇보다 남편을 닮아 피부가 하얬는데, 어릴 적부터 까만 편이었던 나에게 백설기 같이 하얀 아기가 나온 게 좀 신기했다. 대체 내가 배 속에서 뭘 먹인 건지 볼은 이미 몽실몽실했고, 머리카락도 많이 나서 며칠 된 아기 같았다.
- 수술 날은 밤에도 간호사 분들이 수시로 체크하러 들어오시기도 하고, 배를 누르실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어서 잠을 거의 못 잤고, 하루가 이틀처럼 느껴졌다.
- 수술 다음날 새벽에는 소변줄을 빼면서 4시간 안에 소변을 보러 가야 한다는 미션을 받았다. (나중에 다른 간호사분이 좀 더 늦어도 괜찮다고 해주셨다.) 소변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상체를 90도로 세우고 간호사 분들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까지 가야 했는데, 4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간호사 분들이 오시게 되면 눈치를 많이 보는 나로서는 마음이 급해져서 더 아프게 일어나야 할 것 같아, 혼자 있을 때 어떻게든 할 수 있는걸 다 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모션침대의 힘을 빌려 어찌어찌 몸을 최대한 세웠다. 하지만 마지막 20도가 안 세워져서 옆의 손잡이를 잡고 팔의 힘으로 해보니 어찌어찌 배에 힘을 덜 들이고 일어날 수 있었다. 아프지 않았을 때는 불편하기만 했던 의료용 모션침대가, 아프고 나니 디자인이 정말 잘 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90도로 몸을 세우고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리는 데까지 나무늘보의 속도로 하여 총 3시간은 걸린 것 같다. 그럼에도 간호사 분들이 들어오셨다가 내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벌써 앉아 있느냐며 칭찬해주셨다. 앉고 나서도 근 하루 넘게 물을 안 마신지라 화장실이 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일어날 때의 고통이 무서워서 뜸 들이다가 앉은 채로 30분 정도 졸았다. 결국 간호사 한분이 오셔서 억지로 일으켜세웠는데, 진통제의 힘인지 일어날 때만 아프고, 막상 일어나고 나서는 견딜만했다. 무엇보다 화장실에 있는 동안 피로 물든 지난 밤의 침대 시트를 갈아주시고, 환자복도 깨끗한 것으로 환복 할 수 있어, 큰 미션을 하나 완수한 것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 남편은 정부과제 발표가 있어서 아침에 보냈다.
- 7시에는 아기를 면회하는 시간이 있어서 혹여라도 딴 일을 하다가 놓칠까, 알람을 맞추고 기다렸다. 시작 5분 전에 갔지만 20명의 대기가 이미 있었는데, 3명씩 2-30초 정도 커튼이 열려서 내 순서는 금방 왔다. 엄마 아빠들은 연예인을 기다리는 팬들처럼 대기실에서 기웃기웃하는 모습이었다. 커튼이 열리니 아기는 자고 있었고, 오히려 남편이 찍어온 영상에서는 자면서도 찡그리기도 하고 살짝 웃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숨 쉬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왜인지 하루 만에 조금 달라져있을 모습을 상상했지만, 어제와 그대로의 때꼼한 모습이었다.
-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3번 창구가 커튼이 가장 오래 열리는 창구다. 의도해서 번호를 뽑은 적은 없지만, 3의 배수의 번호표를 우연히 뽑으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2초라도 더 보고싶은 엄마 마음)
- 로비에 모인 엄마들은 링거를 꼽고 있거나 피가 묻은 환자복이나 복대를 차고 있었다. 보면서 약간의 동지애를 느꼈버렸다.
- 진통제를 끊는 날이라 좀 아플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 전날과 비교해서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 상처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니, 퇴원 전까지는 샤워 금지라고 들어서 뭔가 방법이 없을까 하던 중, 아침에 직원분께서 머리를 감겨주는 서비스를 말씀해주셨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미용실 의자 같은 곳에서 머리를 감고 나니 너무 상쾌했다. 오후에는 배의 상처부위에 레이저를 쏘는 치료도 10분 정도 받았다. 이 정도 되니 친구의 '병캉스'라는 표현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심심할 때쯤 간호사나 직원분들이 들어오셔서 새로운 액티비티(?)를 제안해주시는 느낌이었다.
- 배는 여전히 불편했지만, 무릎을 구부리면 숙이지 않아도 돼서 피가 묻은 압박스타킹도 새롭게 갈아 신고, 방도 정리하고 유방관리 마사지 영상도 따라 해 봤다. 빠르면 3일 만에도 모유수유가 가능해지기도 하는데, 젖몸살에 생기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고 하여 마음이 급해졌다. 배가 이제 겨우 나아지기 시작했는데, 젖몸살이 바로 온다면 너무 고난의 연속 같았다.
- 여유가 생겨서 같은 층 산모들의 나이를 보았는데 35-38세가 가장 많았다. 같은 복도 15명 정도의 산모들 중에 40대도 5명 있었다.
- 아무리 참아도 재채기는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재채기 때는 실밥이 살짝 터진 것 같아 간호사님께 보여드렸는데, 녹는 실이라서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다. 재채기가 나오려고 할 때 손으로 코를 꼬집어서 막으면 작은 재채기까지는 참을 수 있다.
- 커튼을 치다 보니 바로 옆방에서 아기 태동 검사 소리가 들렸다. 태동 검사인 것을 보니 내일이 수술인 듯한데, 만일 첫번째 출산이라면 아직 수술의 고통을 이해하기 전의 순진한 상태일 것 같아 괜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고통을 미리 알아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기에, 지금은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 밤 9시에 아기 모유수유 시간이 잡혀있었다. 아기를 처음 안아보는 것이라 너무 설렜다. 만나러 갔는데, 간호사분이 턱을 톡톡 치니 아기가 입을 아기새처럼 크게 벌렸고, 이건 배가 고픈 신호라고 하셨다. 가슴 쪽에 가져다대니, 자동적으로 입을 가슴에 가져다 대고 열심히 빠는데, 그걸 보는 순간 어떤 감정이 울컥 올라오며 눈물이 났다. 이 작고 소중한 생명이 처음 보는 나에게 의지하여 안겨있는 모습이 너무 새롭고 너무 특별한 순간이라 마음이 벅찼다.
- 배가 다 아물기도 전에 내 몸에 다음 미션이 주어졌다. 가슴이 살짝 무거운 느낌이 들어, 친구가 추천해준 병원 내 모유수유 클리닉 방문을 아침에 신청했다. 사실 누가 내 몸을 만지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처음 몸을 풀어줘야 나중에 고생 안 한다는 얘기를 듣고 갔다. 처음에 몇 방울 나온 것을 보여주시며 이따가 신생아실로 가져가면 된다고 하셔서 나온 모유량에 조금 웃어버렸다. 벨을 눌러서 간호사님을 나오게 해 드렸는데, 햄스터도 욕할만한 분량을 들고 있는게 민폐가 아닐까 싶었지만 원래 처음 분량이 그래서, 괜찮다고 하셨다.
- 아픈 건 질색이고 조금 오래되면 가슴에 열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 새벽에 알람을 맞추고 3시간마다 꼬박꼬박 일어났다. 새벽 6시에 수유할 때는 뭔가 좀 더 잘 나와서 뿌듯했다.
-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압박스타킹을 했는데도 바깥으로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몸이 회복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뭔가 다시 나빠지는 것 같아 실망스러웠지만, 간호사분들 말로는 원래 그럴 수 있다고, 2주 정도 간다고 설명해주셨다.
- 오늘도 모유수유센터를 방문했다. 그 전날 성실하게 수유해서 뭉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마사지를 받아보니 끝나고 가슴이 완전히 풀어진 게 느껴졌다. 마사지가 끝나갈 때쯤 모유수유센터에서 자리가 났다고 전화가 왔다. 아기는 이번에는 계속 잤고, 따듯한 아기 체온에 나도 꾸벅꾸벅 졸아버렸다. 주변을 보니 내 아기가 큰게 느껴졌다. 머리와 몸통 비율이 다른 아가들과 비슷해서 몰랐는데 전체적으로 확대된 느낌이었다.
- 밤에 잠을 많이 못 자서 낮잠을 엄청 잤다. 창문을 살짝 열어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상태에서 따듯한 이불을 덮고 오전 낮잠을 자는 게 나중에 그리워질 것 같다.
- 간호사분들께서 6박 7일간 너무 친절하게 케어를 정성스레 해주셨는데, 교대근무라서 떠날 때는 대부분 안 계셨다. 병원밥도 이제는 좀 물리고 병원생활도 조금 지루해졌던 터라 떠날 때가 된 것은 맞는데, 일주일 머물던 곳에 대란 애착이 그새 생겼는지, 어릴 적 수련회가 끝났을 때의 시원섭섭했던 느낌이 살짝 느껴졌다.
- 두 눈을 예쁘게 감은 아기를 안전하게 꽁꽁 싸서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드디어 내 거가 된 아기를 테이크아웃하는 듯한 느낌에 마음이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