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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태주 Mar 05. 2021

바닷가 우체국에서

그리움의 문장들

당신이 미웠습니다. 

어제는 초저녁부터 당신이 떠서 힘들었습니다. 당신의 눈빛과 음성과 손짓에 익숙해지지 않으려 애 썼던 날들이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작고 사소한 버릇들까 지 사랑해 버려서 그걸 하나하나 되돌리는 데 너무 많은 일생 이 소요될 것 같아 어질병을 앓습니다. 당신이 머문 자리에 나는 남아서 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올지도 몰라 동백을 삶고 산수유를 찌고 벚꽃을 무쳤습니다. 그리움의 온도가 과열되면 바닷가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씁니다. 


창문 밖으로 파도가 지나가고 호랑가시나무 잎들이 지나가고 배가 지나갑니다. 행인이 없어 쓸쓸할까 봐 바 다도 몇 차례 모래를 쓸며 지나갑니다. 바다의 배려는 눈물겹습니다. 바람이나 모래알이나 외로움 같은 건 빼놓고 아늑한 햇볕과 환한 풍경만 유리창 안으로 넣어줍니다. 


그리움은 늘 당신보다 앞서갑니다. 오늘은 맑았다고 쓰고, 오늘은 흐렸다고 쓰고, 오늘은 바람이 불었다고 쓰고, 오늘은 해당화가 붉었다고 씁니다. 당신은 단순하고 무심합니다. 내가 쓸데없이 그날의 날씨나 말하는 걸로 아는가 봅니다. 내 마음의 일기가 어떻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 당신입니다. 그러니 내 그리움은 당신보다 한참 멀리 앞서가서 또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편지를 써도 부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습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리움마저도 아낍니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라서 아껴서 그리워합니다. 


당신이 언젠가 우스꽝스러운 답장을 해왔습니다. 거기 가게 되면 우체국장님한테 식사 대접 한번 하겠다고. 나는 한참 웃었습니다. 그러면 우편배달부 노릇을 하는 갈매기는 어 떻게 할 거냐, 우표 대신 해당화 꽃잎을 붙여 파도 무늬로 소인을 찍고 있는 구름들은 어떻게 할 거냐, 바다가 다 직원들인데 저들에게 몽땅 밥을 살 거냐, 여기선 식사 후에 읍내 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게 관례인데 바다가 몰려가면 읍내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나는 심심해서 바다에게 이 얘기를 했습니다. 바다가 배를 잡고 웃다가 지나가는 배들이 뒤집어 질 뻔했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당신, 남들한테 잘할 생각 말고 나한테나 잘하세요. 여기는 내가 챙길 테니 당신은 나에게만 다정하세요. 


당신을 그리워하는 일은 여행과 닮았습니다. 어떨까 상상해 보게 되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하고, 어쩌면 너무나 반해 거기서 눌러살게 될 결심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잊을 수 없는 운명의 사람을 만나 같이 사는 걸 꿈꾸게 될지도 모르고. 그래서 매일매일 얼굴을 씻고 거울을 볼 때마다 흥얼거리게 됩니다. 오늘따라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 당신이 나보다 나를 더 그리워하게 될 것 같은 예감. 


나는 애플망고를 먹을 때, 코코넛 즙을 마실 때, 패션프루트를 삼킬 때 에로티시즘을 느낍니다. 그 달큼하고 향긋한 열대우림이 몸 안으로 들어올 때 짜릿한 그리움의 정체를 실감합니다. 그래서 알게 됩니다. 바다가 몸을 뒤채며 잠 못 드는 이유가 그리운 열대 때문이라는 것을. 바닷가에 우체국을 세울 생각을 한 바다의 뜻과 계획이 미루어 짐작되기도 합니다. 


눈이 내리면 그것이 바다의 편지인 줄, 비가 내리면 그것이 바다의 노래인 줄, 해일이 일면 그것이 바다의 그리움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나의 그리움은 성산포의 일출이나 덕적도의 일몰처럼 일상적이고 순순합니다. 오늘은 노을이 좋아서 봉투에 밀봉해 보냅니다. 어제는 빨간 우체통에 동백꽃이 피었다는 편지를 넣었고, 그제는 소라고둥 껍데기에 파도 소리를 넣어서 부쳤습니다. 여기 바닷가에는 수집할 그리움의 문장이 많아 당신께 보낼 엽서며 편지가 가득합니다. 그러니 내 그리움의 도착지, 당신은 지치지 마시고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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